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부모 모시는 게 당연한 일이지예”…47년 ‘외길 효심’이 일깨운 진심
"일찍 부모 여윈 사랑을 시부모께 돌려 드리겠다고 다짐"
척추장애 남편과 치매 시어머니 수발하며 시동생들도 거둬

"부모 모시는 데 무신 상을 받을 이유가 있니껴. 며느리하고 아들이면 당연히 해야 될 일이지요."
각자도생의 시대, 병든 노부모를 노인요양시설에 의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 된 지 오래다. 잊혀져 가는 '효(孝)'의 참된 의미를 무덤덤한 사투리로 일깨우는 이가 있다. 7일 대구 보화원 회관에서 열리는 '제69회 보화상' 시상식에서 효행상을 수상하는 안동시 도산면 의일리 김순옥(69)씨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달 28일 취재진이 찾은 김씨의 시골집은 모처럼 고요했다. 평소라면 김씨 곁에 꼭 붙어 있었을 98세 시어머니 박분돌 여사가 이날만큼은 딸 집에 잠시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된 담배 농사와 밭일 속에서도 환하게 웃으며 취재진을 맞는 김씨의 굳은살 배인 손은 그가 걸어온 인고의 세월을 대변하고 있었다.
김씨의 삶은 희생과 인내의 연속이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백부 댁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자란 그는 17세 어린 나이에 남편을 만나 시집을 왔다. 넉넉히 받지 못한 부모의 사랑을 시댁 어른들에게 되돌려주겠노라 다짐했던 소녀는, 8남매의 맏며느리로서 새벽 4시에 일어나 밥을 지으며 시동생들을 거뒀다. 본인도 청각장애라는 불편함을 안고 살지만, 허리 수술 후 의료사고로 척추장애를 얻은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며 1남2녀를 반듯하게 키워냈다. 자녀들에게도 거창한 훈계 대신 "어른들에게 잘해야 한다"는 간단한 말과 함께, 헌신적인 삶 자체로 본을 보였다.
효심의 정점은 수십 년째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에서 빛난다. 시어머니는 외부인의 손길과 요양원 입소를 완강히 거부했다. 김씨 역시 어머니를 낯선 이의 손에 맡기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고, 자신만 굳게 의지하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알기에 직접 곁에서 모시는 길을 택했다.
요양보호사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형편에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이동식 목욕차를 불러 직접 시어머니를 씻기고, 따뜻한 식사와 편안한 잠자리를 내어드리는 데 온 정성을 다했다. 반세기 가까운 세월을 곁에서 모시며 삶의 희로애락과 병수발을 함께한 덕에, 이제 두 사람은 말 한 마디 없이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원하는 것을 단번에 알아채는 깊은 교감을 나눈다.
행여 시어머니에게 위급한 상황이 생길까 봐 늦은 나이에 오토바이 면허를 취득한 일화는 그의 진심을 잘 보여준다.
시어머니가 한여름 대낮에 길을 잃었던 아찔한 사건은 그의 마음을 더욱 애타게 했다. 마을 부녀회장으로 봉사할 때조차 행사 중간중간에 끼니를 챙기려 집을 오가던 그는, 결국 열정을 쏟던 부녀회장직마저 내려놓고 오롯이 어머니의 수족이 되기를 자처했다.
가까이서 부부의 삶을 지켜본 시누이 김순희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김순옥씨를 칭찬했다. "어지간하면 요양원에 모셨을 텐데 묵묵히 수발을 다 든다"며 "진짜 저런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매일매일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47년 헌신을 지켜본 남편 김진만(78)씨 역시 깊이 빚진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는 "젊은 시절 속을 참 많이 썩였는데, 일찍 시집와서 온갖 고생을 다 견뎌줬다"며 "내 어머니를 다른 이의 손에 맡기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모셔주니, 남편으로서 뼈저리게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라고 진심을 전했다.
쏟아지는 찬사에도 정작 김순옥씨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그저 내 어머니 쳐다보듯 모셨을 뿐"이라며 겸손하게 손사래를 쳤다. 이런 따뜻한 마음씨 덕에 그는 동네에서 '의일리 미소천사'라 불리며, 복지 사각지대의 어려운 이웃들까지 살뜰히 챙기고 있다.
우리 시대가 지향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본보기가 된 김씨는 7일 대구 남구 대명동 보화회관 4층 승당홀에서 열리는 '제69회 보화상' 시상대에 올라 영예로운 보화상 효행상을 수상한다. 안동의 한 시골 마을에서 피어난 47년 헌신은, 진정한 효도란 단순한 도리를 넘어 타인에 대한 깊은 연민과 사랑이 체화된 삶의 방식임을 묵직하게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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