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칼럼] 적재적소

휴일을 맞아 모처럼 극장에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를 보았다. 20년이 지나 다시 돌아온 영화였다. 익숙한 얼굴과 화려한 패션은 여전히 눈길을 붙잡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오래 남은 것은 장면의 화려함이 아니었다. 왜 지금 이 영화가 다시 소환되었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첫 영화가 나왔을 때, 잡지는 여전히 시대의 취향을 설명하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편집장이 있었다.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미란다 프리슬리는 단순히 옷을 고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엇을 앞에 세우고, 무엇을 뒤로 미루며, 무엇을 끝내 지워낼지를 결정하는 사람이었다. 편집장은 지면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순서를 정하는 사람이었다.
20년 뒤 다시 호출된 그 세계는 예전 같지 않았다. 잡지의 권위는 흔들렸고, 사람들의 시선은 더 이상 한 권의 지면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럼에도 미란다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오래 말하지 않았고,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도 않았다. 다만 짧게 보고, 잠시 멈추고, 필요한 한마디를 던졌다. 그 한마디가 회의실의 공기를 바꾸었다.
나는 그 장면에서 '적재적소(適材適所)'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좋은 편집장은 모든 것을 직접 만들지 않는다. 다만 무엇이 중요한지 알고, 누구를 어디에 세워야 하는지 판단하며, 마지막 결과에 책임을 진다. 결국 편집의 본질은 배치다. 사람도, 문장도, 시대의 감각도 제자리에 놓일 때 힘을 얻는다.
그 생각은 곧 다가오는 6.3 지방선거와도 겹쳤다. 선거철이 되면 거리는 현수막으로 채워지고, 시장과 골목에는 이름과 얼굴이 반복된다. 그러나 정치는 얼굴이 많이 알려진 사람을 뽑는 일이 아니다. 연예인을 선발하는 일도 아니다. 선거는 사람을 고르는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일을 맡기는 일이다.
그렇다면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정당의 공천 시스템도 달라져야 한다. 지역주민을 위해 일할 사람을 찾겠다면 먼저 일을 시켜봐야 한다. 말로만 지역을 아는 사람인지, 실제로 문제를 붙잡고 해결해 본 사람인지 확인해야 한다. 후보도 많고, 말도 많고, 약속도 많다. 그러나 막상 일을 맡겨보면 알게 된다. 사람은 많은데, 일할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국가경영도 다르지 않다. 외교와 경제, 안보와 기술, 산업과 교육은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단순히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사안의 앞뒤를 읽고,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국민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방향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사람을 잘못 세우면 작동하지 않는다. 결국 국가는 적재적소의 힘으로 움직인다.
최근 나는 한 달 가까이 정부에 제출할 연구개발계획서 작업에 매달렸다. AI를 연구·기획하는 사람으로서 기술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일은 익숙하지만, 이번 계획서를 쓰며 가장 많이 떠올린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기업 현장은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고, AI를 실제 산업에 연결할 전문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기술은 많은데, 기술을 현장의 일로 바꾸는 사람은 여전히 부족하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연결이다. 대학과 지자체, 기업이 함께 지역의 문제를 읽고, 필요한 사람을 필요한 현장에 세우는 구조다. AI는 데이터를 통해 세상을 읽고 예측하지만, 데이터가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 데이터는 흔적을 보여줄 뿐, 그 의미를 해석하고 책임지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나는 코로나 시기 국회의장실에서 정무비서관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곳에서 배운 것도 결국 적재적소였다. 밖에서 보면 공적인 일은 뉴스 한 줄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사람 하나, 문장 하나, 일정 하나가 모두 제자리를 찾아야 했다. 어떤 표현은 신뢰가 되고, 어떤 배치는 오해가 되며, 어떤 메시지는 국민의 불안을 키울 수도 있었다. 공적인 일은 빠르게 처리하는 일이 아니라, 필요한 판단을 필요한 자리에 정확히 놓는 일이었다.
그래서 다시 영화 속 편집장이 떠오른다. 미란다는 모든 장면의 앞에 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무엇을 보고, 누구를 세우고, 무엇을 걷어냈는지에 따라 잡지의 방향이 정해졌다. 좋은 공직자도, 좋은 정책가도, 좋은 리더도 비슷하다. 스스로를 앞세우기보다 일을 앞세우고, 말보다 결과로 남으며, 빠른 반응보다 정확한 배치를 남긴다.
결국 핵심은 적재적소다. 선거도, 공천도, 행정도, 국가경영도 결국 사람을 어디에 세울 것인가의 문제다. 알려진 사람보다 필요한 사람, 말이 많은 사람보다 일을 끝내는 사람, 앞에 서는 사람보다 맡은 자리를 묵묵히 책임지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에서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20년 뒤 다시 돌아온 이 영화는 화려한 패션이 아니라, 시대가 바뀌어도 결국 누가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있는가를 묻고 있었다. 좋은 사회란 어쩌면 대단한 사람을 더 많이 찾는 사회가 아니라, 필요한 사람을 필요한 자리에 세울 줄 아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김형태 성균관대학교 인공지능융합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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