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광장] Inside 국민참여재판

임채원(뉴욕 존 제이 형사 사법대학 법정심리학 전공) 2026. 5. 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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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심원은 어떠한 방식으로 결정을 내릴까
재판에서 배심원에게 제시되는 증거의 종류나 양보다, 그 증거가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제시되고, 그들이 어떤 맥락 속에서 가설을 선택하고 배제하는지에 따라 결정은 달라진다. 미국의 심리학자 낸시 페닝턴과 리드 헤이스티는 배심원들이 재판에서 제시된 복잡한 증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판단에 이르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스토리 모델(Story Model)을 제시하였다(Pennington & Hastie, 1986, 1991). 이 이론에 따르면, 배심원은 개별 증거와 증언을 하나하나 산술적으로 계산하듯 평가하기보다 사건에 대한 하나의 일관된 서사(narrative story)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즉, 재판에서 제시되는 단편적이고 분절된 정보들을 접하면서, "피고인이 분노를 느끼고 의도를 품은 뒤 행동으로 옮겨 → 결과를 초래했다"와 같은 인과적 흐름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개별적으로는 아무리 강력해 보이는 증거라도 그것이 하나의 일관된 이야기 구조로 연결되지 못하면 설득력을 잃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배심원의 판단이 이와 같은 사고에 의존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설과 설명이 어떤 방식으로 선택되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설명 제거(explaining away)라 불리는 사고 패턴은 동일한 결과를 설명하는 여러 원인이 존재할 때, 하나의 원인(X)이 받아들여지면 다른 원인(Y)은 설득력을 잃고, 설명되어 사라지는 (explained away) 현상을 말한다(Lagnado, 2021).

다른 한 연구에서는 참가자들에게 한 피고인이 제시된 상황에서 유무죄를 판단하게 했을 때 유죄 평결 비율이 70%대에 달했으나, '플랜 B'라 불리는 '용의자로 가능성 있는 인물'이 추가로 제시되자 그 비율이 30%대로 감소하였다 (Tenney et al., 2009). 새로운 용의자의 등장이 기존의 확신을 얼마나 크게 흔들고 의심을 증가시키는지 보여주는 실험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제로섬 오류(zero-sum fallacy) 또한 주목할 만하다. '제로섬 사고'란 전체를 한정된 몫으로 보고 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쪽은 반드시 그만큼의 손해로 이어진다고 여기는 관점으로, '고정된 파이(fixed pie)'에서 파이를 나누어 갖는 상황에 비유된다. 이러한 사고를 오류로 보는 것이 '제로섬 오류'이다. 영국의 심리학자 데이비드 래그나도는 실제로는 하나의 증거가 두개의 경쟁 가설을 동시에 지지할 수 있음에도, 두개의 가설이 동일한 수준으로 같은 증거를 예상하는 경우, 사람들은 해당 증거가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Lagnado, 2021).

예를 들어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E)에 대해 피고인의 범행 과정에서 남겨졌다는 가설(A)과, 피고인의 과거 방문의 흔적이라는 가설(B) 또한 동일하게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는 경우에, 해당 지문(E)은 증거로서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처럼 상황을 '시소'처럼 생각하는 것은 두 가설(A,B) 중 반드시 하나만 참(true)일 경우에만 성립한다(Lagnado, 2021). 하지만 대부분의 법적 상황은 두 가설이 동시에 참 또는 거짓일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를 단순히 한쪽이 강화되면 다른 쪽이 약화되는 '제로섬' 관계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지적 오류와 판단의 흔들림은 사실 낯선 일이 아니다. 하나의 선택지만 고려하고 있을 때는 비교적 확신을 갖지만 새로운 대안이 등장하는 순간 그 확신은 쉽게 흔들린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의 상황이 두 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있음에도 두 설명이 비슷하게 가능할 경우에는 그 상황 자체의 의미를 축소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굳건한 믿음이라도 작은 변화에 흔들리고, 그 과정에서 판단의 방향이 왜곡되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다.

다만 배심원의 판단은 그 무게가 다르다. 판단이 타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많은 경우 법정에서 제시된 정보만을 바탕으로 제한된 시간 안에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배심원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지를 밝히는 실험과 연구는 더욱 중요해진다.

배심원 결정은 이러한 개인의 인지적 처리 과정에서만 형성되는 것 외에도, 그들이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존대 문화와 연령 위계는 집단 내 의사소통 방식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연령이나 지위에 따른 위계가 상대적으로 약한 사회에서는 배심원 간 보다 수평적인 의견 교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반면, 위계적 문화에서는 일부 배심원이 스스로 발언을 자제하거나 심리적 위축을 느낄 가능성이 존재한다.

배심원 제도는 법률 전문가가 아닌 시민들이 각자의 경험과 상식을 바탕으로 숙고하고 의견을 전달하는 과정을 통해 판단에 이르는 데 그 의의가 있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판단은 단순히 증거의 강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판단자에게 어떤 이야기로 형성되는지, 어떤 대안이 어떻게 제시되는지, 그리고 어떤 사회적 맥락 속에서 논의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국민참여재판의 공정성을 살펴볼 때에는 결과뿐 아니라 그 판단이 형성되는 과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의견이 위축되지 않고 전달되도록 하는 것과 인지적 편향과 집단 내 상호작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왜곡을 줄이려는 노력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참고

Lagnado, D. A. (2021). Competing Causes. In Explaining the Evidence: How the Mind Investigates the World (pp. 156-171). chapte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ennington, N., & Hastie, R. (1986). Evidence evaluation in complex decision making.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51(2), 242.

Pennington, N., & Hastie, R. (1991). A cognitive theory of juror decision making: The story model. Cardozo L. Rev., 13, 519.

Tenney, E. R., Cleary, H. M., & Spellman, B. A. (2009). Unpacking the doubt in "beyond a reasonable doubt": Plausible alternative stories increase not guilty verdicts. Basic and Applied Social Psychology, 31(1), 1-8.

임채원(뉴욕 존 제이 형사 사법대학 법정심리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