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사육’ 처벌 유예…그 뒤에 숨은 불법 증식, 관리 손놓은 정부

김지숙 기자 2026. 5. 5. 05:0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애니멀피플
여주 사육곰 농가 불법 증식 반달곰 구조 현장
4일 경기 여주시 한 사육곰 농가에서 불법 증식된 새끼 반달곰이 확인됐다. 김지숙 기자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h730’을 쳐보세요.)

한 줌 볕도 제대로 들지 않는 경기 여주시 한 사육곰 농장, 출입문이 열리자 오래된 배설물과 먼지가 뒤섞인 악취가 먼저 빠져나왔다. 배설물로 질척한 바닥 위에는 거미줄과 오물이 엉겨 붙은 철제 사육장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너비 78㎝ 깊이 220㎝, 성인 한 사람이 간신히 누울 만한 좁은 철창들 가운데 한 칸에서는 태어난 지 2~3개월 된 새끼 반달가슴곰이 낯선 소리에 어미 품으로 몸을 숨겼다. 이 농장에는 반달가슴곰 성체 62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4일 오전 7시, 여주시 점동면 ‘웅담 채취용’ 사육곰 사육농가에서 불법 증식된 반달가슴곰 새끼가 확인됐다. 정부의 ‘곰 사육 종식’ 선언 이후 농가에서 태어난 첫 반달곰이다. 현장을 찾은 최태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대표는 “이 농장에서는 2022년에도 새끼 6마리가 불법 증식됐지만, 열악한 환경 탓에 5마리가 죽었다”며 “새끼 곰의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2024년 개정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에 따라, 정부는 지난 1월1일부터 전국 곰 농장의 사육·번식·소유·웅담 채취 등을 금지했다. 다만 전국 9곳 농가에 곰 221마리가 남아있는 상황을 고려해 ‘농가 사육 금지’에 대한 처벌·몰수는 6개월간 유예했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포함되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반달가슴곰은 농가 사육 금지 이전부터 사전 허가 없이 인공 증식하는 것은 불법이다. 불법 증식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증식된 곰은 몰수 및 보호 대상이다.

하지만 야생생물법 적용이 유예되면서 반달곰 사육과 소유에 대한 처벌이 즉시 이뤄지지 않자, 농장주 ㄱ씨가 번식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최 대표는 “야생생물은 개체 구별이 어렵기 때문에, 다른 곰을 도살한 뒤 불법 증식된 곰으로 대체하더라도 알기가 어렵다”면서 “6개월 계도기간이 끝나가지만, 정부는 기본적인 관리·감독도 미흡한 형편”이라고 지적했다.

4일 경기 여주시 한 사육곰 농가에서 불법 증식된 새끼 반달곰이 확인됐다. 농장주 ㄱ씨가 새끼 반달곰과 어미를 취재진에 공개하고 있다. 김지숙 기자
4일 불법 증식된 새끼 곰이 확인된 경기 여주시 한 사육곰 농가에는 반달곰 62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단체 제공

이날 현장에는 새끼 곰의 즉각적인 몰수(구조)를 위해 사육곰 보호단체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권단체 ‘동물해방물결’ 활동가 20여 명과 이들의 수사 요청으로 출동한 경찰이 ㄱ씨에게 농장 문을 열 것을 설득했다. 약 1시간의 설득 끝에 ㄱ씨는 새로 태어난 새끼와 어미 곰을 공개하며 “억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새끼 곰 한 마리 생산한 걸 불법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여주·용인 2곳에서 곰 75마리를 사육 중인 ㄱ씨는 이전에도 곰 탈출, 불법 증식 및 도살 등으로 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2021년 7월 ‘용인 곰 탈출 사건’ 때는 2마리가 탈출했다고 당국에 신고했으나, 알고 보니 불법 도살로 1마리를 죽인 상태였고, 같은 해 11월 또다시 곰 5마리가 탈출해 3마리가 사살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 때문에 2022년 초 6개월 실형을 받았지만, 이후에도 곰 증식을 지속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곰 사육을 종식한다고 했으면 (매입 비용을) 적정하게 맞춰줘야 한다”면서 “1마리당 1000만원이면 사육을 포기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2022년 정부·사육농가·지자체·시민단체가 맺은 ‘곰 사육 종식 협약’에 따라, 곰들을 매입 구조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은 시민 후원금을 통해 구조를 진행하는 만큼 최대 마리당 500만원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끼 반달곰 구조에 정부가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와 ‘동물해방물결’은 해당 농장에서 새끼 곰이 태어난 정황을 확보하고, 지난 3월 중순부터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불법 증식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날까지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지난 4월27일 여주경찰서에 농장주를 야생생물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고, 영장이 발부되기 전 새끼 곰이 폐사하거나 농장주가 증거를 인멸할 것을 우려해 이날 새벽 5시30분 경찰의 현장 수사를 추가로 요청했다.

4일 경기 여주시 사육곰 농가에서 최태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대표가 사육장의 크기를 재고 있다. 김지숙 기자

기후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단체가 제보한 정황 증거가 불법으로 취득했을 우려가 있어, 내부적으로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위한 법률 검토 중이었다”며 “관할 환경청 특사경(특별사법경찰)이 영장 발급 관련 절차를 진행 중이었다”고 해명했다. 기후부와 한강유역환경청은 ㄱ씨의 증식 행위를 불법으로 판단해, 법원의 몰수 판결이 나오면 새끼와 어미를 보호할 방침이다.

이 관계자는 “불법 증식 개체는 전남 구례 사육 곰 공영보호시설 및 공영동물원, 민간보호시설로 이송이 가능하다”며 “농가에 방치되는 곰이 없도록 추가 보호시설 마련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현재 기후부는 지난해 9월 문을 연 ‘구례 곰 마루쉼터’(49마리 수용 규모) 이외에 충남 서천(70마리 수용 규모)에 올해 입식을 목표로 하는 보호시설을 건립 중인데, 추가로 시설 마련을 논의 중이란 설명이다.

한편 최 대표는 “기후부 장관이 ‘늑대 늑구 탈출’ 사건 당시 동물복지 기준을 획기적으로 혁신하겠다고 한 발언은 사육곰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체들은 새끼와 어미 곰의 보호 조치가 완료될 때까지 농장 앞에서 농성을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