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안내]선교와 토착 사이, 양림동을 다시 묻다

윤태민 기자 2026. 5. 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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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향토사학자 ‘양림동 선교와 토착화’ 출간
100년 선교 역사 비판적 재조명
서양 종교 유입·지역 정서 충돌
의료·교육·복음 선교 흔적 정리
김정호 지음/심미안 펴냄.

광주 양림동의 선교 역사와 그 이면을 비판적으로 조망한 '양림동 선교와 토착화(심미안)'가 출간됐다.

평생 향토사 연구에 천착해 온 김정호 사학자는 이번 책에서 기독교 선교가 지역 사회에 남긴 흔적을 단순한 찬양이나 비판을 넘어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광주 남구 양림동은 1904년 미국 장로교 선교기지로 조성된 이후 호남 지역 기독교 확산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동시에 사직단이 자리했던 전통 공간이기도 한 이곳은 서양 종교와 토착 문화가 충돌하고 공존한 상징적 장소로 평가된다.

저자는 이러한 양림동의 이중적 성격에 주목한다. 서양 선교는 의료·교육·문화 분야에서 근대 문명의 확산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전통 문화와 공동체 질서에 영향을 미친 측면도 함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제국주의 시기 종교 선교를 둘러싼 역사적 맥락을 짚으며 당시 사회와 문화 속에서 선교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재검토한다.

책은 총 여섯 개 장으로 구성됐다. 양림동의 지명 유래와 전통 흔적을 살피는 역사편을 시작으로, 미국장로회 선교의 한국 진출과 전략, 의료·교육 선교의 구체적 사례를 다룬다. 이어 선교 유산으로 남은 교회와 기념시설, 그리고 세 교파 분열 구조를 통해 한국 교회 분열의 뿌리를 추적한다.
김정호 향토사학자.

특히 호남 지역의 역사적 경험에도 주목한다. 한국전쟁 시기 전라도 지역이 겪은 이념 갈등과 폭력의 기억이 지역 공동체의 의식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으며, 이러한 정서가 양림동 교회의 분열 구조에도 반영됐다고 분석한다.

또한 책은 서양 종교가 지역 문화 속에 뿌리내리는 과정, 즉 '토착화'에 주목한다. 정경옥, 엄두섭 등 인물들을 통해 호남 영성운동의 흐름을 살피고, 기독교가 단순한 외래 종교를 넘어 지역적 특성과 결합하며 변형·정착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현재의 양림동 모습도 함께 담았다. 유진벨선교기념관과 오월어머니집, 미술관, 복지시설, 학교 등 근대 유산과 현대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서의 양림동을 조망하며, 과거와 현재가 겹쳐진 도시의 시간성을 보여준다.

저자는 "양림동에는 100년 전 이질적 문화를 받아들인 지역민들의 역사적 선택이 담겨 있다"며 "그 결과를 단편적으로 평가하기보다 차분히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번 책은 특정 종교나 역사 인식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데 머물지 않고, 지역의 기억과 문화, 종교가 교차하는 지점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광주 양림동이라는 공간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또 다른 단면을 읽어내는 시도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