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카의 시대, 밸류체인을 잡아라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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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핵심 간선도로 윌셔 대로를 달리다보면, 수많은 전기자동차와 자율주행택시 웨이모가 일상의 풍경처럼 스쳐 지나간다. 2년째 웨이모를 보고 있지만 운전석에 아무도 없는 모습을 볼 때면 아직도 어색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를 평가하는 기준은 ‘제로백’이나 ‘마력’ 같은 기계적 성능이었다. 하지만 자동차의 진화는 더는 성능 좋은 엔진이 아니라 디지털화하는 자율주행, 커넥티드카,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가 되고 있다.
2026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현장에서는 자동차의 미래가 펼쳐졌다. 전시 부스를 둘러보는데, 차량 엔진룸 모형 안에 퀄컴의 스냅드래건 반도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스마트폰 안에서나 봤을 법한 그 반도체가 이제 자동차 엔진룸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기술 전시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자동차산업의 무게중심이 기계공학에서 소프트웨어와 반도체로 이동하고 있다는 상징이다.
전세계 스타트업들의 전시장인 유레카파크 입구 옆에는 아마존 부스가 있었다. 그곳에 베엠베(BMW) 한 대가 전시돼 눈길을 사로잡았다. 운전석에 앉아 말을 거니 집 안 거실에서나 부르던 ‘알렉사’가 매끄럽게 대답을 이어갔다. 단순히 음악을 틀어주는 수준이 아니라 차량 상태를 진단하고 운전자의 다음 일정까지 챙기는 모습이 무척이나 생경하면서도 신기했다. 독일의 정밀기계공학을 상징하는 BMW의 심장부에 실리콘밸리의 인공지능(AI) 비서가 완벽히 이식된 풍경, 이것이 바로 스마트카 시대의 서막이었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자동차업계는 이런 흐름을 SDV로 정의한다. 과거에는 자동차가 하드웨어 성능으로 경쟁했다면, SDV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차량의 기능과 성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플랫폼 개념의 이동수단이다. 스마트폰이 앱 생태계를 통해 진화하듯, 자동차도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 기술을 통해 구매 이후에도 계속 새로운 기능을 갖추게 된다.
2026년 CES는 이런 흐름의 가속화를 선명하게 보여줬다. 퀄컴은 고성능 AI 컴퓨팅 플랫폼 ‘스냅드래건 라이드’(Snapdragon Ride)를 중심으로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 V2X(차량-사물 통신)를 하나의 칩 위에서 통합 처리하는 솔루션을 전면에 내세웠다.
엔비디아는 이번 CES에서 자율주행의 두뇌 구실을 하는 ‘알파마요’(Alpamayo)를 공개하며 자율주행의 지능적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알파마요는 단순히 주변 사물을 인식하는 수준을 넘어 복잡하고 예외적인 도로 상황에서도 인간처럼 논리적으로 추론하고 판단하는 ‘생각하는 AI’를 지향한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차세대 CLA 모델에 최초로 탑재될 예정인 이 플랫폼은 ‘토르’(Thor)라는 엔비디아의 자동차용 칩의 압도적 연산력을 바탕으로 시뮬레이션과 실주행 데이터를 결합해 가장 안전한 주행경로를 실시간으로 도출해낸다. 이는 스마트카가 단순한 기계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그 근거를 설명할 수 있는 고도의 지능체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주목할 점은 퀄컴과 엔비디아가 단순히 부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두 회사 모두 운영체제, 개발도구, 앱생태계를 아우르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 애플과 구글이 스마트폰 시장을 iOS와 안드로이드로 양분했듯, 자동차 시장에서도 유사한 플랫폼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현재 자동차용 플랫폼 시장의 판도는 크게 세 축으로 형성돼 있다. 첫째는 반도체 기업 중심의 플랫폼이다. 퀄컴의 ‘스냅드래건 라이드’, 엔비디아의 ‘드라이브’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강력한 AI 연산 능력과 기존 모바일·데이터센터 생태계를 자동차로 확장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퀄컴은 BMW·폴크스바겐·웨이모 등과, 엔비디아는 메르세데스벤츠·볼보·현대자동차그룹 등과 협업하며 완성차 업계의 신뢰를 확보해가고 있다.
둘째는 완성차 업체의 자체 플랫폼 구축이다. 테슬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체 칩 설계와 소프트웨어 스택을 통해 수직통합 모델을 완성했다. 중국의 비야디(BYD)와 샤오펑은 자국 내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AI 플랫폼을 고도화하고 있다. 폴크스바겐과 도요타 등 전통 완성차업체들도 소프트웨어 자회사를 설립해 내재화에 나서고 있지만, 기술 격차 해소는 쉽지 않은 과제다.
