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촌’으로 백성 신뢰 얻은 조선의 과세 [조선생활실록(實LOG) ⑨]
세금 징수와 직결...官·民 분쟁거리
양전사 임명으로 객관적 측량 도모
측량 도구인 ‘양승’ 논란 휘말리면
새 공인 도구 내려 보내 다시 제작
측량 끝난 곳마저도 수치 바로잡아
‘1촌’으로 백성들 납득과 동의 구해
오늘날 조세 제도도 공정성이 생명
‘근래에 양전하는 일 때문에 날마다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사람들이 모두 거기에 골몰했고, 나이가 어린 학동들 또한 여가가 없었다.’ (김령의 <계암일록> 1934년 11월 24월)

조선시대 양전을 관장하는 관원을 ‘양전사’라고 일컬었다. 양전사는 양전 시에 임명하는 임시직으로, 지방의 수령이 담당했다. 양전사의 파견은 관과 마을 유지 사이 유착을 막고 객관적 측량을 염두에 둔 조치였다.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김령(1577~1641년)이 살던 예안은 애초에 비안 수령이 양전사로 예정되었으나, 변동이 생겨 예천 수령 홍진문이 맡았다. 홍진문은 혹독하게 양전을 실시했다. 김령은 홍진문과 예안 수령 사이 불화를 연유로 꼽았다.

그럼에도 양전사는 객관적 조사를 진행하는 데 꼭 필요했다. 김령은 신득연과 달리, 충청좌도와 우도에 임명된 이현은 공평하고 관대했다고 적었다. 충청도를 담당했던 이현은 토지 등급을 부당하게 높여 백성에게 고통을 준 수령들을 엄중히 처벌했다. 또 김령은 경상우를 담당했던 임광을 두고는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으나 끝내는 고치고 바꾸었다고 적었다. 양전의 성패는 결국 측량 도구의 정밀함 이전에,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의 공정함에 달렸던 셈이었다.

또 비옥한 정도에 따라 토지의 등급을 구분했다. 같은 면적이라도, 토지 등급에 따라 세율이 달랐다.

양승의 기준이 되는 양척을 다시 제작해 보내는 일도 있었다. 김령은 1634년 10월 7일자 일기에서 양척이 다시 내려온 일을 적었다. 처음 보낸 자가 짧아 토지 면적이 실제보다 넓게 측정된다는 민원을 수용한 결과였다. 새 ‘양척’은 이전에 비해 1촌 남짓 길었다. 당연히 양승도 새롭게 제작했고, 측량을 마쳤던 곳도 예외 없이 새로 측량했다. 백성의 신뢰와 이에 따른 성실한 납세가 없다면 양전은 무의미했다. 당시 조정은 뒤늦게나마 양척을 바로잡고 이로써 신뢰를 회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홍현성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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