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은 순간, 세계는 흑백이 된다... 영화 '먼 훗날 우리'

아르떼 2026. 5. 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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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언정의 시네마테라피
미뤄진 사랑,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기록

'시간의 비가역성'과 '사랑의 동역학'

영화는 로맨스의 외피를 두르고 사랑의 타이밍이라는 전통적 방식을 따르지만, 실상은 시간의 비가역성을 시각적으로 풀어낸 텍스트에 가깝다. 이는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말한 ‘시간-이미지’처럼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공존하며 서로를 침식하는 구조에 가깝다. 연출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는 데서 나아가, 색채와 공간의 대비를 통해 ‘현존’의 유무를 드러낸다. 젠칭의 세계에서 샤오샤오가 없는 현재는 단순히 색이 빠진 상태가 아니라, 존재의 유효한 데이터가 삭제된 비실재적 공간이 되었다. 영화 속 베이징의 좁은 자취방과 광활한 설원은 공간의 대비를 넘어 서로 다른 시간의 감각을 보여준다. 과거의 좁은 방은 인물들의 밀도가 가장 높았던 동역학적 공간으로 기능하며 감정과 기억을 응축하는 장소가 된다. 반면 성공 이후 마주한 비행기 안이나 호텔 같은 정제된 공간은 정역학적 상태이자 정지된 시간이라는 감각을 남긴다. 같은 프레임 안에 있어도 서로 다른 시제를 사는 이들에게 어쩌면 이별은 예견된 탈조 아니었을까.

의심의 여지 없이 서로를 깊이 사랑했지만, 사랑의 증명 방식이 달랐다. 남자는 빨리 성공해서 샤오샤오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고, 여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 소통하며 곁에 있어 주는 사랑을 원했다. 젠칭은 ‘나중에 성공하면, 나중에 준비되면, 나중에 돈을 벌면’이라며 함께하는 행복을 유예했으나 사랑은 조건이 다 갖춰진 뒤에 시작되는 결괏값이 아니라 결핍마저 공유하는 현재 진행형 상태이기를 샤오샤오는 바랐다. 남자에게 있어 사랑은 완성하고 성취해야 할 과제였고, 여자에게 있어 사랑은 함께 숨 쉬는 순간 그 자체인 보금자리였다. 젠칭은 사랑을 유지할 조건을 만들기 위해 그토록 게임 개발과 성공에 매달렸으나, 실존을 원했던 샤오샤오는 성공한 젠칭을 보고도 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정작 ‘우리’를 잃었다.

사랑, 하나의 공통된 언어가 아닌 각자의 방식으로 발화되는 담화

사랑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사랑의 감정이라는 추상적 가치가 표현이라는 구체적 행위를 만나지 못했을 때 어떻게 마모되고 소진되는지 영화는 말하고 있다. 서로의 다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한 사랑은 서사가 되지 못한 채 그렇게 오독으로 남을 뻔했으나, 연출은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걸까. 영화 말미에 그들의 진솔한 대면을 거쳐 화면을 흑백에서 컬러로 물들이며 다시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기어이 무채색의 현재를 유채색으로 돌려놓은 영화의 방식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비로소 진심을 출력해 낸 인물들의 각성에 있다. 영화 <먼 훗날 우리>는 사랑의 시차, ‘나중’이라는 관성과 ‘지금’이라는 동력에 기인한 시간의 비대칭성에 주목하여 시간에 대한 감각의 차이를 그리고 있다. 영화는 후회의 정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지금 이 순간의 현존에 대한 강렬한 긍정을 담았다.

이 영화가 관습을 거스르는 가장 도발적인 지점은 시간의 역설적 배치와 색채의 전복에 있다. 전통적으로 흑백은 대개 회고적 층위를 담당하지만, 연출은 이를 뒤집어 현재를 흑백 처리함으로 정서적 실명의 상태를 현재에 투사한다. 둘이 함께였던 과거는 선명한 색으로 채워져 있지만, 성공의 결실인 현재의 설원과 젠칭의 아파트는 안정적이지만 백색 소음만이 가득한 무미건조한 톤의 흑백으로 그려진다. 이는 젠칭이 설계한 게임 속 서사와 조응하며, 사랑의 상실이 세계의 광학적 본질마저 변질시킨 존재론적 허무를 가시화했다. 젠칭이 개발한 게임 속 대사는 이 영화 전체의 시각적 메타포로 작동하는데, 샤오샤오라는 뮤즈를 잃은 젠칭의 세계는 이후 물질적 풍요를 얻었음에도 시각적 죽음을 맞이한다. 어쩌면 자본주의적 성공 앞에 그의 정서는 잠식되어가고 있던 것 아니겠는가.

