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 경북, 오래된 미래를 걷다] 1. 영천 인종태실
일제 수탈로 옮겨진 태항아리…원위치 봉안 필요성 제기

경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비롯해 수많은 문화유산을 품은 '살아있는 역사 박물관'이다. 그러나 개별 유산은 점처럼 흩어져 있고, 관광은 스쳐 지나가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유산을 선으로 잇고, 이야기로 엮어 '머무는 여행'으로 전환할 때다. 경북일보는 '헤리티지 경북, 오래된 미래를 걷다' 시리즈를 통해 유산의 가치와 장소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음식·숙박·체험을 결합한 체류형 관광 모델을 제시한다. 오래된 시간이 오늘의 산업이 되는 길, 그 가능성을 현장에서 묻는다. 편집자 주.
벚꽃은 주술을 부린다. 만개하면 꼭 비를 부른다. 눈보라처럼 꽃잎을 날린 뒤 빗물로 흙빛 몸뚱이를 씻고 계절의 제단에 깨끗하게 오르려는 듯하다.
그날도 그랬다. 비운의 조선 12대 왕 인종. 그의 태가 묻혔던 태실을 찾아 가려는 날도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어김없이 비를 불렀다.
8개월이란 짧은 재위기간 동안 제대로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계모의 눈치를 보다 죽음을 맞은 그의 삶과 봄비의 서사가 잘 어울리는 날이었다. 채비를 차리고 나서는데 경북 영천시청 학예사가 '길이 험해 사고 위험이 있다'며 극구 만류했다.

결국 일정을 하루 미뤄 다음날, 태실을 품고 있는 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영천 은해사를 찾았다. 도심지 벚꽃은 이미 꽃샘 비바람에 대부분 꽃잎을 떨궜지만 산 속 사찰 벚꽃은 화려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사찰의 계절은 한 발 뒤쳐져 따라가고 있었다.
대웅전을 지나 한참 올라가자 아담한 저수지가 나타났다. 신일지. 겨울 가뭄이 심했는데도 물이 찰랑거린다.
여기서 길이 갈린다. 왼쪽은 묘봉암, 오른쪽은 운부암. 가운데 보이는 산길이 바로 인종 태실로 이어진다.

길은 듣던 대로 가팔랐다. 새로 깐 야자 매트에 빗물이 배어 미끄러웠다. 미련이 남은 연분홍 진달래가 드문드문 눈에 띈다. 물푸레나무 잎은 새부리 마냥 잎을 뾰족뾰족 내밀고 있었다. 성급한 서어나무 순도 벌써 제법 자랐다. 찌르레기도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잠든 숲을 깨웠다. 빗물을 머금은 산 내음이 코끝 뿐 아니라 폐부 깊숙이 스며든다.
단종애사를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가 1600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막 들렸다.
숙부에게 왕위를 뺏기고 강원도 영월로 유배 왔다 사사된 비운의 소년왕 단종. 그의 죽음은 왕위 찬탈이라는 극적인 요소에다 낮고 음습한 유배지에서 억울하게 죽어갔다는 스토리가 관객들의 감정선을 건드린 것이다.
특히 경제가 어려울수록 대중들은 카타르시스를 원한다. 감정적 공감을 통해 욕구를 배출하려는 갈증이 강해지는 것이다, 고통과 눈물의 서사가, 위로를 원하는 대중들의 욕구와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학예사 말대로 길은 가팔랐다. 속인들의 범접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숨이 목구멍을 막았지만 왕의 양택인 탯자리를 얼른 보고 싶은 욕심이 쉼을 허락하지 않았다.
30여 분을 그렇게 힘겹게 올랐다. 아름다운 태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종 못지않은 비운의 왕 인종. 조선 최단명 임금으로 기록됐지만 그가 세자로 머문 세월은 무려 25년. 문종의 28년 다음으로 길었다.
