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놀이터는 있는데 못 놀아요”…대구 아이들 ‘놀 권리’의 현실

권종민 기자 2026. 5. 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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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통제·시간 부족에 막힌 일상…구조 바꿔야
대구 중구 수창공원 바닥분수에서 어린이들이 물장난을 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대구일보 DB

아동의 '놀 권리'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명시된 기본 권리지만, 현실에서는 학업 중심의 생활과 사회적 통제 속에서 충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교육열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이들의 놀이시간은 줄어들고, 놀이공간 역시 제약을 받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간이 없다"…학원에 묶인 아이들

"놀이터는 있는데, 갈 시간이 없어요."

대구 수성구 범어동에 사는 중학교 2학년 김민준(15)군의 하루는 빈틈이 없다. 학교수업이 끝나면 영어·수학·과학학원을 차례로 다니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 10시가 훌쩍 넘는다. 김군은 "친구들이랑 공원에서 놀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며 "주말에도 숙제나 학원 때문에 마음껏 놀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동의 '놀 권리'가 사회적으로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 일상에서는 제대로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동권리보장원이 발표한 '2025 아동권리 인식조사'에 따르면 아동의 40.1%가 놀 권리 보장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놀 시간 부족'을 꼽았다. 놀 권리 체감도 역시 3.15점으로 전체 평균보다 낮았다.

대구의 대표적인 학원 밀집지역인 수성구 만촌동 일대에서 학교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곧바로 학원으로 이동하는 모습은 일상처럼 반복된다. 이 지역에 거주하며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이정은(43·여)씨는 "주변 분위기 때문에라도 학원을 줄이기 쉽지 않다"며 "아이도 힘들어하지만, 경쟁에서 뒤처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조사에서도 성인의 절반 이상이 '아동이 원하지 않는데도 과도한 사교육을 받는 상황'을 목격했다고 답했다. 학습 중심의 생활구조가 아동의 시간을 크게 제약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구 중구 수창공원 바닥분수에서 어린이들이 물장난을 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대구일보 DB

◆대구 놀이터, 달서구 최다·군위군 최저 '격차 뚜렷'

대구지역 어린이 놀이시설이 3천300곳을 넘는 가운데, 구·군별 '생활권 격차'가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5일 대구시 홈페이지의 어린이 놀이시설 현황에 따르면 전체 시설 수는 3천363곳이다. 구·군별로 보면 △달서구 758곳 △북구 650곳 △수성구 564곳 △동구 526곳 △달성군 454곳 순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서구 146곳 △남구 134곳 △중구 120곳 △군위군 11곳 등은 적은 편이다. 달서구(758곳)와 군위군(11곳)의 차이는 약 70배 수준으로, 지역 간 격차가 매우 큰 것으로 분석된다.

놀이시설은 인구가 많은 지역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달서구·북구·수성구 등 대규모 주거지역은 아파트 단지와 학교를 중심으로 시설이 밀집된 반면, 군위군과 중구 등은 절대 수 자체가 적었다. 이는 어린이 놀이시설의 절반 이상이 주택단지 내에 설치되는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실제 전국적으로도 약 52%가 아파트 등 주거지역에 설치돼 있다. 즉, 주거 밀도가 놀이시설 수로 이어지는 구조가 대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셈이다.

대구지역 어린이 놀이시설의 또 다른 특징은 '공원 중심'이 아니라, '생활권 중심'이라는 점이다. 전체 시설 중 주택단지(아파트) 비중이 가장 높고, 도시공원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구조다. 실제로 북구의 경우 어린이 놀이시설이 650곳에 달하지만, 이 중 상당수가 아파트 단지 내 시설로 구성돼 있다. 이는 접근성은 좋지만, 공공 놀이공간 기능은 제한되는 이중적 구조를 나타낸다.

놀이시설 숫자는 적지 않지만, 어린이의 체감도가 낮은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시간 부족이다. 학원 중심의 생활로 공원이나 놀이터를 이용할 시간이 부족하다. 둘째, 공간 활용 제한이다. 아파트 놀이터는 소음·안전 문제로 활동이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 셋째, 지역 간 불균형이다. 군위군 등 일부 지역은 시설 접근성 자체가 낮다. 결국 시설 수 증가가 놀이권 보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다.

대구시는 현재 공원 확충과 생활SOC 확대를 추진 중이지만, 놀이 정책은 여전히 '시설 공급'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향후 과제로 학교 운동장 개방 확대, 공원 야간 이용환경 개선, 생활권 놀이 프로그램 운영, 저밀 지역(군위군 등) 집중 지원 등을 제시한다.
대구 중구 수창공원 바닥분수에서 어린이들이 물장난을 치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대구일보 DB

◆"뛰지 마라"는 사회…놀이터도 자유롭지 않다

놀이공간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있어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현실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대구 북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 박지훈(가명·39)씨는 "예전에는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교실에 머무르는 경우가 늘었다"며 "안전사고 우려로 활동을 제한하는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수성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공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소음' 문제로 제지를 받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 아파트에 사는 초등학생 이서연(12)양은 "공을 차면 시끄럽다고 해서 못 놀 때가 많다"며 "그래서 친구들이랑 실내로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아동권리보장원 조사에서도 29.4%의 아동이 '어른의 간섭'을 놀 권리 제한요인으로 꼽았다. 공원과 놀이터는 늘고 있지만, 이용은 제한적이다. 달서구 한 근린공원은 다양한 놀이시설을 갖추고 있음에도, 평일 저녁 이용자는 많지 않았다. 학부모 김영미(41·여)씨는 "시설은 잘 돼 있지만, 학원이 끝나면 늦어서 아이를 보내기 어렵다"며 "결국 주말에만 잠깐 이용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문제의 핵심을 '시간 구조'에서 찾는다. 한 아동복지 전문기관 관계자는 "대구는 교육열이 높은 만큼, 방과 후 시간이 학습으로 채워지는 경향이 강하다"며 "놀이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아동권리보장원 관계자 역시 "아동의 일상은 여전히 성인의 결정에 크게 좌우된다"며 "놀이시간과 공간을 함께 보장하는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종민 기자 jmkwon@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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