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리딩방 투자금 받아줄게”… 피해자만 노려 ‘2차 사기’

정동진 기자 2026. 5. 5.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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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금 회수하려는 절박함 악용
변호사-추심업체 사칭 안심시켜
경찰 “6개월새 176명, 130억 피해”
전문가 “긴급 융자 등 생계지원을”
동아일보DB
주부 김모 씨(36)는 올 1월 ‘500% 수익을 보장한다’는 투자 리딩방 사기에 속아 아이 교육비뿐 아니라 지인에게 빌린 돈까지 총 2400만 원을 날렸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지만, 비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모인 카페에 올라온 오픈채팅방 링크는 또 다른 덫이었다.

채팅방에는 ‘추심업체를 통해 피해액을 돌려받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수수료가 비싸다”고 투덜대면서도 실제 입금 내역이 찍힌 후기 사진을 올리는 상대를 완전히 믿은 김 씨는 소개받은 추심업체에 약 2400만 원을 수수료로 보냈다. 하지만 업체는 잠적했고, 그제야 김 씨는 또다시 사기의 희생양이 됐다는 것을 알았다. 김 씨의 사건은 현재 경기남부경찰청이 수사 중이다.

● 사기 피해자 노린 ‘N차 사기’ 기승

이처럼 피싱 사기 피해자의 절박한 심정을 노리고 추심업체나 변호사를 사칭해 추가로 돈을 뜯어내는 ‘반복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4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 10일까지 반년도 안 돼 2차례 이상 보이스피싱이나 리딩방 등 전기통신금융사기를 신고한 피해자는 176명, 피해액은 130억 원에 달했다. 경찰이 동일인에 대한 반복 사기 통계를 집계한 건 전기통신금융사기에 원스톱으로 대응하는 통합대응단을 출범한 지난해 10월이 처음이다.

피해 규모가 클수록 ‘본전’에 대한 압박감은 N차 사기의 늪으로 피해자를 밀어 넣었다. 회사원 김준엽 씨(38)는 가상화폐 사기로 9억5000만 원을 잃은 뒤 이를 만회하려다가 비슷한 수법으로 2억3000만 원을 뜯겼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김 씨는 잃은 돈을 받아주겠다며 접근한 변호사 사칭범에게 수임료 명목으로 돈을 뜯기는 3차 사기의 희생양이 됐다. 김 씨는 “가족한테 빌린 돈이라도 되찾아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이성을 잃었다”고 했다.

고령층도 주된 표적이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원금의 500%를 배당한다’며 300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한 뒤 잠적한 한 가상자산 업체를 수사 중인데, 피해자 상당수는 이미 한 번 사기를 당해 다른 투자처를 찾던 노인들이었다. 이 업체를 포함해 총 3건의 사기로 1억 원을 잃은 김모 씨(71)는 “‘이번엔 정말 제대로 된 회사’라는 지인의 말을 믿었는데 집에 피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경찰은 사기 피해자들에게 2차 사기 수법을 알리고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임용순 경찰청 데이터분석담당 분석수사2팀장은 “사기 피해자는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더 무모한 투자에 빠질 우려가 크다”고 했다.

● 피해자 DB까지 거래… “긴급 융자 필요”

이런 반복 사기가 가능한 이유는 범죄 조직 사이에서 사기 피해자의 이름과 연락처, 피해액 등이 담긴 자료가 ‘DB(데이터베이스)’라며 텔레그램 등에서 버젓이 거래되기 때문이다. 2024년에 검거된 한 54억 원대 사기 조직은 아예 리딩방이나 로또 분석업체에서 사기를 당한 이들의 DB를 사들여 범행 대상을 물색했다. 이들에게 사기 피해자는 이미 ‘검증된 타깃’이었던 셈이다. 애초에 같은 범죄 조직이 의도적으로 같은 피해자에게 여러 차례 접근한 것으로 추정된 경우도 있었다.

결국 N차 사기를 막으려면 피해자가 절박한 상황에서 사기꾼의 손을 잡지 않도록 긴급 금융지원 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사기 피해자에게 금융감독원과 신한은행의 ‘보이스피싱제로’나 서민금융진흥원의 ‘미소금융 금융취약계층 생계자금’, 신용회복위원회의 ‘새희망힐링론’ 등 지원 제도가 운용되고 있지만, 신종 수법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고 한도 역시 500만 원 수준에 그쳐 건당 평균 5384만 원에 달하는 보이스피싱 피해 등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다.

서준배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원이 부족하면 사기 피해자가 절박한 상황에 몰려 2차 피해나 대포통장 제공 등 범죄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범죄 수익을 환수해 피해 복구 기금을 마련하고 융자를 즉시 지원하는 등의 대책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다.

정동진 기자 haedoji@donga.com
김다인 기자 dao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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