준비된 어진 임금이었던 그의 죽음은 많은 의문을 남겼다.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가 낳은 인종은 적장자로 왕위가 보장됐다. 인종을 임신했을 때 장경왕후가 꿈을 꾼다. 노인이 나타나 아이의 이름을 억명(億命)으로 지어라고 했다. 그녀가 중종에게 허락을 받아 이 이름이 아명이 됐다. 하지만 출산 후 1주일 만에 장경왕후가 산후병으로 숨을 거두면서 일이 꼬인다. 원자의 명이 억겁으로 이어지길 바라며 지은 이름이 오래가지 못했다. 세자로 책봉되면서 호(岵)로 개명되고 말았다. 왕실은 민초들이 쓰는 한자를 써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의 명이 바람 앞의 등잔 신세가 된 것인가.
인종의 계모 문정왕후, 을사사화로 피바람을 일으킨 그녀는 인종을 차갑게 대했다. 하지만 효심이 지극했던 그는 그녀를 어머니로 지극히 섬겼다. 아들 경원대군을 왕으로 만들고자 했던 문정왕후는 그를 매몰차게 몰아 붙였다.
인종의 사망과 관련해서 전해지는 야사가 많다.
"우리 모자를 언제 죽일 작정이냐?"며 표독하게 굴던 문정왕후가 어느 날 인종을 불렀다. 그리고 따뜻한 웃음과 함께 맛있는 오색떡을 내놓고 권했다. 그는 그 떡을 먹고 얼마 뒤 고통스럽게 죽어 갔다. 그는 독이 든 줄 알면서도 효심이 지극해 먹었다고 야사는 전한다. 또 이 사태의 전말을 알고 있는 궁녀와 상선, 승정원 사관, 상궁 등이 잇따라 원인모를 죽음을 맞았다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세자 때는 동궁전에 불이 났지만 세자는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내가 죽기를 원하는데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며 버텼다. 그 때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중종이 애타게 부르자 나왔다고 전해진다.
31살에 후사도 없이 단명한 인종.
아버지 중종이 승하하자 뜰에 엎드린 채 6일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던 효자였다. 인종 승하 때는 '이제야 태평시대가 열리겠다고 기대했는데...'라며 백성들이 통곡을 했다.
그의 죽음은 애통하지만 그의 태가 묻힌 팔공산 태실은 아름다웠다. 왕실 태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울창한 소나무의 호위를 받듯 조성된 태실에는 왕권의 위엄이 서려 있다.
그가 갑작스레 죽은 다음 즉위한 명종 1년에 왕의 격을 갖춘 가봉 태실로 단장된다. 태실 기단은 팔각형이다. 난간석도 팔각으로 둘렀다. 팔각은 우주 질서를 나타내는 하늘·땅·물·불·바람·산 등 팔괘(八卦)를 상징한다. 왕자의 탄생은 하늘의 뜻이란 점을 선포하고 조화로운 기운 속에 왕권을 확고히 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또 원과 사각의 중간적 공간인 팔각을 통해 하늘과 땅의 기운을 모두 담아내려는 의지도 내포하고 있다.
특히 가운데 중동석(中童石)을 중심으로 빛이 퍼져나가 듯 방사형으로 석재를 배치해 왕자의 기운이 팔방으로 뻗어가고 왕조가 무궁창성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옥개석 형태의 개첨석(蓋檐石)을 얹은 중동석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곳곳에 균열이 갔지만 원융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형태는 변함이 없다.
왕의 탯줄과 태반을 보관하는 태실은 왕자 탄생 3개월 이내에 조성하는 것이 상례다.
하지만 인종 태실이 만들어 진 것은 출생 6년 뒤인 1521년이었다.
조정은 왕자가 태어나면 태실도감을 설치하고 전국에 탯자리를 추천받아 검토에 들어간다. 최종 후보지 몇 곳을 압축한 뒤 왕실 지관들이 직접 답사를 해서 탯자리를 정했다. 인종 태실도 같은 절차를 거쳤다.
적장자였기 때문에 세자 책봉에 이어 왕이 될 것이 확실했던 그의 탯자리 선정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신중한 검토 끝에 선택한 길지가 바로 팔공산 자락의 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현재 태실자리다.
이 터는 명당 중의 명당이다. 팔공산 지맥이 숨 가쁘게 흘러내리다 다시 치솟으며 꽃봉오리가 맺힌 듯한 신비한 형상이다. 게다가 좌청룡 우백호가 완벽하고 앞이 탁 트여 흠잡을 데라고는 하나 없는 하늘이 준비한 명당이다.