셋째는 빅테크 기업들의 진입이다. 구글의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는 르노, 지엠(GM), 볼보 등에 탑재되며 영역을 넓히고 있다. 애플의 카플레이(CarPlay) 강화 버전도 차량용 운영체제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수십억 명의 사용자 데이터와 앱생태계를 보유해 자동차를 그 생태계의 연장선으로 흡수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결국 이 경쟁의 핵심은 단순한 칩 성능이 아니다. 어떤 플랫폼 위에서 개발이 이뤄지고, 어떤 생태계가 소비자와 자동차제조사를 묶어두느냐의 싸움이 되고 있다.
한국 기업에 주어진 기회
이 거대한 지각변동은 한국 기업들에 위기이면서 동시에 구조적 기회다. 첫째로 부품·모듈 공급망의 재편이다. SDV로의 전환은 전통적인 자동차부품 공급체계를 흔들고 있다. 내연기관에 최적화된 부품 기업이 입지를 잃는 반면, 전장 소프트웨어, 센서 퓨전, 사이버보안 역량을 갖춘 기업에는 새로운 진입 기회가 열린다. 한국의 전장 부품 기업들은 퀄컴·엔비디아 플랫폼과의 호환성 확보를 통해 글로벌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의 직접 협력 가능성을 타진해볼 시점이다.

둘째는 소프트웨어 기업의 모빌리티 진출이다.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에는 SDV용 미들웨어, 차량 내 사용자경험(UX), 데이터 분석 솔루션 분야가 새로운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퀄컴과 엔비디아 모두 외부 개발자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기업이 직접 완성차 기업을 뚫지 않더라도 플랫폼 파트너로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 참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와 실리콘밸리가 속한 캘리포니아주는 강력한 친환경 정책, 테크기업과의 지리적 근접성, 다양한 모빌리티 스타트업 생태계가 맞물려 있어 SDV 관련 기술 검증과 파트너십 구축의 최적지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들이 미국 시장을 공략할 때 캘리포니아를 전진기지로 삼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동차산업의 소프트웨어화는 단순히 기술 트렌드의 변화가 아니라, 산업생태계 전체의 재편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산업정책 차원에서도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우선, SDV 전환에 대응하는 인재 양성 및 기업 지원 체계의 정비가 시급하다. 자동차 소프트웨어 개발자, 사이버보안 전문가, AI 엔지니어의 수요는 이미 글로벌 차원에서 급증하고 있으며, 한국도 이 분야의 전문인력 풀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한국 기업들이 퀄컴·엔비디아 같은 플랫폼 기업과의 협력 생태계에 편입될 수 있도록 전략적 가이드라인과 매칭 지원이 필요하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일단 생태계에 편입되면 사업 기회가 지속되는 반면, 초기 진입장벽이 높다. 정부 차원의 네트워킹 지원이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다.
마지막으로 데이터 주권과 사이버보안 이슈에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SDV는 방대한 차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생성·전송한다. 어떤 플랫폼이 그 데이터를 관리하느냐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국가안보와도 연결되는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유럽·중국 모두 이 문제에 대한 규제 논의를 강화하는 추세이며, 한국도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CES에서 만난 한국 스타트업 대표는 AI가 자율주행 영상을 훈련하기 위해서는 영상을 더 오래 저장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민관 협력 긴요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플랫폼 생태계에 깊숙이 편입한 전례가 있다. 애플 아이폰이다.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장의 표준을 만들었을 때, 한국 기업들은 디스플레이·메모리·배터리·카메라모듈 등 핵심 부품 공급자로 밸류체인 안에 자리 잡았다. 플랫폼을 만든 것은 애플이었지만, 그 플랫폼 위에서 한국 기업들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사업 기회를 확보했다.
지금 자동차산업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구조적 기회의 규모가 아이폰 때와 맞먹거나 그 이상이다. 퀄컴과 엔비디아가 스마트카 플랫폼의 표준을 구축해가는 지금, 한국 기업이 그 밸류체인 안에 들어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전략이다.
CES 현장의 엔진룸 속 스냅드래건 칩이 던진 시사점은 결국 하나다. 다음번 플랫폼 전쟁에서 한국은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아이폰 밸류체인에서 증명했듯,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플랫폼의 핵심 파트너가 될 역량을 갖추고 있다. 필요한 것은 그 역량을 스마트카 생태계로 연결하는 전략적 결단과 이를 뒷받침하는 민관 협력 노력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와 함께 세계 각국의 최신 경제 흐름과 산업 동향을 소개한다. KOTRA는 전세계 85개국에 131개의 국외 무역관을 보유한 ‘대한민국 무역투자 정보의 메카’로 생생한 국외 정보를 수집·전달하는 것은 물론 국내 기업들의 국외 진출을 돕는 안내자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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