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건국 250주년 특집⑤_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하루 75만명 오가는 거대 터미널이자 미국 하나로 묶은 종착역

최하경 KHS한국전통문화진흥원 원장 2026. 5. 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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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철도왕’이라 불리는 코닐리어스 밴더빌트가 1913년 완공
600개 이상 건물 허물고 철로 지하화…뉴욕의 성장 이끈 산증인
역사 내에는 비밀 간직한 공간 많아…공학적 혁신과 예술의 결합 평가

(시사저널=최하경 KHS한국전통문화진흥원 원장)

올해는 미국 건국 250주년이 되는 해다. 독립전쟁에서 승리하고 지금의 초강대국이 되기까지 미국은 어떤 길을 걸었을까. 미국의 건국정신이 살아있는 '마운트 버넌'에서부터 서부 개척시대의 성공을 이끈 '뉴욕 이리 운하', 미국 기부문화의 효시 격인 '록펠러센터', 미국인들의 자연 경외사상을 상징하는 '나이아가라 폭포' 등 비밀은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시사저널은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놓은 초석 위에 쌓아 올려진 미국의 성공 스토리와 역사의 이면을 10회에 걸쳐 촘촘하게 복기해 본다. [편집자 주]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의 아름다은 외부 모습. ⓒ최하경

뉴욕 맨해튼의 중심, 42번가에 우뚝 선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Grand Central Terminal). 뉴욕을 방문한 사람들은 으레 이 거대한 복합 철도 역사인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을 통해 주변 도시로 향한다. 미 전역으로 연결되는 모든 철도 노선들이 실핏줄처럼 촘촘히 배치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은 단순한 기차역이 아니다. 뉴욕 건축과 역사의 정수가 담긴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는 '미국 건국 250주년 특집④_대륙횡단 철도'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이 남북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대륙횡단 철도를 통해 미국의 물리적 통합을 이뤘다고 소개했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은 링컨이 뿌린 씨앗의 싹을 틔워 열매를 맺게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거대한 건축물로 분열됐던 미국을 하나로 묶는 종착역 역할을 한 셈이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의 웅장한 내부 모습. ⓒ최하경

뉴욕 건축과 역사의 정수 담겨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을 건립한 인물은 '미국의 철도왕'이라 불리는 코닐리어스 밴더빌트이다. 그는 일찍부터 '선박의 시대'가 가고 '철도의 시대'가 올 것이라 예견했다. 그는 1913년 뉴욕 맨해튼의 한가운데 이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을 건립했다. 이 지역에 있던 600개 이상의 건물을 허물고 철로를 지하화한 대공사였다.

덕분에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은 그 기능에 더해 몇 가지 재미있는 비밀도 간직하고 있다. 이 건물이 독특한 이유는 한마디로 공학적 혁신과 예술의 결합으로 지상과 지하를 완벽하게 분리한 2층 구조의 선로 배치에 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던 전철화 시스템을 도입해 매연과 소음을 없앴다. 자연스럽게 역 주변은 뉴욕 최고의 비즈니스 구역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메인 홀의 '천장 별자리 그림'과 '보자르 양식(Beaux-Arts)'의 웅장한 외관은 기차역을 하나의 거대한 예술 작품이자 '시민의 궁전'으로 격상시켰다. 실제로 메인 홀의 푸른 천장에는 별자리 그림이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데, 그중 일부는 거울처럼 좌우가 반전돼 있다. 이는 초기 설계 오류라는 설과, 하늘을 밖에서 안으로 내려다보는 신의 시각을 표현했다는 설이 있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내부의 아름다운 장식 모습. ⓒ최하경

루즈벨트 대통령 비밀리 이용했던 지하통로의 비밀

식당가 입구에는 아치형 천장도 있다. 천장 아래 구석에서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이면 대각선에서도 명확히 들을 수 있는 곳, 즉 '속삭임의 갤러리(The Whispering Gallery)'다. 비결은 건축적인 음향 효과 덕분이라고 한다. 지하에는 비밀 승강장(트랙 61)이 위치해 있다. 과거 루즈벨트 대통령이 자신의 전용 열차를 역 바로 아래쪽에 위치한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 승강장으로 비밀리에 이동시키는 데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들었다.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은 불구가 된 자신의 모습을 대중에게 보이기 싫어했기 때문에 이 지하 통로를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터미널 중앙의 정보 부스 위에 있는 네 면의 시계는 오팔(Opal)로 만들어졌는데, 그 가치가 수천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그 만큼 아름답고, 시간을 알리는 중요한 기능 외에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는 알림 기능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한때 이 시설들은 개발 논리에 밀려 허물어질 뻔한 적이 있다. 다행히 존 F.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등이 보존 운동을 벌여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랜드 센트럴 역사 앞에서 촬영한 필자 모습. ⓒ최하경

뉴욕 시민들에게 '만남의 광장' 역할도

그랜드 센트럴 역사를 거닐다 보면 거대한 참나무의 잎사귀 등이 도토리 열매와 함께 그려진 장식들을 여럿 볼 수 있다. 철도왕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가문의 격언인 '거대한 참나무도 작은 도토리로부터 자란다'를 형상화한 것이다. 무일푼에서 시작해 대륙을 잇는 '철도 제국'을 일군 그의 자부심은 1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역의 황금빛 조명 아래 도도하게 빛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랜드 센트럴은 미국의 산업화 시대에 인적·물적 자원을 쏟아내고 실어 나르는 거대한 혈관 역할을 했다. 밴더빌트가 구축한 이 철도망을 통해 전국의 강철과 자본이 뉴욕으로 모여들었고, 이는 마천루의 숲을 이루는 토대가 됐다.

이 터미널은 뉴욕 시민들에게 만남의 광장이라는 또 다른 소중한 유산을 남겼다. 오늘날에도 하루 75만명이 오가는 이 역은 여전히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밴더빌트가 건설한 이 견고한 인프라 위에서 미국은 번영을 구가해 왔다. 미국 건국 250주년을 맞아 우리가 그랜드 센트럴에 주목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수백 년 뒤 후손들이 누릴 경제적 기반과 문화적 공간을 동시에 설계했던 그들의 선구적 혜안을 지금 우리에게 웅변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역은 단순히 개인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뉴욕 시민들이 자부심을 느끼는 공공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일반적인 역들이 승강장만 있는 것과 달리, 그랜드 센트럴은 식당과 시장, 예술 공간이 한 공간에 어우러져 있다. 이 건물이 왜 뉴욕의 자존심인지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입구 간판. ⓒ최하경

위대한 선인들의 정신 타산지석 삼아야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피터의 타번(Peter' Tavern)이라는 곳이 있다. 필자가 뉴욕에 방문할 때 가끔 들르던 곳인데, 밴더빌트 시대의 부를 메세나 정신으로 승화시킨 앤드류 카네기가 피터 쿠퍼 등과 함께 미국의 미래를 논했던 사색의 현장이다. 오 헨리나 마크 트웨인 같은 문학․예술의 거장들도 자주 드나들던 곳이다.

밴더빌트의 철도가 실어 나른 강철과 자본은 카네기의 도서관이 됐고, 마크 트웨인의 문학적 영감이 돼 미국의 정신적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던 것이 바로 이곳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위대한 선인들의 정신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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