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닉스' 다니는 친구 부럽지만…"차세대 반도체 만드는 게 기초과학의 역할"

이병구 기자 2026. 5. 5.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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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입자 엑시톤 연구하는 이형우 포스텍 박사후연구원 "나노세계 탐구, 우주탐사와 닮아"
이형우 포스텍 물리학과 박사후연구원. 포스텍 제공

"주변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간 친구들이 많습니다. 요즘 성과급 규모를 보면 사실 저도 안 부러울 수가 없거든요. 하지만 저 같은 기초과학자의 역할은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기보다는 새로운 물길을 개척해 다음 '메인스트림'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경북 포항 포스텍 캠퍼스에서 만난 이형우 물리학과 박사후연구원은 최근 한국 증시 호황을 이끄는 반도체 산업을 두고 "현재 반도체의 기반인 전자는 전하가 있는 입자로 반도체가 작아질수록 발열과 비효율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새로운 반도체가 언젠가는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빛을 연구하는 물리학자인 이 연구원은 엑시톤(Exciton)이라는 준입자로 전자를 대체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엑시톤은 음전하(-)인 전자와 양전하(+)인 정공(hole)이 쌍을 이뤄 공존하는 준입자다. 준입자는 엄밀하게 입자는 아니지만 여러 입자가 상호작용해 나타내는 집합적인 움직임을 하나의 입자처럼 다루는 개념이다. 엑시톤은 전기와 빛의 교차로 역할을 한다.

이 연구원은 "엑시톤은 전자처럼 정보를 전달할 수 있으면서 전기적으로 중성이라 발열 문제가 없다"며 "엑시톤이 주로 존재하는 2차원(2D) 반도체는 고대역폭메모리(HBM)처럼 쌓는 측면에서도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엑시톤은 인간의 감각으로 느낄 수 없을 만큼 아주 작은 존재다. 이 연구원은 7년째 '탐침증강 현미경'이라는 특수한 도구를 활용해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미시세계를 탐구하고 있다.

이 연구원은 "인류가 알아내야 할 지식이 가장 많은 곳이 우주와 양자 분야"라며 "우주는 멀어서 어렵고 미시세계는 작아서 어렵다"고 말했다.

우주처럼 큰 공간에는 망원경이, 보이지 않는 작은 공간에는 현미경이 주로 쓰인다. 탐침증강 현미경은 일반적인 렌즈를 활용하는 기존 현미경의 관측 한계를 뛰어넘는다. 피뢰침처럼 날카로운 탐침 끝에 빛이 모이는 성질을 활용하는 원리다. 탐침 끝을 날카롭게 할수록 해상도가 증가한다.

이 연구원은 "나노 세계가 우리 일상과는 관계없는 세계인 것 같지만 탐침으로 영향력까지 가할 수 있다"며 "탐침이 우리 세계와 나노 세계 사이의 오작교 역할을 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탐침으로 압력과 전기장 같은 변화를 주며 재료의 반응을 관찰하는 것이 기본 틀이다. 현재 주요 관찰 대상은 빛을 내는 2차원 반도체다. 빛을 쬐거나 전자를 주입하면 물질 자체에서 빛을 내는 원리다.

이 연구원은 엑시톤을 매우 좁은 공간에 가두며 탐침증강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어느 순간 큰 반발력이 생겨 빠르게 빠져나오는 현상을 규명하는 데 성공하고 연구결과를 올해 4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즈'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 연구원은 탐침 실험 중 실제로 눈에 직접 보이는 것이 없지만 익숙해지면 탐침에 '눈'이 달린 것처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망원경으로 모르는 천체와 별을 관찰하듯 나노 세계에서도 탐침으로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는 것"이라며 "어떻게 보면 양자 세계도 하나의 우주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1년 남은 전문연구요원 복무를 마치면 해외 박사후연구원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특정 연구실에서 새로운 분야를 배우기보다는 연구실 문화를 배우는 데 주력하고 싶다는 설명이다.

그는 "사실 탐침 연구만으로도 충분한 개성"이라며 "해외 연구실에서 운영 노하우, 소통과 협력 방식, 가치관, 철학 등 근본적인 부분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저만의 연구를 펼칠 수 있다는 준비는 나름 된 것 같다"고 밝혔다.

이형우 포스텍 물리학과 박사후연구원. 포스텍 제공

다음은 이 연구원과의 일문일답.

Q. 다른 물리 분야도 많은데 나노 세계와 탐침 연구에 관심을 둔 이유가 있다면.

"사실 모든 물리학자는 학부생 때 천체물리학을 한번쯤 꿈꾸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힙니다. 나노 세계든 우주든 결국 둘 다 인류가 풀어야 할 문제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탐침 연구도 우주 탐사처럼 미지의 세계를 알아 가는 낭만이 있다는 거죠.

또 천체물리학 분야 대형 프로젝트는 국가나 단체의 힘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탐침 연구는 누구나 장비만 있으면 개인 역량으로 탐사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저는 좀 더 자유로운 개인 탐사가 훨씬 좋은 것 같습니다."

Q. 현재 연구 환경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저는 결국 측정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필요한 물질을 직접 만드는 능력은 없어요. 어디서 사 오거나 공동 연구를 진행해야 합니다. 포스텍은 재료 분야를 하시는 분들이 워낙 많고 거리가 가깝다 보니 바로 찾아가 문을 두드리면 같이 얘기하고 무언가 만들어볼 수 있어요. 물리적으로 가까운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지난해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를 시작하기 위해 4주간 훈련소에 다녀왔는데 그때 저희에게 그래핀 재료를 제공했던 이웃 연구실 사람을 만났습니다. 행군하는 내내 2차원 반도체 얘기를 했어요. 정말 시간이 뚝딱 지나갔습니다.

또 제가 지금 교수님의 첫 제자입니다. 이미 큰 연구실과 신임 교수님 연구실 중 어디가 좋냐는 건 이쪽 분야에서 늘 나오는 토론 주제입니다. 저는 이것저것 개조하는 걸 좋아하는데 새로운 연구실 장비를 다 제가 사 오고 만지고 하다 보니 연구 자유도가 높았고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Q. 2025년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했는데 배경에 대해 소개한다면. 평소 창의성에 대한 고민이 깊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항상 창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창의성은 서로 먼 지식과 지식을 연결하는 거라고 봅니다. 전공인 물리학 바깥에서 닥치는 대로 새롭고 낯선 경험을 하려고 했었죠. 그래서 제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을 낯설게 보면 재밌겠다 싶어서 휴학하고 80만원 정도 들고 호주로 떠났습니다.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로 1년 동안 도살장, 햄버거집, 상하차 등 별의별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이후 1년간 세계여행을 했습니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2년 동안 한국 땅을 밟지 않다가 인천공항에 도착했어요. 그러니까 좀 낯설더라고요. 한국 버스만의 특유한 냄새도 있고요.

제 경험과 물리학 커리어의 연결성을 찾아내 학위 과정 동안 창의성이 돋보이는 논문을 많이 쓰고 특허도 많이 낸 게 인재상 수상에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아직 김칫국이긴 한데, 나중에 독립 연구자가 된다면 '내가 하고 싶은 연구는 뭐다' 정해두기보다는 제자들이 하고 싶은 연구를 지원하는 '창의력 농장' 같은 연구실을 운영하고 싶습니다. 학생들에게 연구 외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추진력이나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싶어요."

이형우 포스텍 물리학과 박사후연구원. 포스텍 제공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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