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비관론 vs 낙관론…내 일자리는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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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이 경제, 특히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쟁이 격화한다. AI는 노동시장을 파괴해 끝내 대공황을 불러올 것이라는 비관론과, 인류는 유례없는 번영을 누릴 거라는 낙관론이 팽팽하다. 물론 그 중간 지점에 주목하는 주장도 있다. 이들을 균형 있게 살펴보는 건 의미가 있다. 사실, 미래 전망은 빗나가기 일쑤다. 미래를 결정짓는 변수를 모두 고려한 완벽한 전망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전망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대책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전망은 가치가 있다.
극단적 비관론
해당 보고서는 시나리오에 가깝다. 아무래도 AI의 폭발적 발전이 불러올 경제적 파국에 대한 충격을 우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보고서의 핵심 요지는 간단하다. AI가 생산성을 폭발시키지만 경제는 붕괴할 수 있다는 역설이다. 보고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AI가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면서 고소득 전문직 일자리는 이들로 대체된다.
• 상위 20% 고소득층 소비는 전체 소비의 65% 이상을 차지한다. 이들의 임금이 삭감되거나 일자리가 사라지면 실물경제의 수요 기반은 붕괴한다.
• 수요가 줄면 기업의 매출은 감소한다. 기업은 이익률 방어를 위해 더 많은 인력을 AI로 대체한다. 실업은 증가하고 소비는 감소하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요약하면 AI 덕으로 기업 생산성은 높아져 지표상 국내총생산(GDP)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물건을 사줄 사람들의 소득은 줄어 공장은 돌아가는데 살 사람이 없는 기이한 침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고급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질 낮은 서비스업이나 ‘긱이코노미’(Gig Economy·임시직 경제)로 몰리게 되고, 해당 노동시장에 공급이 늘면서 기존 저숙련 노동자들의 임금까지 함께 하락하는 임금 하향화도 발생한다. 부의 원천 역시 인간의 노동에서 컴퓨팅 파워 소유자에게로 넘어간다. 보고서가 그리는 노동시장의 미래는 암울하다.
극단적 낙관론
글로벌 증권사인 시타델(Citadel)증권이 그 대표 주자다. 시타델은 시트리니 전망에 대한 반박 보고서에서 ‘노동 총량의 오류’를 집었다. 쉽게 설명하면, 시트리니는 세상에 존재하는 화이트칼라(사무직 노동자)의 업무량은 정해져 있고, AI가 이를 대체하면 인간은 해고된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시타텔은 인류의 욕망과 수요는 무한하다고 반박한다. 즉, 노동 총량은 불변하는 게 아니라 얼마든지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그 증거로 시타텔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채용 공고가 전년 대비 11% 증가했다는 데이터를 제시한다. 글로벌 최대 채용 플랫폼인 인디드(Indeed)의 고용 데이터를 인용했다. 시트리니는 AI 에이전트가 도입되면 가장 먼저 쓸모없어질 직업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지목했지만, 현실은 달랐다는 것이다. 2025~2026년 초 기준으로 그 수요는 외려 늘었다. 현재 거시경제는 막대한 자본을 AI 인프라 투자에 쏟아붓고 있다. 미국 내에만 약 2800개의 데이터센터가 계획돼 있다. 이 인프라를 설계, 유지하고 AI 모델을 미세 조정하려면 과거보다 훨씬 더 고도로 숙련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와 데이터 과학자가 필요하다는 거다.
시타텔은 에스(S)-커브 도입 패턴, 즉 신기술이 시장에 침투할 때 S자를 그린다고 강조한다. 침투 초기에는 느린 속도로 진행하고 나중에 빨라진다는 것이다. AI가 내일 당장 인간이 하는 모든 코드를 대신 짜주는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으며, 기업들이 AI를 실제 비즈니스에 통합하는 과정에 막대한 인간 개발자의 노동력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선진국이 직면한 최악의 리스크인 노동인구 감소를 해결할 수 있는 구원투수가 AI라고 주장한다.