‘이언이 켈리를 끝내 못 찾으면 세상이 온통 무채색이 되지’

영화 전반을 아우르는 게임의 이 설정과 대사는 단순한 장치가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감각이다. 이것은 한번 소실되면 복구할 수 없는 비가역적 시간에 대한 은유이자 자아의 상실이며, 사랑이라는 동력을 잃은 인간의 상태를 시각화한 것이다. 현실에서 놓쳐버린 자신의 마음을 젠칭은 가상의 세계에 붙잡아 두었다. 샤오샤오는 존재 자체로 젠칭을 성장시키는 동력이고, 그의 창조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생동하는 영감을 잃은 시스템이 얼마나 무미건조한 상태에 놓이는지 영화는 사랑의 동역학으로 보여주고 있다. 젠칭은 사랑을 잃고 나서야 그것을 게임 속에 박제함으로 성공을 거둔다. 여기서 샤오샤오는 젠칭의 평생을 지배하는 뮤즈로 격상한다. 그리고 영화처럼 마침내 게임의 끝에서 세상이 다시 아름다운 빛깔로 변하는 건 샤오샤오를 향한 젠칭의 진심 어린 사죄이자 거대한 고백이 아니겠는가.

샤오샤오가 떠나던 날 뒤늦은 후회로 그녀를 따라갔던 젠칭이 지하철 안 샤오샤오의 프레임으로 결국 진입하지 못한 건 사랑의 행위자이길 포기하고 관조자로 전락하는 구간이다. 그렇기에 영화의 후반부 다시 만난 두 인물은 서로를 놓친 것과 끝내 서로의 프레임으로 들어서지 못한 것에 대한 비애를 드러낸다. 그들이 끊임없이 주고받는 사랑에서의 ‘만약에’라는 가정이 얼마나 무력하고 무의미한지를 관객은 애태우며 지켜본다. 모든 변수가 통제된 실험실의 완벽한 순간이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기에, 망설임이라는 가장 비효율적인 함수를 버리고 불완전한 궤도 속으로 뛰어드는 용기가 사랑을 사랑 되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모든 조건을 갖추느라 망설이는 사이, 가장 중요한 변수였던 상대의 마음이 이미 시스템 밖으로 이탈해버렸기에 젠칭의 성공은 목적지를 잃은 공허한 출력값으로 상정되었다. 삶은 정지해있는 정역학이 아니라 끊임없이 에너지가 소실되는 동역학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늦기 전에 말하라고 수없이 되뇐다. 모든 정밀 기계에 적절한 제어 신호가 입력되어야 하듯, 모든 관계 역시 적절한 발화나 표현이라는 구체적 입력을 통해 비로소 그 방향성을 갖는다. 마음속에만 머무는 감정은 아무 변화도 만들지 못한다. 아무리 완벽한 설계가 있어도 적절한 입력값이 주어지지 않으면 시스템은 정지된다. 마음이 있어도 구체적인 행동이나 표현이 동반되지 않으면 사랑은 그 빛을 잃는다. 만약 우리의 세계가 빛을 잃어가고 있다면, 그것은 시스템 결함이 아니라 우리의 세계를 완성할 단 하나의 뮤즈를 앞에 두고도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신호 하나를 송출하지 않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젠칭이 그의 게임 세계에서라도 샤오샤오가 그토록 바라던 확신을 준 것처럼, 우리의 세계가 온기 가득한 빛깔로 어서 물들길.

이언정 명지대학교 연극영화전공 교수

[영화 '먼 훗날 우리' | 공식 예고편 | Netfl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