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소년소녀 문예지 ‘이야기숲 어딘가’ 창간 이야기 [김현아의 우연한 연결]

한겨레 2026. 5. 5.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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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우석

김현아 | 작가·로드스꼴라 대표교사

첫눈이 내린다
모두가 들떠있다
오늘은 고백데이니까!
우리 반 남자애 한 명은 다른 반
여자애에게 고백을 받았다
얘는 거절했다
우리 반 남자애 한 명도 다른 반
여자애에게 고백을 했다
하지만 차여버렸다
우리 반 어떤 여자애도 우리 반
남자애한테 고백했다
애들은 받아주라 했지만 남자애는 싫다 했고
여자애는 울었다
첫눈은 감성도 있지만 마음이 아픈
날인가 보다

수박(최세인), 초등학교 6학년, 첫눈 오는 날 전문
2025년 12월4일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 첫눈치고는 꽤 많은 양이 내려서였는지 어쨌는지 서울 시내는 교통대란으로 그야말로 난리 북새통이었다. 도로에서 오도 가도 못한 채 불편을 겪는 사연이 소셜네트워크에 차고 넘쳤다. 2시간 동안 버스에 갇혀 있었다, 평소라면 30분 거리를 3시간에 걸쳐 왔다, 사람들은 사전 대비를 못 한 서울시에 분통을 터트리고 짜증을 냈다. 그 시간 어린이글방에서 수박은 첫눈에 대한 시를 쓰고 있었다. 몽글몽글 고백과 두근두근 긴장과 사귀어라 사귀어라 응원과 거절당한 슬픔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시를 보며 나는 아아, 얼마나 다행인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른들의 상황과 무관하게 어린이들은 사랑을 고백하고 지지하고 울고 웃으며 첫눈을 맞이했던 거다. 어찌나 다행인가. 고단한 삶을 살다가도 적어도 첫눈이 오는 날은, 사랑을 꿈꾸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수박의 시가 몹시나 아름다워 나는 두번이나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어린이글방을 시작한 지는 6년이 됐고 청소년글방을 시작한 지는 3년이 다 되어간다. 글방에서 글을 읽을 때면 자주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당사자성을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이런 경우다. ‘최후의 5인’이라는 글감이 나간 날이다. 어떤 어떤 이유로 이 세상에 다섯명의 사람만 살아남아야 한다면 누구를 남길 것인가, 청소년들은 집중해서 글을 쓰고 서로의 글에 대해 합평을 했다. 열여섯살 한들은 영국인 남성 탐험가 베어 그릴스, 미국의 기업가 일론 머스크, 한국의 개그맨 유재석,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파키스탄의 인권운동가 말랄라 유사프자이를 남겨두고 싶다는 글을 썼다. 나름 합리적인 인선인데, 라고 생각하는데 중학생 검바가 말했다. 주로 늙은 아저씨들만 있네요. 오호라, 뒤통수가 시원했다. 열네살 검바의 당사자성이 너무 잘 보여서다. 늙은 아저씨들보다는 젊고 어린 사람들이 살아남아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마음이 은연중에 반영된 소년 검바의 비평이 나는 반갑고 통쾌했다.

‘이야기숲 어딘가’를 창간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청소년과 어린이들은 우리 공동체의 중요한 구성원이다. 더 자라서, 어른이 돼서 우리 사회의 성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이 위치에서 어린이인 채로 청소년인 그대로 우리 공동체의 중하고도 귀한 일원이다. 미래세대에 대한 사랑과 걱정과 수많은 논의에 비해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직접 쓴 글이 출판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주요 필진이 되어 그 당사자성이 드러나는 잡지 한권, 있으면 참 좋겠다, 라는 생각에서 ‘이야기숲 어딘가’는 출발한다. 오랜 시간 함께 글을 써왔던 글방 친구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이야기숲 어딘가 2026 봄 -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어린이글방과 청소년글방은 매주 한번 줌(zoom)에서 만나 글을 쓰는 모임이다. 방학 때는 글방 캠프를 열어 얼굴을 보고 글도 쓰고 양껏 놀고 밤을 지새우며 수다를 떤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열살에서 열여덟살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몇 년에 걸쳐 쓴 글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이 재미있고 웃기고 쟁쟁하고 가슴 아프고 활활발발한 글을 우리 공동체의 다양한 세대와 함께 읽고 싶은 마음으로 ‘이야기숲 어딘가’를 시작한다. 21세기 소년소녀 문예지라는 이름으로. 교실의 풍경, 가족의 지형도, 우정과 질투와 사랑, 꿈과 야망 따위 온갖가지 진솔하고 뭉클한 속 터지는 이야기가 모이고 연결되고 흩어지는 곳 이야기숲 어딘가. 이 글들이 또래와 연결되면서 우정과 연대의 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다양한 세대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 또한 품는다.

산속에서는
아주 많은 별들을 만납니다
어제는 오리온을 만났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별이 되는 걸까요
어떻게든
별이 되는 이야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설령, 그 좁은 별에 갇히더라도.

날개(신호윤), 중학교 3학년, ‘오리온’ 전문
요런 근사한 시를 만날 수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글을 통해 내가 알게 된 건 열살은 열살의 자리에서, 열여섯은 열여섯의 자리에서, 세계를 이해하려 몹시 애쓰고 더할 수 없이 관계에 공들이고 갈등을 해소하려 마음을 다하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숲 어딘가’는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그들 세대의 감각과 감수성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미래를 예견하고 함께 살아갈 동지들을 규합하는 매체가 되도록 애쓸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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