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부국강병 ‘제조업 가진 미국 되기’

박민희 기자 2026. 5. 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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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희의 차이나 퍼즐] 28 _첨단기술 올인 전략
중국 허베이성 친황다오에 있는 산업단지의 로봇 공장에서 직원들이 로봇을 훈련시키고 있다. 친황다오/신화통신 연합뉴스

결국 이란에 대한 압승을 거두지 못한 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 방문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힘을 과시하며 우위에 선 채 시진핑 주석과 정상회담에 나서려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위험한 도박은 실패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한차례 연기된 끝에 다음주로 다가온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손에는 더 많은 카드가 생겼다. 미국이 이란 전쟁에서 소진한 막대한 무기 재고를 복구하려면 중국의 희토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호르무즈해협 개방과 종전을 위해 중국이 이란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중국은 늪에 빠져 있는 미국을 구하기 위해 적극 나설 뜻은 없다. 중국도 호르무즈해협의 개방을 원하기는 하지만, 미국이 풀어야 할 숙제라는 태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뒤 관세 전쟁과 첨단 기술 수출 통제 등으로 중국의 급소를 노렸지만, 시진핑 주석이 치밀하게 준비한 희토류 카드에 밀려 지난해 10월 말 부산 정상회담에서 ‘휴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 휴전의 연장선 위에서 오는 14~15일 열릴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서로의 이익을 보장하면서 장기적 경쟁을 계속할 수 있는 틀을 만들려 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에 성과로 내세울 수 있는 미국산 농산물과 항공기 구매 등을 약속할 가능성이 있고, 무역, 기술과 투자, 그리고 대만과 이란 문제가 주요하게 논의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에서 어떤 거래가 이뤄지든 미-중 패권 경쟁은 오랫동안 계속될 치열한 장기전이다. 시진핑 주석은 미-중의 승부는 결국 첨단기술과 미래 산업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고 총력전을 지휘하고 있다.

