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단상] AI 시대, 체육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얼마 전 EBS TV 다큐프라임에서 방영된 '생존체육' 이라는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가볍게 여겨 온 질문을 정면으로 던졌다. 운동은 과연 건강관리나 취미의 영역에 머무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생존 조건인가? 특히 학생들의 신체활동 부족, 학교체육의 위축, 체력 저하 문제는 더 이상 개인의 생활습관 문제가 아니라 교육과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임을 보여주었고,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오늘날 학생들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 오래 앉아 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방과 후에는 학원과 과제에 매달리며, 집에서는 스마트폰과 컴퓨터 앞에 머문다. 몸을 움직이는 시간은 줄고, 움직이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한 환경은 점점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은 움직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움직임이 사라진 생활은 단순한 체력 저하에 그치지 않는다. 집중력, 정서 조절, 사회성, 자기효능감, 회복탄력성까지 약화시킬 수 있다.
특히 성장기 학생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한 운동량만이 아니다. 걷기, 달리기, 뛰기, 점프, 호핑, 던지기, 받기, 차기, 굴리기, 균형 잡기, 방향 전환하기와 같은 기본적인 운동발달기술을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운동발달기술은 유아기부터 습득되기 시작하며, 아동기에는 보다 정교한 스포츠기술을 습득하는 것으로 발전하여 적극적으로 스포츠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신체를 조절하고,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며,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기초 능력을 키우게 된다.
그러나 최근 학생들은 자유롭게 뛰어놀 기회가 줄어들면서 기본적인 움직임 경험조차 부족한 경우가 많다. 운동발달기술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으면 체육수업이나 스포츠 활동 참여에 자신감을 잃기 쉽다. 기본 움직임이 어렵게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운동을 피하게 되고, 운동을 피하면 체력은 더욱 떨어진다. 결국 체력 저하와 운동 기피, 자신감 결여가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체육은 단순히 운동 종목을 가르치고 배우는 시간만이 아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몸을 이해하고, 실패와 도전을 경험하며, 또래와 협력하는 법을 익히는 중요한 교육의 장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학교 현장은 어떠한가.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학생들은 실제로 얼마나 충분히 움직이고 있을까. 체육수업 시수는 교육과정에 편성되어 있지만, 현장에서 학생들이 제대로 된 신체활동을 경험하고 있는지는 진지하게 점검해 보아야 한다. 지인 중 한 학부모는 자녀의 초등학교 체육수업이 교실 안에서 진행되는 모습을 보고 "체육활동이 교실에서 가능한가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이 질문은 우리 학교체육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생존체육' 프로그램의 한 장면에서도 초등학생들이 50분 체육수업 중 초반 10분을 활발히 뛰고 난 뒤 쉽게 지쳐 더 이상 움직이기 어려워하는 장면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의 체력은 과연 어느 수준인가? 학교체육은 학생들의 건강과 체력을 실질적으로 키우고 있는가?
이 문제는 AI 시대와도 깊이 연결된다.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교수는 연세대학교 강연에서 AI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 지식이나 기술 하나가 아니라, 평생 배우고,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 인간다운 관계를 맺는 사회적·감정적 능력, 그리고 몸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신체적 역량이라고 강조했다. AI가 지식과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는 시대일수록 인간은 AI와 속도를 겨루기보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인간다운 삶의 리듬과 판단력, 진실을 지키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체육은 AI 시대에도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매우 중요한 교육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체육은 유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인간 발달의 기초를 세우는 과정이다. 유아기에는 기본 움직임을 통해 자신의 몸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기른다. 아동기에는 놀이와 스포츠 활동을 통해 규칙을 이해하고 또래와 협력하는 방법을 배운다. 청소년기에는 체력과 건강을 유지할 뿐 아니라 도전과 실패를 경험하고 자기조절력, 책임감, 공동체 의식을 키우게 된다. 몸을 움직이며 공간을 인식하고, 힘을 조절하고, 타인과 호흡을 맞추며,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경험은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배움이다.
운동은 건강수명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덴마크의 장기 추적 연구인 Copenhagen City Heart Study는 운동 종목에 따라 기대수명과의 관련성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 연구에서, 앉아서 생활하는 사람들과 비교했을 때 테니스 9.7년, 배드민턴 6.2년, 축구 4.7년, 수영 3.4년, 조깅 3.2년, 맨손체조 3.1년, 헬스클럽 운동 1.5년 기대수명이 증가한다고 보고하였다. 특히 테니스, 배드민턴, 축구처럼 사람과 함께하고 도구를 사용하며 상호작용이 많은 운동이 기대수명 증가와 깊은 관련을 보였다는 점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운동은 신체를 단련하는 활동이면서 동시에 관계를 맺고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학교체육을 교육의 주변부가 아니라 핵심 영역으로 회복해야 한다. 체육수업이 다른 교과에 밀려 형식적으로 운영되어서는 안 되며, 학생들이 실제로 움직이고 체력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 둘째, 부모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체육활동은 대학입시에 방해가 되는 시간이 아니라 AI 시대에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생존 교육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셋째, 가정과 지역사회가 함께 학생들이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학교 운동장, 체육관, 공공체육시설이 학생들의 일상 속에서 더 쉽게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AI와 디지털 기술을 운동 참여를 돕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맞춤형 체력 측정, 건강관리, 운동 처방 시스템은 학생들을 더 오래 앉아 있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더 건강하게 움직이도록 돕는 기술이 되어야 한다.
이제 체육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 체육은 남는 시간에 하는 활동도, 운동을 잘하는 학생만을 위한 과목도 아니다. 체육은 학생들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기르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변화하는 사회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생존 교육이다. 학생들의 체력은 곧 국가의 미래 체력이다. AI 시대일수록 인간다운 삶의 출발점은 건강한 몸과 마음에 있다. 이제는 체육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정복자 가천대학교 운동재활학과 교수, 특수치료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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