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뽑파민' 찾아 원정 떠나는 2030…이곳은 외로운 청춘들의 성지
성지 찾아 홍대~종로~용산 뽑기투어
즉각적인 성취감 중독 '불황형 탕진잼'
키링·인형 단 '백꾸' 열풍도 유행 한몫
관계형성 미숙한 Z세대 외로움 달래기
확률 조작·사행성 한탕주의는 문제점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에 있는 한 뽑기방은 ‘뽑기’ 애호가 사이에서 성지로 꼽힌다.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인형과 피규어가 많아서다. ‘잘 뽑힌다’는 속설도 애호가들의 발길을 이끈다. 지난달 15일 찾은 이 뽑기방에서는 30~40명이 기계에 이마를 붙여가며 뽑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비닐봉지에 인형을 잔뜩 담은 모습은 흔했고, 대형마트에서 쓸 법한 카트를 끌고 다니며 피규어를 수집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인기 캐릭터가 놓인 기계 앞에는 줄도 생겼다. 직원들은 바삐 움직이며 기계에 경품을 채워 넣었다.
이 오락실 앞에서 만난 20대 김모씨는 “귀여운 새 인형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며 “1만원도 안 썼는데 인형을 뽑았다”고 기뻐했다.
‘백꾸’가 불붙인 뽑기 열풍
2030세대를 중심으로 뽑기 열풍이 뜨겁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혼자 노는 문화’가 확산한 데다 각종 키링과 인형으로 가방을 꾸미는 ‘백꾸’가 유행한 여파다. 경품을 뽑을 때 느끼는 이른바 ‘뽑파민’(뽑기+도파민)도 2030세대를 자극하고 있다. 창업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덕에 무인 인형뽑기방도 빠르게 늘고 있다.

4일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전국 청소년게임제공업체(뽑기방·오락실)는 6815곳으로 집계됐다. 2022년 말(5334곳) 대비 27.76% 급증했다. 주요 상권뿐 아니라 골목 곳곳에서 인형뽑기 매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 홍대거리의 중심인 KT&G 상상마당 반경 500m에는 인형뽑기방이 11개나 늘어서 있다. 뽑기 애호가들은 하루에 홍대거리뿐 아니라 종로3가, 용산 등 성지로 ‘원정’을 다니기도 한다.
뽑는 과정을 단순하게 바꾸고 무작위성을 강조한 ‘가챠’도 성행하고 있다. 가챠는 레버를 돌려 무작위로 캡슐 장난감을 뽑는 기계를 말한다. 레버를 돌릴 때 나는 소리를 일본어로 ‘가챠가챠’라고 하는 데서 유래했다. 뽑기와 달리 가챠는 무조건 경품을 제공한다. 운이 좋으면 희귀한 경품을 얻을 수도 있다.
뽑기방에 비치된 인형은 대부분 손바닥만 한 크기다. 작은 키링도 섞여 있다. 업주가 백꾸 인기를 고려해 관련 물품을 전진 배치한 영향이다. 특히 가챠로 얻을 수 있는 키링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워 2030세대의 수집욕을 자극한다. 30대 직장인 조모씨는 “‘산리오’ 캐릭터가 있는 가챠숍을 찾아다니고 있다”며 “구하기 어려운 게 나오면 SNS에 올려 자랑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업주에게도 백꾸 인기는 반갑다. 게임산업진흥법에 따라 뽑기 경품은 소비자가격이 1만원 이내여야 한다. 백꾸 액세서리는 크기가 작기 때문에 매입가가 낮아 규정을 충족할 수 있다.
비대면 익숙…혼자 하는 취미 인기
인형 등을 뽑을 때 느끼는 ‘도파민’도 2030세대가 뽑기에 몰입하는 요소다.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청년층이 작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뽑기에 몰렸다는 것이다. 뽑기는 대부분 1회에 1000~3000원 수준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명예교수는 “뽑기방은 청년층이 적은 돈으로도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됐다”고 평가했다. 2022년 이후 뽑기 기계에 본격적으로 카드 단말기가 부착됐고, 현금이 필요 없어져 결제 허들이 낮아졌다.

사회 변화가 뽑기 열풍을 불러왔다는 시각도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인공지능(AI) 발전으로 비대면 환경이 일상화했고 인간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낀 2030세대가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로 뽑기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년층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수단으로 뽑기를 선택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뽑기방도 꾸준히 새로 생기고 있다. 상대적으로 창업 비용이 저렴하고, 무인으로 운영할 수 있어서다. 최근에는 프랜차이즈 뽑기방까지 등장하며 창업 난도는 더 낮아졌다. 2023년 새로 개업한 청소년게임제공업소는 266곳에 불과했지만, 작년에는 1795곳이 문을 열었다. 서울 중랑구의 한 뽑기방 사장(50대)은 “지인과 시댁 식구가 뽑기방으로 돈을 버는 걸 보고 노후 자금을 모으기 위해 한 달 전 창업했다”며 “지금은 본업이 있지만 매출이 늘면 일을 그만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사행성 논란은 숙제
뽑기에는 ‘사행성’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고가의 경품, 한정판 제품은 되팔 수 있어 사행심을 자극한다. 업주가 뽑기 크레인에 달린 집게발의 힘을 약하게 하는 식으로 확률을 조작할 수도 있다. 지난해 인형뽑기방에서 적발된 기계 개·변조 사례는 19건으로 2024년(3건) 대비 크게 늘었다. 이 때문에 뽑기 애호가 사이에선 ‘실력대로 인형을 뽑을 수 있는’ 뽑기방이 공유될 정도다. 일부 업주는 국내에서 판매하지 않는 한정판 제품도 들여놓고 있다. 해당 제품은 국내 소비자가격이 없어 규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뽑기는 사행성이 있기 때문에 중독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곽 교수는 “경기가 나쁘고 소득이 줄면 한탕주의가 만연한다”며 “인형을 뽑으려고 처음엔 1000원, 2000원을 쓰다가 점점 규모가 늘어 경품 가치보다 큰돈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진영기 기자 young7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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