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민통선, 소문의 낙원이 아니라 삶을 짓는 도장(道場)

경기일보 2026. 5. 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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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거리에서 '소문의 낙원'이라는 노래가 자주 들린다.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그 낙원에 대한 노래다.

그러나 도장에서 가장 거센 바람은 자기 안에서 분다.

이런 이들이 한 명씩 모여 이 땅에 자리를 짓기 시작할 때 바깥의 소문 속 낙원은 비로소 숨 쉬는 도장으로 바뀌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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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려 DMZ숲 대표
임미려 DMZ숲 대표


요즘 거리에서 ‘소문의 낙원’이라는 노래가 자주 들린다.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그 낙원에 대한 노래다. 가사를 듣다가 문득 웃음이 났다. 바깥의 사람들에게 민통선 철책 너머의 공간이 꼭 그렇게 들리겠구나 싶어서다.

바깥에서 이 땅은 오랫동안 소문의 낙원이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 신비한 야생, 시간이 멈춘 평화의 정원.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닫힌 경계에는 늘 가장 화려한 상상이 덧칠해지는 법이다. 70년의 통제가 만들어낸 가장 큰 산물은 어쩌면 이 짙은 환상의 두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9년간 이 안에서 살아본 사람으로서 분명히 적어 두고 싶다. 이 땅은 결코 낭만적인 낙원이 아니다. 필자는 이 숲을 종종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번뇌시도장(煩惱試道場)’. 번뇌가 곧 수행의 재료가 되는 자리, 제약과 불편이 그대로 길이 되는 도량이라는 뜻이다. 분단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자기 자리를 짓고자 하는 사람이 매일 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현실의 다른 이름이다.

낙원에는 절차도, 시간표도 없다. 그러나 도장(道場)은 절차와 일몰의 시간에 묶여 있다. 손님 한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서도 며칠 전 군에 명단을 보내야 하고 아침마다 자재를 실은 차들은 검문소 앞에서 긴 기다림을 거쳐야만 안으로 들어선다. 그렇게 어렵사리 숲에 들어와도 해가 지면 여지없이 땅을 비워야 한다. 야간 작업으로 시간을 연장하는 도시의 방편은 여기에 없다. 안보라는 큰 틀 위에 생업이 얹혀 있기에 즉흥적인 방문도, 시간을 빚내어 쓰는 밤샘도 허락되지 않는다. 모든 만남에는 며칠의 시차가 깔리고 모든 일은 오직 태양이 허락한 시간 안에서만 멈추고 또 시작된다.

낙원은 바람이 일지 않는다. 그러나 도장에서 가장 거센 바람은 자기 안에서 분다. 이 모든 마찰 앞에서 가장 자주 흔들리는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내 안의 작은 욕심이다. 절차를 우회하고 싶고 시간을 압축하고 싶고 화려한 시설로 단번에 시선을 끌고 싶은 유혹. 그러나 그 조급함에 굴복하는 순간 이 땅이 70년간 품어온 결은 쉽게 파괴된다. 매일 이끼 앞에 웅크리고 앉아 스스로의 허영을 솎아내는 일이 가장 뼈아픈 작업이다.

낙원의 서사는 사람을 잠시 머물게 한다. 도장의 서사는 사람을 오래 살게 한다. 평화의 환상을 품고 온 사람은 검문소 앞에서 표정이 굳고, 들어와서도 신기루를 좇다 떠나간다. 그러나 이 땅을 기꺼이 번뇌시도장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르다. 명단의 절차를 자기 박자로 들이고 일출과 일몰의 시간표를 자기 호흡의 일부로 삼으며 행정과 협상하는 매일의 일을 자기 삶의 형식으로 껴안는다.

이 땅에 들어와야 할 사람도 분명해진다. 낙원을 소비하러 오는 사람이 아니다. 분단의 시스템과 마주하면서도 묵묵히 그 마찰을 견뎌내며 삶을 일구고 마침내 그 지난한 과정을 단단한 ‘신뢰 자산’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이들이 한 명씩 모여 이 땅에 자리를 짓기 시작할 때 바깥의 소문 속 낙원은 비로소 숨 쉬는 도장으로 바뀌어 간다.

낙원은 주어지는 자리가 아니라 분단의 시스템과 치열하게 대면하며 짓는 자리다. 9년의 도장이 이 척박한 땅 위에서 필자에게 가르쳐 준 단 하나의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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