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황동만 같니?"...'모자무싸'를 보며 거울치료를 받는 사람들 [드라마 쪼개보기]
아이즈 ize 윤준호(칼럼니스트)

"지인에게서 문자 한 통이 온다. "내가 황동만 같이 살고 있나?"
요즘 이런 문자를 주고 받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로 인간의 심연을 건드리는 박해영 작가의 신작인 JTBC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가 방송을 시작한 이후다. 황동만을 통해 거울 치료를 받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황동만은 20년째 '감독 지망생'이다. 대학 시절부터 영화인을 꿈꾸던 '8인회'의 일원인데, 황동만을 제외한 모두가 소위 '입봉'(데뷔작을 내는 것)했다. 그렇다면 어느덧 마흔에 접어든 황동만의 직업은 무엇일까? 현재 실험 단계인 감정 워치의 시범 실험에 참여한 그는 '40대 무직남'으로 거칠한 포장된다. 하지만 황동만은 실험 참가 대가로 매월 주는 수십만 원을 받기 위해 이 수식어를 받아들인다. 이 때 감정 워치에 이런 문구가 뜬다. 극도의 수치심.
그렇다고 황동만의 기가 죽을까? 그렇지 않다. 그는 쉼없이 떠든다. 긍정적인 표현보다는 부정적인 표현이 더 많다. 주변 이들을 베고 또 찌른다. 단체대화방에서 홀로 수십 개의 글을 올린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공허한 메아리다. 하지만 황동만은 계속 떠든다. 왜일까? 그게 바로 스스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황동만의 이야기. 거슬리지만 쉽게 흘려들을 수 없는 말들이다. 박해영 작가는 '모자무싸'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황동만의 입을 통해 전달한다.
"내 인생이 왜 네 맘에 들어야 하는데요?"
황동만은 이제 그만 영화 감독이 되길 포기하라는 영화사 최필름의 최대표에게 이렇게 말한다. 맞는 말이다. 타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타인에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강요할 순 없다. 감히 최대표가 선을 넘은 조언을 하자 황동만은 최대표에게 "이 바닥의 어른인 척 굴지 마. 아무도 너를 어른으로 안 세웠어"라고 꼬집는다. 나이만 많다고 어른이 아니다. 이렇듯 '모자무싸'는 어른다운 어른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그냥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 난."
황동만의 형 황진만(박해준)은 동생이 마뜩지 않다. 40대가 되도록 번듯한 직업 하나 없이 표류하는 동생을 나무란다. 형은 묻는다. "네가 원하는 게 뭐야? 데뷔야? 성공이야?" 당연히 모두가 황동만이 그것을 원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황동만은 답한다. "불안하지 않은 거. 그냥 불안하지만 않으면 돼, 난." 이는 데뷔나 성공을 넘어 모든 인간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지점이다. 참으로 이루기 힘든 꿈이다. 그래서 삶은 더욱 힘들고 고달프다.

"나는 리트머스지 같은 남자야."
리트머스지는 학창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접했을 학용품이다. 서로 다른 성질의 용액에 반응하는 종이다. 황동만은 자신을 이 종이에 비유한다. 황동만은 특히 선배 감독 박경세(오정세)와 사이가 좋지 않다. "왜 나를 싫어하냐?"고 묻는 박경세에게 황동만은 "형이 나를 먼저 싫어했다"고 답한다. 곰곰이 생각하던 박경세는 자괴감에 빠진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며 다양한 인간 군상과 만난다. 그런데 상대가 나에게 왜 그렇데 대하는지, 그 이유를 나에게서 먼저 찾는 이는 드물다. 그래서 황동만이 "상대가 산성이면 나도 산성"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내가 대하는 방식대로 상대로 대하게 된다는 뜻이다.

"잘 나서 나를 증명할 수 없을 땐 망가져 나를 증명한다"
잘난 사람은 티가 난다. 모두가 그를 좇고 찾는다. 하지만 모두가 잘날 수는 없다. 잘나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그래서 잘난 사람이 더 돋보이는 법이다. 그렇다면 평범해서 티가 안 나는 황동만의 계산은 무엇일까? 그는 "잘 나서 나를 증명할 수 없을 땐 망가져 나를 증명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 밉상처럼 행동하고 반골처럼 부딪힌다. 물론 사람들은 그를 두고 '비호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황동만은 개의치 않는다. 아무 것도 아닌, 누구에게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할 바에는 망가지는 방식으로라도 자신의 존재를, 그리고 무가치함을 드러내려 한다.

"난 만만하고 약한 애가 아니라 얌전한 애예요."
이는 황동만의 대사가 아니다. 황동만에게 호감을 느끼고, 그를 '영화감독'이라 불러주는 변은아(고윤정)의 대사다. 변은아는 항상 당하는 아이였다. 어릴 적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인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조용히 지냈다. 누구와도 척지지 않으려 노력했다. 때려도 맞고 있자, 사람들은 변은아를 얕보기 시작했다. 만만하게 보고 함부로 말했다. 그런 변은아가 세상의 무가치함을 마구 떠들고, 상대의 치부를 후벼 파는 황동만을 바라보며 바뀌기 시작했다. 타인을 공격하진 않을지언정 방어는 할 줄 알게 됐다. '얌전한 아이=만만한 아이'는 틀린 등식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것이 그 시작이었다. 황동만 효과다. 아울러 박해영 작가가 대중에게 끼치는 선한 영향력이다.
윤준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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