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5·18 희생자’ 임기윤 목사 유족, 대법서 첫 승소…‘전합 판결’로 배상기준 정리되나

최혜린 기자 2026. 5. 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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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당시 광주 금남로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군사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대형 버스를 앞세우고 시위하는 학생을 계엄군이 연행해 탱크 앞에서 무릎을 꿇리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법원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강압 수사를 받다 숨진 고 임기윤 목사의 유족이 겪은 정신적 고통을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1심과 2심 법원은 임 목사에 대한 국가배상책임만 인정하고 유족 고유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인정하지 않았는데, 상고심에서 판단이 뒤집힌 것이다. 지난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민주화 유족이 과거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별도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함에 따라 일관된 기준이 정립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법 “국가편의주의적 보상 절차로 권리행사 방해…임 목사 유족, 귀책사유 없어”

4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지난달 12일 임 목사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부분 중 유족 고유의 위자료 청구 부분을 파기한다”며 원심판결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임 목사는 광주가 아닌 지역에서 신군부의 만행을 알리다 희생당한 ‘광주 밖 희생자’다. 그는 광주 학살을 비판하는 설교를 했다는 이유로 1980년 7월19일 계엄합동수사단에 소환돼 강압 수사를 받았고, 조사 8일째에 숨졌다.

유족은 2023년 5월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졌다. 해당 소송에서는 유족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유효 기간’이 지났는지가 쟁점이었다. 국가배상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은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이 지나면 사라진다. 임 목사 사건에서 법원은 유족이 1998년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보상금을 받았을 때 이미 손해를 인지했고, 소송 제기 시점에는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봤다.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보상금을 받을 때 ‘국가의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었다’는 점을 유족이 알았다고 해도 억압적 사회 분위기 등으로 인해 곧장 소송을 내기는 어려웠다고 판단했다. 특히 당시 법에 보상금을 받으면 ‘재판상 화해’가 성립해 추가 소송이 불가능하다는 조항(화해간주조항)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자신의 고유한 손해를 포함한 일체의 손해배상 문제가 포괄적ㆍ종국적으로 정리됐다고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어 “유족이 권리행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은 잘못된 법률 해석 등 유족의 귀책사유로 인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오히려 이는 가해자로서 손해를 배상해야 할 국가가 뒤늦게 보상 관련 법령을 제정·집행하는 과정에서 보상의 대상과 범위를 협소하게 규정하고, 법률관계를 명확하게 하지 못한 채 국가편의주의적 입장에서 보상 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하려고 하면서 초래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청구권 유효기간’ 엇갈린 판단 정리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새 기준 정립 기대”

임 목사 사건의 결론이 상고심에서 달라진 배경에는 지난 1월에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다. 당시 대법원은 임 목사 사건과 쟁점이 동일한 국가배상 소송 상고심 선고에서 “유족들이 과거 보상금을 받았더라도 별도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가족들을 포함한 과거사 사건 피해자들을 충실히 구제하고자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그간 민주화운동 관련 국가배상소송에서 법원 판단은 제각각이었다. 민주화 유공자들의 소송은 헌법재판소가 화해간주조항을 위헌 결정한 2021년 5월 이후 본격 시작됐고, 이후 원고 승소 판결이 잇따랐다. 헌재의 결정 이전에는 사실상 소송이 불가능했다기 때문에 헌재의 위헌 결정일이 기산점이 돼야 한다는 취지의 판단이었다. 그런데 이런 법리가 피해자 본인이 아닌 유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돼야 하는지에 대해선 재판부마다 판단이 갈려 유족의 피해 구제가 안정적으로 진행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 대법 “5·18 유족, 과거에 보상금 받았어도 ‘정신적 손해배상’ 청구 가능”
     https://www.khan.co.kr/article/202601221706001#ENT


☞ “계엄으로 가족 잃은 고통, 국가가 배상하라”···법원 판단, 그때그때 달랐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4231657001#ENT

임 목사 유족을 대리한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이번 판결은 과거사 사건의 특수성과 국가배상제도의 목적을 고려해 잘못된 법률로 고통받아 온 피해자와 유족들의 권리 행사를 폭넓게 보장했다는 의미가 있다”며 “대법원 전합 판결을 기점으로 하급심에서도 통일된 기준이 세워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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