난세, 죽음과 죽임의 벌판에서…왕건은 이 살생의 정당성을 고민했다[장지연의 역사 상상력]

후백제 건국 전 이미 시작된 혼란
왕건의 마지막 전투까지 50년 세월
재해와 기근 반복에 도적 떼 창궐
삼한 통일을 목표로 한 전쟁 속에
수많은 생명의 희생 번뇌한 왕건
“살생 원하지 않지만 자비는 재앙”
승려 이엄의 답변은 ‘제왕의 길’
다만 백성을 불쌍히 여기라 당부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 용맹한 함성이 나니와 연안을 가로지른다. 싸우자. 싸우자. 그것이야말로 구원으로 향하는 길이라고, 함성이 사람들을 고무한다. 전국시대를 연 오닌의 대란으로부터 어느덧 백 년, 전국 방방곡곡 전쟁이 없는 땅은 없어 수많은 집들이 생겨나고 또한 사라져갔다. 기아와 질병, 전쟁은 … 현세를 고통으로 채웠다.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힘차게 전진하라, 싸우다 죽으면 극락왕생이 보장된다. 전진하면 극락, 후퇴하면 지옥이다! 함성은 끝도 없이 되풀이되었다.”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가 지은 <흑뢰성>(김선영 옮김, 2022)의 첫머리를 옮겨보았다. 이 책은 일본 전국시대의 한복판인 1578년의 겨울, 무장 아라키 무라시게가 아리오카성을 근거로 주군 오다 노부나가를 상대로 반기를 든 역사적 사실을 모티브로 한다. 1년 정도의 농성 기간 중 벌어진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나가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작가가 묘사한 일본 전국시대의 모습에서 우리 후삼국시대의 향기를 느꼈다. 후삼국시대란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한 시점부터 고려 태조 왕건이 삼한 통합을 이룬 936년까지 시기를 지칭한다. 하지만 시대의 혼란은 그보다 앞선 시기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신라 하대 지방 민란의 서막으로 여겨지는 889년 원종·애노의 난이 대표적이다. 가뭄 등으로 고통받는 자신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세금을 독촉하는 정부에 대항하여 이들은 사벌주(현 경북 상주)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신라 하대 지방 민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로부터 태조 왕건의 마지막 전쟁이 끝나기까지의 세월이 근 50년에 달한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채 80년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50년’이라는 세월의 길이에 대한 감이 올 것이다. 이러한 지방 곳곳 민란의 근저에는 재해가 도사리고 있었다. 가뭄과 홍수로 기후는 널뛰고 기근이 반복됐다. ‘고통으로 가득한 현세’, 그런 시절이었다.
고통으로 가득한 현세
교과서에선 이 시대에 대해 ‘지방에서는 호족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력이 성장’하여, 스스로 성주 또는 장군이라 칭하면서 ‘지방의 행정권과 군사권을 장악’했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이 서술은 너무 무미건조하다. 견제하거나 통제해주는 상위 권력 없이 지방세력이 난립하는 상황이란 사실상 도적 떼가 창궐하는 세상이나 다를 바가 없다. 궁예가 처음 투탁했던 죽주(안성)의 기훤, 북원(원주)의 양길 등이 이런 도적들이었고, 병사를 이끌고 명주(강릉)로 쳐들어간 궁예 역시 이들과 다르지 않다. 이런 난세에는 기근이 닥치면 평범한 사람들도 옆 동네 쌀을 약탈하려 도적으로 돌변하기 마련이다. “들판이 전쟁터가 되니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짐승같이 행동했다.”(해인사 길상탑비)
당대의 명성 높은 승려 윤다(864~945)는 실제 이런 도적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자신이 묵고 있던 절방으로 밤중에 쳐들어온 산적들이었다. 윤다는 그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데다 설법으로 감화시켜 얌전히 돌아가게 했다. 비록 고승의 ‘무용담’으로 끝나긴 했지만, 사람 많은 사찰에 머문다 해도 안전할 수 없던 시대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선승 여엄(862~930) 역시 온 나라에 안전한 곳이 없어 머물 곳을 찾기 힘들어했으며, 선승 이엄(870~936)은 김해 쪽에 정착했으나 영 안전을 확신할 수 없어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 했다.
전란의 시대에 사람들이 모여 살 만한 곳은 바로 위험한 도적의 소굴이 되기에 십상이었다. 문경 일대의 지방세력이던 심충은 명성이 높던 지증대사(824~882)를 초빙해 희양산의 땅을 살펴봐달라고 부탁했다. 땅을 보고 온 지증대사는 “이 땅은 승려의 거처가 되지 않는다면 도적의 소굴이 될 것”이라고 평하며, 절을 개창하기로 한다(문경 봉암사 지증대사탑비). 지금까지 이어지는 문경 희양산 봉암사는 바로 도적 떼의 소굴이 되지 않게 하려는 목적에서 개척된 곳이다.
