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 정부 두루 요직’ 이홍구 전 국무총리 별세…향년 92

이지은 기자 2026. 5. 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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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학계를 두루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했던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5일 별세했다.

이 전 총리는 1934년 태어나 경기고·서울대를 거쳐 미국 에모리대·예일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69년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 부임해 학술지와 신문 등에 당대 정치를 조명한 논문과 논설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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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지난 2010년 9월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마드리드클럽 서울 원로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정치·외교·학계를 두루 넘나들며 활발히 활동했던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5일 별세했다. 향년 92.

이 전 총리는 1934년 태어나 경기고·서울대를 거쳐 미국 에모리대·예일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69년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 부임해 학술지와 신문 등에 당대 정치를 조명한 논문과 논설로 주목받았다. 한국정치학회 회장 등을 지내며 학자의 길을 걸었다.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국토통일원 장관으로 입각해 본격적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대통령 정치특별보좌관과 주영국대사를 역임했다. 노태우 정부의 통일 방안인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을 전향적으로 성안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영삼 정부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지낸 그는 1994년 제28대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총리직을 마치고 나서는 1996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대표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해, 같은 해 치러진 제15대 총선에서 전국구(현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신한국당 대표를 맡았으나, 그해 12월 ‘노동법 날치기’ 사건의 역풍으로 대표직을 사임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뒤 초대 주미대사로 발탁돼 당시 ‘아이엠에프(IMF·외환위기) 사태’의 조기 수습에 나섰다. 2000년 이후에는 서울국제포럼 이사장, 중앙일보 고문, 대한배구협회 고문,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 유민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논평을 내어 “고인은 한반도 통일 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의 중요한 방향을 설계했고, 보수정권 출신 인사로는 이례적으로 김대중 정부 주미대사로 기용돼 한미 관계 안정과 국제사회 신뢰 회복을 위해 헌신하셨다”며 “한국 정치가 지향해야 할 합리와 중용, 통합의 가치를 몸소 실천해 온 고인의 유산을 되새기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도 논평에서 “합리적 보수의 상징이자 학자와 행정가, 정치인으로서 현대사의 고비마다 이정표를 세우셨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박한옥씨와 아들 현우(EIG 아시아 대표)씨, 딸 소영·민영(동덕여대 교수)씨, 며느리 황지영(홍콩한인여성회장)씨, 사위 이강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졌으며, 발인은 8일 오전 8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지다. (02)3010-2000.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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