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시즌 동안 양키스 중계해온 캐스터 존 스털링 별세, 향년 87세

김재호 MK스포츠 기자(greatnemo@maekyung.com) 2026. 5. 5.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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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동안 뉴욕 양키스 라디오 중계를 맡아온 캐스터 존 스털링이 세상을 떠났다.

양키스 구단, 그리고 구단 주관 라디오 방송사 WFAN은 5일(한국시간) 스털링의 부고를 전했다.

1971년부터 78년까지 WMCA 라디오 방송국에서 양키스 프리게임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양키스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82년부터 87년까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1981년부터 89년까지 NBA 호크스의 중계를 맡았고 그 뒤 양키스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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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동안 뉴욕 양키스 라디오 중계를 맡아온 캐스터 존 스털링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양키스 구단, 그리고 구단 주관 라디오 방송사 WFAN은 5일(한국시간) 스털링의 부고를 전했다.

스털링은 지난 겨울 심장 우회 수술을 받은 뒤 뉴저지주 에지워터에 있는 자택에서 간병 치료를 받고 있었다. 양키스 구단은 그가 뉴저지주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전했다.

36년간 양키스 중계를 맡은 존 스털링이 세상을 떠났다. 사진= 양키스 공식 X
스털링은 36년간 정규시즌 5420경기, 포스트시즌 211경기의 중계를 맡아왔다. 1989년 9월부터 2019년 7월까지 5060경기를 연속으로 중계하기도 했다.

2024년 4월 은퇴를 선언했던 그는 그해 포스트시즌 경기에 잠시 복귀하기도 했다.

이 기간 양키스의 일곱 번의 월드시리즈와 다섯 번의 우승을 함께했다. 양키스가 이겼을 때 그가 외치는 빅토리 콜인 “더 양키스 윈!”은 그를 상징하는 멘트가 됐다.

또한 선수별로 독특하고 재치 있는 홈런 콜로 각광받았다. 버니 윌리엄스가 홈런을 쳤을 때는 “버니 고스 붐! 번, 베이비 번(Bernie goes boom! Bern, baby, Bern!)”이라 외쳤고 데릭 지터에게는 “지터 졸트(It‘s a Jeter jolt!)” 알렉스 로드리게스에게는 “A-로드의 A-밤(It’s an A-bomb from A-Rod!)”, 제이슨 지암비에게는 “더 지암비노(The Giambino)”, 그리고 마쓰이 히데키에게는 “고질라의 스릴러(A thrilla from Godzilla)”라는 멘트를 지어줬다.

1938년 7월 4일 조시 슬로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그는 맨하탄에서 자랐고, 대학을 중퇴하고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했다. 1940년대 ‘에디 브래켄 쇼’를 들으며 라디오 방송인의 꿈을 키웠다.

1960년 뉴욕주 웰스빌의 한 방송국에서 라디오 방송 경력을 시작했다. NBA 워싱턴 불릿츠와 모건 주립대 미식축구 경기의 중계를 맡았으며 이후 NHL팀 아일랜더스, NBA 넷츠 등의 중계를 담당했다.

1971년부터 78년까지 WMCA 라디오 방송국에서 양키스 프리게임 토크쇼를 진행하면서 양키스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1982년부터 87년까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1981년부터 89년까지 NBA 호크스의 중계를 맡았고 그 뒤 양키스로 자리를 옮겼다.

[샌프란시스코(미국)= 김재호 MK스포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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