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구 전 국무총리 별세, 향년 92세...노태우ㆍYSㆍDJ 정부서 두루 등용
김영삼 정부 국무총리, 김대중 정부 주미대사 역임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오늘(5일) 향년 92세의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정치학자 출신으로 김영삼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 전 총리는, 노태우 정부 때 공직에 입문해 신한국당 대표를 역임했습니다. 이후 정권교체 뒤인 김대중 정부에서도 주미대사를 수행하는 등 학계와 정계, 외교계에서 두루 활약했습니다.
1934년에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 졸업 뒤 서울대 법과대학에 입학했으나 자퇴한 뒤 미국 유학을 떠났습니다. 에모리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예일대에서 정치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68년 귀국해 이듬해부터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 20년 간 재직했습니다. 정치학 교수 시절 고인은 '민주정치 부활'과 '정치적 자유 보장'을 주장했으며 한국정치학회장을 지내는 등 학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인생의 전환을 맞은 건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통일부의 전신인 국토통일원 장관을 맡으면서입니다. 이 시절 고인은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정부의 공식적 통일방안으로 확정하고 영국 주재 대사로 북방정책을 뒷받침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정치특별보좌관을 지낸 고인은 김영삼 정부에선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거쳤고, 1994년엔 28대 국무총리에 취임했습니다.
총리직을 마친 뒤 1996년엔 신한국당 대표위원으로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같은 해 치러진 15대 총선에서 전국구 국회의원(현 비례대표)으로 국회에 입성했고 당 대표까지 역임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해 추진했던 '노동법 날치기' 역풍으로 당 대표 직에서 사임했습니다. 1997년 15대 대선에 출마했지만 당내 경선에서도 중도 사퇴했습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이후 고인은 1998년 의원직을 내려놓고 주 미국 대사로 부임했습니다. 이른바 외환위기, 'IMF 사태' 직후였던 당시엔 한ㆍ미 관계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했는데, 이 전 총리는 미국 유학시절 닦았던 인맥을 활용해 미 조야와의 연결 고리 역할을 했습니다.
2000년 귀국 이후에는 학계와 정계, 언론계를 넘나들며 그간의 경험을 전파했습니다. 특히 중앙일보 고문을 맡아 '이홍구 칼럼'을 연재하며 정치현안과 남북관계에 대한 식견을 드러냈습니다.
유족으론 배우자 박한옥 여사, 딸 소영ㆍ민영씨, 아들 현우씨가 있습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영결식은 8일 오전 8시에 치러질 예정입니다. 장지는 천안공원묘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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