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월세 20만원대에 100대1 경쟁률”… 빈 호텔이 청년주택 탈바꿈

이경탁 기자 2026. 5. 5.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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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억 투입 공실 호텔 181세대 전환
LH 비주택 리모델링 사업 재개 확대
‘에스키스 가산’ 5층 룸 전경. /이경탁 기자

지난 4월 30일 오후 서울 금천구 가산동 ‘에스키스 가산’ 5층. 신발을 벗고 들어간 가구 내부는 약 7평대 규모로, 침대와 수납장, 간이 주방이 벽면을 따라 배치된 원룸 구조였다. 과거 관광객이 머물던 호텔 객실을 개조한 공간으로, 카펫 바닥을 걷어내고 주방 배관과 개별 과금 설비를 새로 들여 주거 기능을 갖췄다. 공실 호텔을 청년 주택으로 전환한 비주택 리모델링 사례다.

이 건물은 2017년 준공된 ‘호텔 해담채 가산’을 리모델링해 만든 청년 매입임대주택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약 350억원을 들여 매입·리모델링했다. 총 181가구가 공급됐으며 리모델링 기간은 약 11개월이다. 이날 현장은 국토교통부와 LH가 비주택 리모델링 사업을 설명하기 위해 기자단에 공개한 자리로, 1층 로비 집결 이후 루프탑과 커뮤니티 공간, 지하 강연장, 실제 거주 가구까지 차례로 둘러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사업은 LH와 민간 운영 주체가 역할을 나눠 추진한 구조다. LH는 건물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하고, 실제 운영과 프로그램 기획은 사회적기업 나눔하우징이 맡고 있다. 나눔하우징은 2010년 설립된 주거 개선 기반 사회적기업으로, 청년 주거와 커뮤니티 운영 사업을 수행해 왔다. 이해성 나눔하우징 대표는 이번 사업에서 공간 구성과 커뮤니티 프로그램 설계를 총괄했다.

현장 설명에 나선 이원식 LH 주택공급특별대책추진단 매입공급팀장은 “이 건물은 과거 호텔이었기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3대 설치돼 있는 구조인데 이런 부분이 기존 건물의 흔적”이라며 “가산디지털단지는 약 14만명이 근무하는 산업단지로 절반 이상이 20~30대 청년이고 정보기술(IT)·게임·디자인·의료 등 1만개 기업이 밀집해 있어 청년 수요가 높은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20층 루프탑에 올라서자 가산디지털단지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입주민들이 바비큐나 모임을 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호텔 시절 옥상 구조를 그대로 활용한 흔적도 남아 있었다.

이해성 나눔하우징 대표가 4월 30일 오후 에스키스 가산 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이경탁 기자

건물 내부는 일반 임대주택과 다른 구성을 보였다. 2층에는 코워킹 공간과 스터디룸이 마련돼 있었고, 입주민이 기부한 책으로 운영하는 도서 공간도 조성돼 있었다. 지하 1층에는 강연장과 회의실, 영상 촬영이 가능한 스튜디오가 구축돼 있었다. 이 대표는 “입주민이 주로 저녁이나 주말에 작업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커뮤니티 모임도 이곳에서 이뤄진다”며 “호텔 사무실이던 공간은 공유 공간으로, 식당이던 공간은 주거시설로 바꾸는 등 기존 구조에 맞춰 재구성했다”고 말했다.

이곳의 핵심 콘셉트는 ‘주거와 교육의 결합’이다. 이 대표는 “청년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주거비와 교육비 비중이 가장 컸다”며 “인공지능(AI) 교육과 취업·창업 지원을 결합한 형태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하 스튜디오에서는 KBS비즈니스영상원이 참여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7기 350여명의 교육생이 배출됐다.

입주민들은 주거비 부담이 크게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한 입주민은 “보증금 700만~900만원대에 월세 25만원 수준, 관리비가 약 8만원 정도 나온다”며 “주변 시세보다 부담이 확실히 적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입주민은 “27만~29만원 수준인데 기존 원룸에서는 전기세나 난방비 부담이 컸지만 여기서는 생활비 부담이 줄었다”고 했다.

입주 절차는 일반 공공임대주택과 동일하게 소득과 자산 기준을 충족한 무주택 청년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일부 물량은 디지털·AI 분야 역량을 평가하는 특별공급 형태로 선발되며, 지원자는 관련 포트폴리오와 경력 등을 제출해 심사를 받는다. 입주 이후에는 연령 기준은 적용되지 않는다. 최초 입주 시 만 39세 이하 기준을 충족하면, 이후에는 무주택 요건과 소득·자산 기준을 유지하는 경우 최대 4회까지 계약 갱신이 가능하며 최장 1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이런 조건에 초기 모집 당시 약 3000명이 지원하며 수요가 몰렸다. LH에 따르면 서울 청년 매입임대주택 경쟁률은 지역에 따라 100대1 수준까지 올라간다.

왼쪽부터 이해성 나눔하우징 대표, 입주민 임지윤, 고웅, 노동균씨, 김도곤 국토교통부 주거복지지원과장, LH 장창훈 처장이 4월 30일 오후 서울 금천구 가산동 ‘에스키스 가산에서 기자들과 질의 응답중인 모습. /이경탁 기자

다만 한계도 있다. 입주민들은 중앙 냉난방 시스템으로 인해 개인 온도 조절이 어려운 점과 건물 앞 교통량이 많아 택시 이용이 불편한 점 등을 단점으로 꼽았다. 리모델링 구조 자체에서 오는 제약도 존재한다. 이 대표는 “호텔에는 원래 주방이 없어 배관 공사가 가장 컸고 층간소음 보강과 단열, 개별 계량 시스템 구축이 주요 작업이었다”며 “리모델링 비용은 평당 약 20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기존 구조를 유지하는 만큼 설계 자유도가 제한되고 건물별로 공사 난이도가 달라지는 점도 특징이다.

정부와 LH는 이 같은 비주택 리모델링 사업을 다시 확대할 계획이다. 김도곤 국토교통부 주거복지지원과장은 “코로나19로 공실이 늘어난 숙박시설을 주거로 전환하면 호텔 경영난 해소와 주택 공급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며 “빠르고 효율적인 공급 수단으로 다시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에는 약정 방식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LH가 직접 매입해 리모델링하는 방식도 병행해 공급 속도를 높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국토부는 이달 초 약 2000호 규모 매입 공고를 다시 내고 사업을 재개했다. 사업 방식도 달라진다. 김지만 LH 매입임대사업 담당 차장은 “LH가 직접 매입해 리모델링하는 방식과 민간이 리모델링 후 매각하는 방식을 병행할 계획”이라며 “참여 대상을 민간 사업자까지 확대하고 준공 30년 이내 건축물까지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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