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의 문학관 편지] 어린이의 문장

경기일보 2026. 5. 5. 19:0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도교육으로 빛 잃어가는 동심
시의 미래는 ‘어린이 마음’에 있다
손택수 노작홍사용문학관장


내게 최고의 문장은 어린이의 글이다. 이오덕 선생이 수집한 어린이 문집에서 베낀 아래 일기는 독일 보훔대의 한국학과에서 소개했는데 박수갈채를 받았다. 함께 초청받은 소설가 이순원과 고 김영현, 그리고 현지에서 만난 시인 허수경도 그날의 한국문학을 알린 건 기성의 작가나 시인의 글이 아닌 어린이의 글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학교를 갔다 와서 할머니가 보고 싶어서 하우스에 갔다. 뻐꾸기가 뻐꾹뻐꾹 하더니 한 번 더 들어보니깐 워꾹워꾹, 또 들어보니깐 보꾹보꾹 해서 나는 뻐꾸기는 소리가 세 개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났다.”

대구 옥포초등학교 2학년 이영완군의 1995년 6월21일 일기 전문이다. 우리는 틀린 존재나 집단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상징계의 언어를 내면화한다. 약속된 기호의 감옥 속에 갇힌 뻐꾸기는 입을 틀어 막힌 채 다른 소리로는 울 수 없다. 지형의 변화에 따라, 계절의 변화에 따라, 대기의 흐름에 따라 찬란한 뉘앙스로 천변만화하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한 번 더 들어보니깐, 또 들어보니깐’ 뻐꾸기는 소리가 세 개나 된다는 발견을 통해 자동적인 질서 체계의 작동이 멈추게 된다.

이런 사례는 너무 많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해마다 개최하는 서울국제작가축제 때의 일이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포레스트 겐더와 스페인어권의 대표적인 시인들, 그리고 유럽의 문예지 에디터들이 운집한 무대에서 한국시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시 한 편을 즉흥으로 낭송해야 할 시간이 왔을 때 뽑은 시 또한 어린이의 시였다.

“송아지의 눈은 크고 맑고 슬프다/그런데, 송아지국은 맛있다/난 어떡하지?” 산청의 어느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송아지’에서 죽비라도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어떡하지?’ 소고기국을 먹을 줄이나 알았지 송아지의 그 크고 맑은 눈동자에 내 얼굴을 비춰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단 세 줄의 시 앞에서 수십년간의 시업이 통쾌하게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고 말하면 이 부끄러움이 조금은 가실 수 있을까. 이 짧은 시엔 인류의 스승들이 오랫동안 던져온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담겨 있다. 일상의 시간과 속도로부터 자신을 떼어내 누군가의 눈동자에 자신을 멈춰 세운 뒤 아름다운 생명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순에 대한 고백과 어떻게 잘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화인처럼 찍혀 있는 것이다.

피카소에 따르면 예술가는 자기 안의 어린이를 잊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안의 어린이가 바로 자연이다. 자연은 우리를 숨 쉬게 한다. 참으로 우리가 공부한다는 것은 자기 안의 잃어버린 자연으로서의 시원을 각성하는 훈련 그 이상의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노자가 자꾸 덜어내는(損之又損) 공부를 통해 마침내 어린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復歸於嬰兒) 걸 도라고 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저마다 품고 있는 자기 안의 예술가는 제도교육의 강도가 강화되면서 차츰 빛을 잃어간다. 백일장 심사를 해보면 저학년의 수준이 고학년보다 훨씬 높고 학군이 좋은 학교일수록 창조적 글쓰기는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학원이나 과외에 노출되는 빈도가 잦을수록 어른의 시선을 의식해 스스로 검열을 한 부자연스러운 글일 경우가 많다. 나라 잃은 시기 윤석중이나 이원수 같은 소년이 전문작가를 대신해 스스로 아동문학의 씨앗을 뿌리면서 소년문예가로 활동했던 역사를 생각할 때 숙고해야 할 대목이다.

초등학교 6년 동안 어린이들은 국어, 음악 교과서에서 150편 남짓 되는 시를 배운다고 한다. 이 가운데 어린이들이 쓴 시는 서너 편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어른이 쓴 동시다. 더구나 이 동시는 대개 동심주의 이데올로기에 포획돼 있는 경우가 많다. 동심주의를 구성하는 것은 어린이가 아니라 아동을 순수한 동심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는 어른의 시선이다. 교과서에 좀 더 많은 어린이의 글과 시들이 실릴 수는 없을까.

“꽃이 입을 활짝 벌렸네/꿀벌이 이빨 검사하네/누런 이가 있으면/쪽쪽 빠네.” 노작문학관의 백일장 중 성인을 제치고 장원을 한 꼬마 시인 문우빈군의 ‘봄’은 시의 미래를 동심에서 찾게 한다.

경기일보 webmaster@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