당대 사람들은 이런 난세를 부처님의 말씀이 사라진 시기, 즉 말법의 세상이라고 인식했다. 이런 시대 많은 이들은 구세주를 갈망했다. 도솔천의 미륵보살이 이 땅에 내려와 용화수 아래에서 설법하며 다시 새로운 불법의 치세를 열어주기를, 그 이전까지는 지장보살이 도탄에 빠진 우리를 구제해주기를 간절히 원했다. 추상적인 존재를 숭배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중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왔다는, 도력 깊은 승려들이 그런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그들에게 모여들었다. 이 시기 명성을 떨친 승려 여럿이 보살로, 혹은 부처로까지 추앙받곤 했던 것은 그러한 사람들의 기대를 반영한다.

‘일통삼한’의 전쟁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일통삼한(一統三韓), 쉽게 풀이하면 삼한을 통일한다는 의미다. 후백제, 후고구려 등으로 분열된 이 삼한 땅을 다시 통일한다는 거창한 선언. 견훤과 왕건은 이 기치를 세우고 전쟁을 벌였다. 승자는 쉽게 결정되지 않았다. 대구 팔공산 일대에서 벌어진 공산 전투(927)에서는 왕건이 직접 이끈 최정예 기병 5000명이 거의 괴멸됐다. 왕건 자신도 죽을 뻔했으나 신숭겸의 희생으로 간신히 빠져나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안동 일대에서 벌어진 고창 전투(929)는 또 어떠한가. 그해 12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 약 2개월간 이어진 전투에서는 견훤의 군대에서 8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충남 홍성 일대의 운주 전투(934)에서는 후백제 부대 3000여명이 죽거나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 사료가 없어서 그렇지, 병사 이외에 일반 주민이 얼마나 죽었는지는 알 수도 없다.
아무리 ‘일통삼한’이라는 원대한 기치를 올렸다곤 하지만, 불교 신앙심이 독실했던 시대다. 살생을 금기시하는 불교적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던 이들 중에 이렇게 수없이 반복되는 죽음과 죽임을 고민하는 이들은 없었을까? 다행히도 최후의 승자 왕건의 기록에서 그 고민의 자취를 볼 수 있다.
왕건은 명성을 떨치던 곳곳의 승려들을 초빙하고 설법을 들으며,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 그중 이엄에게 던진 그의 질문은 꽤 구체적이다. “약 36년 동안 2명의 흉악한 자(궁예와 견훤)가 있어, 비록 살리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에도 반대로 자꾸 죽이고 있습니다. 제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자비의 마음을 지니고는 있지만, 살생을 주저하거나 적을 방치해두면, 나라는 물론 저까지 위태롭게 하는 재앙을 부를까 두렵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자비심 하나로 압축될 수 있으나, 전란의 시대에 함부로 발동하는 자비심은 나라는 물론 자신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왕건의 질문. 자비와 살생 사이에서 번민하는 자의 절실한 물음이다. 이에 대한 이엄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이엄은 이렇게 답했다. “제왕과 평범한 사람이 가는 길은 다릅니다. 임금께서는 군사를 동원해 적과 싸우더라도 항상 백성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왕이란 본래 사해를 집으로 삼고 만민을 아들로 여겨, 무고한 사람은 죽이지 말고 죄가 있는 무리만을 엄선하여 다스려야 합니다.” 그는 제왕과 필부의 길은 다르다고 선을 그으며, 살생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왕건에게 면죄부를 부여한다. 다만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잊지 말고 죄가 있는 무리만 엄선해서 다스리라면서, 그의 자비심을 고취하고 고민을 위무한다(광조사 진철대사 보월승공탑비).
마침내 ‘일통삼한’의 목표를 달성한 후, 왕건의 질문은 바뀐다. 그는 이제 죽임 그 자체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그는 윤다에게 “하늘의 도움을 받아 난세를 구제하기 위해 흉포한 무리를 주살하였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생민(백성)을 잘 보호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윤다는 “오늘의 그 묻는 마음을 잊지 않으시면 국가가 부강하고 생민이 매우 행복할 것입니다”라며 초심을 지키라고 충고한다(태안사 광자대사탑비).
위업을 달성한 왕건은 자신이 죽인 이들이 모두 ‘죄 있는 무리’임을 확신했을까? 그 과정에서 벌어진, 수많은 직간접적인 죽음의 업보에 대해서는 더는 고민하지 않았을까? 임종 시점에 ‘인생은 원래 덧없는 것’이라는 한마디를 남긴 그는 자신의 극락왕생을 믿었을까? 왕건의 내면도 궁금하지만, 진정으로 궁금한 것은 다른 부분이다. 왕건처럼 질문하고 답을 들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도적 떼가 창궐한 시대를 살고 또 죽어간 이들의 내면. 요네자와 호노부의 <흑뢰성>은 바로 이들의 내면에 대한 상상에서 구성된 소설이다. 그러나 그 옛날 이름 없이 스러져간 이들에 대한 상상이 어디 소설 한 편만 만들겠는가. 오늘날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란의 참극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가다듬게 할 것이다.
장지연 대전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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