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신약 AtoZ⑨] 'P-CAB 개척자' 유한양행 레바넥스의 씁쓸한 성적표

김창권 기자 2026. 5. 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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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비 500억·기간 11년…민관 협력으로 탄생
초기 빠른 성장에도 PPI 장벽·적응증 한계 직면
'세계 최초' 영광 뒤...시장에선 후발주자에 밀려
[편집자주] 제약·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빠르게 키우며 신약 개발 경쟁력도 한층 치솟고 있다. 우리 정부도 혁신 의약품 개발을 가속하기 위한 지원책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국산 혁신 신약들이 해외에서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제약기업들의 기술력 업그레이드와 임상 데이터의 신뢰도 향상이 맞물리면서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새로운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EBN은 그간 국내 기업들이 내놓은 혁신 신약들과 글로벌 무대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국 의약품들을 집중 조명한다. K-제약·바이오의 '지금'과 '다음'을 가늠해 볼 결정적 단서들이다.
레바넥스 [출처=유한양행]

유한양행의 급성위염 및 궤양 치료제 '레바넥스(성분명 레바프라잔)'는 대한민국 제약 산업 역사에서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상징적인 신약으로 꼽힌다.

1990년대 급성위염 및 궤양 치료의 주류는 PPI(양성자 펌프 억제제)였다. 기존 PPI는 산성 환경에서 활성화되고 효과 발현이 상대적으로 늦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유한양행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위산 펌프의 칼륨 결합을 경쟁적으로 차단하는 P-CAB(칼륨 경쟁적 위산분비 억제제) 계열로 개발에 나섰다.

◆세계 최초 P-CAB 타이틀 확보…국산 9호 신약으로 승인

레바넥스는 당시 단일 신약 개발로는 이례적인 규모인 약 500억원의 연구비와 11년의 기간이 투입됐다. 1990년대 후반, 기존의 가역적 억제제들이 독성 문제로 실패하던 상황에서 유한양행은 안전성이 확보된 '레바프라잔' 물질을 찾아냈고, 개발명 YH1885로 신약 개발을 본격화했다.

이후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기술 연구개발 사업 지원 과제로 선정되며 민관 협력 지원을 받았고, 개발에도 속도가 붙었다. 유한양행은 2003년 식품의약품안전처(당시 식약청)로부터 십이지장궤양 환자 대상 3상 임상 승인을 받고 전국 18개 대학병원에서 임상 3상에 들어갔다.

임상에서는 기존 치료제 대비 빠른 통증 완화와 위점막 보호 효과가 확인됐다. 특히 위염 환자에게서 우수한 점막 치유 능력을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레바넥스는 2005년 9월 식약청으로부터 십이지장궤양 치료제로 허가받으며 국산 9호 신약에 이름을 올렸다.

상업화 과정에서 유한양행은 강력한 영업망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 P-CAB'이라는 타이틀을 앞세워 대학병원 및 로컬 의원을 공략했다. 출시 1년여 만인 2007년 매출 100억원을 돌파하는 등 당시 국산 신약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였다.
유한양행 중앙연구소. [출처=유한양행]

◆케이캡·펙수클루·자큐보 등 후발 신약에 시장 주도권 이동

레바넥스는 기술적으로 선구적인 의약품이었지만, 시장 장악에는 한계를 보였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첫째 출시 당시 국내 위산분비억제제 시장은 이미 PPI가 표준치료제로 자리 잡고 있어 이를 넘어서지 못했다.

P-CAB의 최대 장점은 '식사 상관없는 복용'이었으나, 레바넥스는 약효 발현 시간과 지속성 면에서 PPI 대비 압도적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또 PPI보다 확연히 뛰어난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의료진이 처방을 바꿀 강력한 유인이 부족했다.

둘째 레바넥스는 후속 적응증 확대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레바넥스는 십이지장궤양과 위염 위주로 허가를 받았지만, 이후 위식도역류질환(GERD) 적응증 추가를 위해 임상을 진행했으나 부작용 발생 등으로 인해 추가에 실패했다.

셋째 2019년 이후 등장한 후발 P-CAB 신약들이 시장을 빠르게 재편했다. HK이노엔의 케이캡, 대웅제약의 펙수클루, 온코닉테라퓨틱스의 자큐보 등은 레바프라잔이 확보하지 못한 GERD 적응증과 강력한 위산 억제 효과를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다.
[출처=유한양행]

대표적으로 케이캡은 위 내 pH4 이상 유지 시간에서 54.5%를 기록한 반면, 레바넥스는 25.1%에 그쳤다. 산 억제 강도와 약효 지속성에서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현재 P-CAB은 국내 소화성궤양용제 시장의 핵심 축으로 성장했다. 2026년 1분기 국내 소화성궤양용제 시장은 4182억원 규모로 전년 대비 6.3% 성장했고, P-CAB 계열이 시장 내 비중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다만 이 성장의 수혜자는 레바프라잔이 아닌 후발 P-CAB 신약들에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국내 개발 P-CAB 3종인 케이캡·펙수클루·자큐보의 해외 매출은 총 258억원으로 집계돼 전년 대비(219억원) 17.8% 증가했다.

결과적으로 레바넥스는 기술적으로 앞섰지만 시장 경쟁력에서는 후발주자에게 주도권을 넘긴 선구적 제품으로 남았다. 상업적 매출은 전성기보다 축소됐지만, 세계 최초 P-CAB 제제로서 소화기 치료제의 패러다임을 바꾼 역사적 가치는 여전히 높게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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