지만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오는 15일 현대중국학회에서 발표할 논문에서 중국이 2035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중국식 현대화’ 목표가 중국공산당이 주도하는 ‘제조업을 가진 미국 되기’라고 분석한다. 시진핑 주석은 부동산 등 자산 거품을 관리하지 못해 후유증을 겪는 ‘일본 모델’, 복지사회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유럽모델’을 중국이 피해야 할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미국이 높은 성장률과 첨단 과학 혁신을 유지하는 것은 배워야 할 점으로 보지만, 제조업 기반 약화로 심각한 사회정치·경제안보 취약성에 직면한 상황은 중국이 반드시 피해야 할 길로 본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의 기술 혁신을 참고하면서도 전통 산업부터 최첨단 산업까지 제조업의 모든 분야를 하나도 내려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시작된 중국의 제15차 5개년 계획(15.5계획)은 성장률 목표를 “4.5~5% 또는 그 이상”이라고 애매하게 언급하면서, 기술 혁신을 압도적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지만수 연구위원은 중국이 ‘제조업 가진 미국 되기’를 위해 세가지 방안을 제시했다고 분석한다. 첫째, ‘선진국형 산업 고도화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산업의 중심이 이동한다’는 전통적 인식을 확실하게 폐기하고 제조업을 우선순위로 계속 유지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는 목표를 명확히 한 것이다. 계획은 “선진 제조업이 선진적 산업체계의 골간”이라고 명시하고 “제조업이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합리적 비중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두번째는 신에너지, 신소재, 자율 전기차, 로봇, 바이오, 첨단장비 등 전략적 산업에서 중국은 더 이상 추격자가 아니며 선도자의 위치를 강화하겠다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세번째는 제조업과 공급망 공고화가 국가안보의 기초라는 인식 아래 반도체 기술 등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신형 거국체제”와 “비상한 정책수단”을 활용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시진핑 지도부는 2015년 ‘중국제조 2025' 발표 이후 전략 산업 육성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특히 트럼프 2기 미국의 관세 공격 등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최근에는 ‘중국 모델’에 대한 자신감이 커졌다. 시진핑 주석은 올해 신년사에서 “우리나라는 혁신 능력이 가장 빠르게 상승하는 경제체 가운데 하나가 됐다”고 자부했다. 2024년과 2025년 신년사에서 “대중의 취업과 생활의 어려움” “불확실성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언급했던 것에서 확연히 달라졌다. 중국은 전기차, 태양광, 반도체 등 현재의 첨단 산업뿐 아니라 핵융합, 양자 역학, 휴머노이드 로봇 같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분야에도 막대한 투자를 한다. 미래 산업까지 선점하려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의 전략은 중국은 기술 자립을 공고히 하고, 세계는 중국에 더 의존하게 만드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이란 침공 이후 많은 중국인들은 시진핑 주석이 자급자족을 강조하면서 석유와 원자재를 비축하고 미국에 덜 의존하는 경제 체제를 만들어온 것을 선견지명으로 재평가하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 원유 수입의 절반과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의 3분의 1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에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 중국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지난 10여년 동안 석유, 가스 의존도를 줄이고 석탄, 수력, 태양광, 풍력 등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는 ‘전기화’를 진전시켜 석유에 덜 의존하는 경제를 만들어왔다. 세계 최고 수준인 전기차 보급과 충전 인프라 확충은 그 일부분이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세계가 앞다퉈 석유, 가스 의존을 줄이고 ‘전기화’를 추진할수록 중국에 대한 의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전세계 태양광 모듈 제조, 풍력 터빈, 배터리 생산 능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 기술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의 생산과 가공도 대부분 통제하고 있다. 에너지 안보 우려가 커질수록 세계는 중국의 재생에너지 기술과 공급망에 의지해야 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번 전쟁의 진정한 함의는 미국의 ‘석유 시대’ 비전과 중국의 ‘전기 시대’ 비전의 경쟁이며, 자급자족할 수 있는 전기에 기반한 중국 시스템이 ‘석유-달러-군사동맹’에 기초한 미국의 세계 운영체제에 도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주요 첨단기술 기업가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은 지난해 2월17일 인공지능 기업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과 악수하는 모습이 베이징 시내 전광판에 비치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중국의 ‘제조업 가진 미국 되기’ 전략이 큰 성과를 내고 있고 중국을 무소불위의 승자로 만들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중국 국내에서는 자원이 집중적으로 투입되는 첨단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민생 경제의 침체라는 K형 양극화가 점점 더 극심해지고 있다. 중국에는 중산층 약 4억명과 하루 10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약 10억명이 동시에 존재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이윤이 늘지 않는 과도한 경쟁을 의미하는 ‘네이쥐안’이 일상어가 되었다. 기술적으로는 빠르게 발전하지만 과도한 경쟁 때문에 수익이 낮아지고 중복 투자가 심각하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탕핑(누워있기)’으로 소극적 저항과 불만을 표현하는 데 대해, 최근 중국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는 ‘외국 세력이 탕핑을 부추기며 중국 청년들의 정신을 부식시키려 한다’는 홍보 영상을 올렸다. 청년들의 불만이 폭발할까 경계하지만, 분배와 복지를 개선하기보다는 ‘외세 탓’으로 돌린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중국산 가성비 제품들의 ‘과잉 생산’이 문제다. 정부의 각종 보조금과 정책적 지원으로 우후죽순 생겨난 첨단기술 기업들은 치열한 경쟁을 거친 뒤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선다. 한국, 일본, 독일과 프랑스 등 주요 제조업 국가들은 점점 더 중국산 첨단 제품의 가격 경쟁력에 밀리고 있다. 동남아와 중동, 아프리카와 남미도 중국산 가성비 제품이 석권하고 있다. ‘트럼프 관세’의 역풍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무역 흑자는 지난해 1조달러를 돌파했고, 올해도 계속 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중국의 과잉 생산 문제를 지적하면서 무역장벽을 높이려 하지만, 중국은 자국 제품의 경쟁력이 강할 뿐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반박한다.

하지만, ‘제조업을 가진 미국 되기’ 전략의 과도한 성공은 역설적으로 ‘중국이 무한정 만들어내는 제품을 누가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중국 첨단제조업이 다른 나라의 시장과 일자리를 계속 잠식하는 상황에 대한 공존의 해법이 필요하다. 지만수 연구위원은 “‘중견국 연대’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대응뿐 아니라 제조업과 무역의 공정한 질서를 강조하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서 “한국, 독일, 일본을 비롯한 제조업 기반 중견국들이 힘을 합쳐야 중국의 과잉 생산과 보조금 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새로운 규범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시진핑 시대 중국은 국가 주도로 부국강병을 향해 파죽지세로 질주하고 있다. 첨단제조업은 강한 군사력으로 이어진다. ‘싸워서 이기는 군대’ 만들기와 ‘제조업 가진 미국 되기’는 부국강병을 향한 시진핑 주석의 핵심 전략이다. 하지만 부국강병의 그림자에 갇힌 ‘또 다른 중국’과 중국 제품에 밀려나는 다른 국가들의 우려와 불안도 커지고 있다. 20세기 초 제국주의 열강들이 산업 생산력을 기반으로 군사력 경쟁을 벌였고 결국 제한된 자원과 시장을 놓고 충돌하면서 세계대전으로 나아갔던 역사의 교훈도 되새겨 볼 때다.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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