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일본서 '신(神)'이라 불린 박주봉, 한국 여자 배드민턴의 숲을 다시 설계
- 일본서 우버컵·토마스컵 우승, 한국서 다시 정상…두 나라 이끈 명장
- 합숙 축소·코치 확대·팀 중심 훈련…한국 배드민턴 시스템 재설계

이번 우버컵 우승의 의미를 가장 간결하게 설명한 인물은 올림픽 금메달 2개를 목에 건 김동문 대한배드민턴협회장이었습니다.
"선수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는 건 확실하다. 박주봉 감독의 전략도 큰 몫을 했다."
현장을 지휘한 박주봉 감독(62)의 평가는 더 구체적이었습니다.
"세영이가 완벽한 경기력으로 팀 분위기를 끌어올렸고, 가은이가 천위페이를 잡은 건 가장 큰 놀라움이었다. 김혜정-백하나 조합도 작전이 성공했다."
이 두 문장은 이번 결승의 본질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에이스, 이변, 조합. 한국은 그렇게 만리장성으로 불린 중국을 3-1로 꺾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우승은 단순한 결과가 아닙니다. 일본에서 '가미사마(神)'로 불렸던 지도자가 자신의 셔틀콕 인생의 마지막 무대가 될지도 모를 한국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팀을 완성해 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박주봉 감독은 일본 대표팀을 이끌며 2014년 토마스컵 사상 첫 우승, 2018년 우버컵 37년 만의 정상 복귀를 이끌었습니다. 일본 배드민턴을 세계 최강 반열로 끌어올린 중심에는 '시스템'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같은 방식이 한국에서 다시 작동했습니다.
안세영이 출발점을 만들고, 김가은이 승부를 뒤집고, 김혜정-백하나가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개인의 힘이 아니라 설계된 구조의 결과였습니다.
한일 두 나라를 단체전 정상으로 이끈 흔치 않은 이력의 지도자. 박주봉이라는 이름이 왜 특별한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박 감독의 시선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 한다"라고 강조합니다. 대표팀 성적은 스타 한 명이 아니라, 지도자와 시스템, 운영 구조가 만들어 낸다는 철학입니다.
그래서 코치진을 7명에서 9명으로 늘렸습니다. 궁극적으로는 10명 체제를 목표로 합니다. 남녀 단식, 복식, 혼합복식 등 5개 종목마다 2명의 코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여기에 혼합복식 경쟁력 회복을 위한 선발 구조 개선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합숙 시스템도 바꿨습니다. 진천선수촌 중심의 장기 합숙에서 벗어나 소속팀 중심 훈련으로 전환하고, 대표팀 합숙은 주요 대회를 앞두고 10일 내외로 줄이고 있습니다. 자율성을 주되 책임을 묻는 구조입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운영 방식의 수정이 아닙니다. 대표팀 예산의 흐름까지 바꿀 수 있습니다. 줄어든 비용을 주니어 육성이나 코치 지원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수 박주봉은 이미 전설이었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남자복식 금메달리스트입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4개, 국제대회 72회 우승 기록은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코트에서는 흐름을 읽는 선수였고, 지금은 팀의 흐름을 설계하는 지도자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독단적인 지도자는 아닙니다. 코치진과 상의를 전제로 합니다. "결국은 선수들이 얼마나 평소 몸을 만들고 기량을 끌어올렸느냐가 단체훈련의 강도와 기간을 결정한다"라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대표팀을 둘러싼 환경도 함께 봅니다. 선수들은 개인 후원 계약으로 경제적 보상을 받고 있지만, 코치진 처우는 여전히 개선이 필요합니다. 박 감독이 후원사에 코치 지원을 요청하는 이유입니다.
이번 우승은 9월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전망에도 직접적인 신호입니다. 안세영이 1단식에서 확실한 승점을 책임지고, 김가은이 2단식에서 누구와도 겨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복식 자원도 충분합니다.
관건은 체력과 조합입니다. 단체전과 개인전을 병행하는 일정 속에서 에이스 부담을 어떻게 나누고, 최적 조합을 찾느냐가 핵심입니다.
박주봉은 선수로 전설이었고, 일본에서 명장이었으며, 이제 한국에서 시스템 설계자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번 우버컵은 그 과정의 결과이자 시작입니다.
한국 배드민턴이 다시 숲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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