그런데 조선 왕실의 기를 끊으려는 일제의 책동에 태실도 희생된다.
1928년 전국에 산재한 태실 54기의 태 항아리를 경기도 고양에 있는 서삼릉(西三陵)으로 모은다. 효율적 관리 명분이 달렸다.

이 때 인종 태항아리도 옮겨졌다. 항아리는 2개. 태반과 탯줄을 담은 내항아리와 이를 보호하는 외항아리로 돼 있다. 내항아리를 기름종이와 비단으로 밀봉한 뒤 외항아리에 넣고 다시 밀폐했다. 두 항아리 사이는 솜을 채워 부딪치지 않게 했다. 외항아리는 일부 산화가 됐지만 내항아리는 완벽했다. 백자라도 비취빛이 은은히 번지는 영묘한 색상을 띄고 있다. 그리고 바닥에서는 동전, 조선통보가 발굴됐다. 무한한 재물운에 대한 소망이다. 태의 안장 기록인 태지석도 나왔다.
태항아리 이봉 과정에서 태실은 파손되고 석물 부재들은 나뒹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까마득하게 잊히고 묻혀갔다. 1999년부터 시작된 발굴 조사를 거쳐 2007년에 경상북도와 은해사가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이 때 수습한 부재 중 형태가 온전한 것들은 다시 사용했다. 특히 태실을 나타내는 가봉비의 하단 귀부와 지붕 격인 이수는 옛 석재 그대로 썼고 깨진 몸체, 비신만 다시 조성했다.
파손돼 사용할 수 없게 된 부재들은 부근에 모아 두고 있다.
인종 태실 보존 사업을 펴고 있는 향토 사학자 이원조 씨는 "부재들이 아직 땅 속에 많이 묻혀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체계적인 발굴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무엇보다 태실의 주인인 인종 태 항아리를 원래 자리인 이곳에 다시 모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천시는 관광객들이 인종태실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올해 야자 매트를 걷어 내고 나무 데크를 설치할 예정이다.
'왕사남'의 대성공으로 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대부 나라, 조선에서 왕은 과연 절대 권력자였을까. 왕은 끊임없이 견제를 받았다. 치열한 당파 싸움으로 독살과 퇴위 압박에도 노출됐다. 조선 왕 27명 중에 3명이 쫓겨났으며 7명은 독살된 것으로 추정 된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는 것이 당시 사대부들의 생각이었다.
독살된 것으로 추정되는 왕 가운데 한 명인 비운의 왕 인종.
그의 태실이 빈껍데기가 아니라 온전한 태실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오길 기대한다. 그것은 일제가 훼손한 조선의 정기를 되살리는,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어려운 일도 아니다. 오로지 관심이다. 하지만 아직도 원래 태실에 태항아리를 다시 봉안하려는 움직임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국가의 최종 품격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나 경제가 아니라 문화다. 문화유산이 케케묵은 과거가 아니라 살아서 숨 쉬어야 하는 미래인 이유다.
※'영천 인종태실' 주변 관광지
△영천 한의마을 : 경북 영천시 화룡동에 있는 한의마을은 전통 한의학과 체험 관광을 결합한 테마형 문화 공간.
체질상담도 받고 한방 족욕을 통해 힐링을 하는 등 어린이부터 노년층이 함께 즐길 수 있음. '몸과 마음을 함께 쉬게 하는 공간'으로 인기. 홈페이지나 전화 통해 예약 가능. 매주 월요일은 휴관.
△보현산댐과 출렁다리 : 지난 2021년 10월 개통됐으며 길이 530m. 넓은 호수와 팔공산의 빼어난 산세를 한 눈에 조망하면서 스릴을 즐길 수 있어 가족, 연인들에게 인기. 댐 주변 데크길을 걸으며 힐링 할 수 있는 관광명소.
△보현산 천문과학관 : 천체 전시와 교육, 우주 관측까지 가능한 체험형 시설. 관람은 주간과 야간으로 구분돼 있음. 낮에는 태양 관측, 밤은 별자리 중심. 특히 밤에는 전문가가 목성, 토성 등 행성들의 움직임 등 천체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들려 줌. 온라인 예약 필수. 천문과학관은 오후 2시 개관 밤 10시 폐관. 소요 시간은 약 2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