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광화문·여의도 어디든 40분이면 닿는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걸어서 5분. 스타트업 등 1만4000개 기업이 몰려 있는 G밸리 한복판에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20층 높이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한때 관광객들이 묵던 호텔이었지만 지금은 청년들의 보금자리로 변신한 ‘에스키스 가산’이다.
■피트니스룸·루프탑·공유 스터디룸 완비…월세는 30만원↓
지난달 30일 찾은 에스키스 가산은 지하 2층~지상 19층, 181가구 규모의 청년 특화형 매입임대주택이다. 전용 16~20㎡대 원룸형 구조로 구성돼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한 매입임대주택을 민간이 청년 수요에 맞게 구성해 운영하는 방식으로, 만 19~39세 미혼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
각 가구마다 냉장고·세탁기·에어컨·침대 등 기본 가전이 갖춰져 있어 주거비를 더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지하에는 피트니스룸이, 2층에는 공유 스터디룸이 마련돼 있고, 최상층에는 라운지와 루프탑 공간이 있다. 특히 꼭대기에 마련된 루프탑에 오르니 주변 일대가 한눈에 들어왔다. 삼삼오오 모여 앉을 수 있는 테이블들이 놓여 있어 다른 입주민들과의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듯 보였다.
20대 입주민 A씨는 "월세 27만원, 관리비도 10만원 초반으로 부담이 적다"며 "기존 원룸에서는 난방비 걱정이 많았는데, 여기서는 여유롭게 쓸 수 있어 생활 질이 높아졌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물론 호텔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지진 못했다. 통상 다른 주택과 마찬가지로 에어컨이 천장에 설치돼 있는 것이 아니라 벽면 위쪽에 설치돼 있다. 호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조다. A씨 역시 "개인마다 체감온도가 다른데 냉난방이 중앙에서 계절별로 전환되다 보니 마음대로 작동시키지 못한다"며 단점으로 꼽았다.
지난달 30일 찾은 서울 금천구 가산 에스키스. 사진 = 정문필 기자
■AI와 미디어 인재 맞춤형 주택…"입주민들끼리 프로그램 운영도"
AI와 미디어. 청년과 대학생 등 미디어·ICT 종사자를 대상하는 하는 디지털 소셜 리빙 주택인 에스키스 가산만의 특징이다. 이런 취지에 맞게 에스키스 가산에는 45가구의 AI·미디어 분야 청년을 위한 특별공급 물량이 배정돼 있다. 입주자들은 입주 전, 활동계획서를 제출해 선정됐다. 건물 곳곳에서 AI 활용 기술을 배우는 교육 프로그램 수강생을 모집하는 포스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던 배경이다.
디자인 전공으로 특별전형을 통해 입주한 A씨는 "디자인 분야에서도 AI 활용이 중요해지는 상황이라 관련 역량을 키우고 싶어 이곳에서 AI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며 "대학에서는 그런 교육이 충분하지 않았는데, 여기에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방송사 아나운서로 일하는 입주자 B씨는 "인공지능 분야 논문을 쓰고 있을 때 특별공급으로 들어오게 됐다"며 "회사에서 AI를 활용한 업무를 할 때 이곳에서 배운 내용을 활용할 수 있어 도움이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입주민들이 직접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진행하기도 한다. B씨는 "아나운서 일을 하다 보니 스피치 교육을 할 수 있어서 입주민들을 모집해 강의를 진행해 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호텔 시절 직원들이 쓰던 사무실은 코워킹 스페이스로 바뀌었다. 책장에는 입주자들이 기부한 책들이 꽂혀 있다. ‘책 기부 환영’이라는 안내문 옆으로 AI, 창업, 미디어 관련 책들이 눈에 띄었다. 어떤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비어가는 건물, 부족한 집…LH가 내놓은 해결책은
지난달 30일 찾은 서울 금천구 가산 에스키스. 사진 = 김찬호 기자
LH가 비주택 매입에 다시 속도를 내고 있는 배경에는 도심 공실 증가와 주거 부족 문제가 맞물려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오피스 공실률은 약 7~8% 수준, 일부 상업시설은 두 자릿수 공실률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청년과 신혼부부가 체감하는 주거난은 여전히 심각하다.
LH는 공급 확대를 위해 방식도 바꿨다. 기존에는 민간이 리모델링한 건물을 사들이는 '매입약정' 방식이 중심이었지만, 앞으로는 LH가 먼저 건물을 매입해 직접 리모델링하는 '직접매입' 방식을 병행한다.
공사비 부담으로 민간 참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LH가 일부 리스크를 떠안겠다는 취지다. 동시에 입지 경쟁이 치열한 도심에서 우수한 건물을 선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공급 대상 역시 확대된다. 호텔 중심에서 벗어나 상가, 오피스, 지식산업센터 등으로 범위를 넓히고, 1인 가구뿐 아니라 신혼부부와 신생아 가구를 위한 중형 평형도 도입할 계획이다.
매입 가격은 용도변경 이전 감정평가액을 상한으로 설정하고, 복수 감정을 통해 적정성을 확보한다. 신청 물량이 많을 경우 낮은 가격을 제시한 사업자를 우선 선정하는 ‘역경매 방식’도 적용된다.
정부는 공실이 늘고 있는 지식산업센터 내 공장 용도 건축물까지 매입 대상에 포함할 수 있도록 시행령 개정도 추진 중이다.
LH 관계자는 "도심 오피스·상가 공실 문제를 해결하고 주택 부족을 메우기 위해 직접 매입 리모델링과 민간 매입약정 방식을 병행한다"며 "서울 전역과 과천·성남 등 수도권 12개 시·구를 대상으로 2000가구 공급, 청년·신혼부부 중형 평형 위주로 추진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