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출신 ‘젊은 거장’ 라하브 샤니 “정치적 강요는 또 다른 폭력”
지난해 가자전쟁 관련 연주 취소 통보
![라하브 샤니 지휘자가 4일 서울 강남구 거암아트홀에서 열린 라하브 샤니 & 뮌헨 필하모닉 내한 공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5/ned/20260505070224519usvo.jpg)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평화와 인류애를 추구하는 것은 예술가뿐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연주회나 관객을 이용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붉게 달아오른 ‘중동의 전쟁’이 콘서트 무대까지 뒤흔들고 있다. 지난해 벨기에 헨트 축제에서 공연 취소를 통보받은 이스라엘 지휘자 라하브 샤니(37)는 그 한복판에 선 음악가다. 가자 전쟁과 관련 이스라엘 정부와 “충분히 거리를 두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내년 취임을 앞두고 뮌헨필과 한국을 찾은 라하브 샤니는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거암아트홀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평화와 화해를 추구한다는 입장은 여러 차례 밝혔다”며 지난 논란에 대해 다시 입을 열었다.
문제가 된 공연은 지난해 9월 벨기에 플란데런 헨트 축제였다. 당시 축제 측은 “이스라엘 필하모닉 음악감독인 샤니의 텔아비브 정부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확인할 수 없다”며 공연을 취소했다. 이미 가자지구 전쟁이 수개월째 이어지던 시점이었다. 샤니는 독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평화와 인류애, 화해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지만, 축제 측은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공연 취소를 넘어 유럽 예술계 내부의 균열을 드러냈다. ‘전쟁 앞에서 예술가는 침묵할 수 있는가’, 혹은 ‘반드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특히 이스라엘 국적 예술가들을 둘러싼 보이콧 움직임은 지난해 이후 유럽 공연계 전반으로 확산됐다. 실제로 샤니가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이스라엘 필하모닉의 파리 공연에선 친팔레스타인 시위대가 객석에서 연막탄을 터뜨리는 사건도 벌어졌다.
하지만 샤니는 “예술가에게 특정 정치 입장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모든 인간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 저 역시 필요하다고 느낄 때는 인터뷰나 글을 통해 말해왔다“며 ”하지만 음악회 무대와 관객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건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전쟁이 이미 시작된 뒤 초청해 놓고, 정치적 압박 속에서 공연을 취소했다”며 “문제가 있었다면 애초 초청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일갈했다.
![라하브 샤니 지휘자가 4일 서울 강남구 거암아트홀에서 열린 라하브 샤니 & 뮌헨 필하모닉 내한 공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5/ned/20260505070224852norq.jpg)
플로리안 비간트 뮌헨 필 대표 역시 “독일 정부와 뮌헨 주 정부 등 각계에서 이번 취소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지지를 보냈다”며 “벨기에 총리가 직접 리허설장을 찾아 사과했을 정도로 샤니에 대한 신뢰는 확고하다”고 덧붙였다.
샤니를 둘러싼 논란은 그가 단지 이스라엘 출신 지휘자라는 이유만으로 벌어진 것은 아니다. 그는 현재 이스라엘 필하모닉 음악감독이자, 오는 9월 독일 명문 악단 뮌헨 필하모닉의 차기 상임지휘자로 공식 취임하는 차세대 거장이다. 1989년 텔아비브에서 태어난 그는 피아니스트로 출발해 더블베이스 연주자로도 활동했고, 베를린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학생 시절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이스라엘 필하모닉 객원 더블베이시스트로 연주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다채로운 배경이 지휘에 큰 영감을 준다고 했다. 샤니는 “피아노를 칠 때는 음악 밖에서 전체를 조망하고, 베이스를 켤 때는 악단 안으로 들어가 심리적·기교적 디테일을 이해하게 된다”며 “혼자 하는 리사이틀보다 악단과 함께 에너지를 공유할 때 훨씬 강렬한 인류애적 경험을 한다”고 말했다.
그의 음악은 ‘권위적 카리스마’보다 ‘공동의 호흡’으로 설명된다. 비간트 대표는 “샤니는 단상 위의 고독한 지휘자가 아니다”라며 “오케스트라와 에너지와 영감을 공유하는 지휘자”라고 말했다. 실제로 샤니는 첫 리허설 때 악장을 통째로 연주하게 두며 단원들의 자발적인 음악적 제안을 먼저 듣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지휘자는 단지 팔만 흔드는 존재가 아니”라며 “저는 오케스트라가 스스로 듣고 생각하고 참여하길 원한다”고 했다.
![조성진이 협연자로 서는 라하브 샤니가 지휘하는 뮌헨필 콘서트 [빈체로 제공]](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5/ned/20260505070225210derf.jpg)
피아니스트이기도 한 그는 협연자와의 관계 역시 ‘반주와 독주’의 위계로 보지 않는다. 이번 내한공연의 중심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있다. 샤니와 조성진의 인연은 2022년 뮌헨 필 정기연주회에서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함께 연주하며 시작됐다. 당시 뮌헨 필 단원들은 샤니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고, 그것이 차기 상임지휘자 선임으로 이어졌다.
샤니는 조성진에 대해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가진 동시에 자기만의 목소리를 지닌 예술가”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1번과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언급하며 “완전히 다른 성격의 음악을 모두 완벽히 소화한다”고 극찬했다.
샤니와 뮌헨 필은 5일 서울 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6·9일 롯데콘서트홀, 8일 아트센터 인천에서 관객을 만난다. 투어 프로그램은 뮌헨 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선곡으로 채워졌다. 말러 교향곡 1번 ‘거인’, 브람스 교향곡 4번,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등이 중심이다. 뮌헨 필은 말러 교향곡 4번과 8번을 작곡가 본인의 지휘로 초연한 악단이며, 브루크너 교향곡 5·9번 초연에도 참여한 독일 후기낭만주의의 핵심 오케스트라다.
샤니는 “오늘날 많은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점점 비슷해지고 있다”며 “뮌헨필은 시간을 들여 소리를 확장하는 법을 알고 있다. 깊이와 풍성함, 서정성을 가진 오케스트라죠. 무엇보다 서두르지 않는다”고 했다.
몇 차례 한국을 찾은 경험이 있는 그는 한국에 대한 애정도 드러냈다. 샤니는 “높은 수준을 가진 한국 관객들이 원하면 당장 다음 공연을 하고 싶다”고 했다. 실제로 뮌헨 필하모닉은 내년 12월 재차 내한해 말러 교향곡 4번과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내년 공연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협연자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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