또, 기업이 화이트칼라 인건비를 대폭 절감해 막대한 영업이익을 남긴다고 해도 그 돈은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이익은 주주들에게 배당금과 자사주 매입 형태로 환원되거나, 우주항공·생명공학 등 완전히 새로운 산업의 연구개발비로 재투자된다. 자산가치 상승으로 부를 얻은 주주들의 소비는 늘어나고 새로운 산업에서 전에 없던 양질의 일자리가 생겨 경제의 총수요를 방어한다는 논리다. 지극히 낙관적이다.
제3의 시나리오
컴퓨터 화면 안에서 일어나는 일, 즉 소프트웨어, 법률 검토, 번역 등은 AI로 비용이 폭락한다. 반면 AI 에이전트가 할 수 없는 인간의 노동에 의지해야만 하는 분야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가령 배관을 고치거나 송전탑에 전선을 연결하는 일 등이다. 그는 블루칼라(생산직 노동자)의 르네상스가 올 거라 주장한다. 지식노동의 가치는 하락하겠지만 배관공, 전기기술자, 용접공, 간호사 등 물리적 세계에서 직접 몸을 써야 하는 직업군의 임금은 급격히 상승한다는 거다. 비안코는 노동시장이 붕괴하는 게 아니라 부의 중심이 컴퓨터 화면에서 물리적 현장으로 대거 이동하는 거대한 노동시장 이동 혹은 전환이 발생한다고 강조한다.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효율이 좋아졌는데 소비가 증가하는 현상)에도 주목한다. 교통혼잡을 줄이려 차선을 늘리면 운전하기 편해진 사람들이 차를 더 많이 끌고 나와 결국 똑같이 길이 막히게 되는 현상이라 이해하면 된다. AI가 소송 서류 작성 비용을 거의 제로로 줄인다면 변호사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외려 더 많은 소송을 제기해 새로운 수요를 창출할 거라고 주장한다. 에세이는 비관론과 낙관론 사이의 중간 지점에 주목한다.
엥겔스의 교훈
왜였을까? 기계의 도입으로 숙련공은 일자리를 잃었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 것이다. 하지만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이익은 자본가들이 독식했다. 자본가들은 막대한 이윤을 기계와 공장에 재투자하며 부의 양극화를 극대화했다.
오늘은 어떤가? 200년 전과 너무 닮았다. AI 모델과 컴퓨팅 파워의 결합으로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성과 이익은 천문학적으로 치솟고 있다. 하지만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AI 에이전트로 대체되거나 그 위협에 시달려 임금협상력을 잃어가고 있다. 생산성은 오르지만 노동자 임금은 침체하는 제2의 엥겔스 휴지기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엥겔스 휴지기가 던지는 교훈은 명확하다. 기술혁신이 궁극적으로 인류를 부유하게 할지라도 그 전환기를 살아가는 세대에게는 엄청난 고통과 불평등을 수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트리니 시나리오는 제2의 엥겔스 휴지기가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재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비안코와 시타텔은 그 전환 위험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AI 혁명이 결국은 인간에게 이로울 거란 관점에 집중한다.
기술혁명은 지속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한다. 그로 인해 사라진 일자리는 훨씬 적었다. 팩트다. 다만, ‘결국에는’이란 단서가 붙는다. 엥겔스 휴지기가 말하듯 전환기 고통은 피할 수 없다. 실망할 필요는 없다. 현재의 정치체제는 20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전환기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게 확실하다면, 대응은 빨라질 수밖에 없다. 민중의 권력이 산업혁명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어서다. 엥겔스 휴지기는 필연이겠지만 그것을 단축하려는 노력도 AI 혁명과 함께 가열할 거라 희망한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윤석천은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금융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금융 관련 책들을 썼으며, 특히 외환과 관련해 많은 강의를 해왔다. 한겨레 ‘세상읽기’를 연재했으며,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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