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협정’이 ‘이삭 협정’을 낳았다

2020년 9월 15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아랍에미리트(UAE)와 바레인 외무장관이 한자리에 섰다. 트럼프의 중재로 적대 관계였던 이스라엘과 두 아랍 국가의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는 ‘아브라함 협정(Abraham Accords)’을 발표하고 서명했다.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에서 공통으로 섬기는 ‘믿음의 조상’을 협정 이름으로 삼은 것이 화제였다.
그로부터 6년 뒤인 2026년 4월, 네타냐후와 아르헨티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이스라엘과 중남미 국가들의 관계 개선과 협력 강화를 골자로 하는 ‘이삭 협정(Isaac Accords)’의 출범을 선언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로, 유대인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아브라함 협정을 합작한 미국 트럼프 정권과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에 최근 블루타이드(중남미 연쇄 우파 정권 집권)의 맏형 격인 밀레이가 가세해 국제 질서 재편에 나선 것이다. .
네타냐후와 밀레이는 이삭 협정에 대해 “이삭의 후손들과 유대교·기독교 전통 위에 세워진, 뜻을 함께 하는 나라들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테러리즘, 반유대주의, 마약 범죄에 맞서는 공통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발표 자리에는 트럼프의 핵심 측근인 마이클 허커비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도 참석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스라엘·아르헨티나의 삼각 연대를 축으로, 이스라엘의 군사·경제력을 활용해 블루 타이드를 확산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23년 좌파 정권을 교체하며 집권한 뒤 강력한 친미·친이스라엘 정책을 펼친 공로로 밀레이는 ‘이스라엘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창세기상(Genesis Prize)’ 수상자로 선정됐다. 유대인에게만 상을 주던 관례를 깬 파격이었다. 밀레이는 2025년 1월 창세기상 시상식 연설을 통해 이삭 협정의 구상을 처음 밝혔고, 막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즉각 호응하면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과 기드온 사르 이스라엘 외교장관이 이끄는 실무팀이 가동돼 협정의 밑그림을 그렸다. 우선 이스라엘이 세계적 수준의 국방·안보 기술을 제공해 중남미에서 활동하는 마약·범죄 조직의 단속과 소탕에 일조한다. 막강한 유대계 자금을 통해 경제 개발 프로젝트도 지원한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중남미 국가들은 혁명수비대(IRGC) 등 이란의 핵심 권력 조직들을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며 이스라엘의 입지를 넓혀준다는 것이다.
구상 발표 1년 4개월 만에 협정이 공식 출범한 동력으로 ‘블루 타이드’가 꼽힌다. 좌파 장기 통치하에서의 폭정과 경제난을 겪어온 중남미 국가들이 잇따라 ‘친미·우파 정권’으로 갈아타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부정적 기류가 바뀌었다. 특히 블루타이드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밀레이는 집권 직후부터 친미·친이스라엘 정책에 함께 드라이브를 걸었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1994년 발생해 85명의 목숨을 앗아간 유대인 센터 폭탄 테러 책임을 물어 IRGC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다. 친이스라엘과 친아랍·팔레스타인이 대결하는 유엔 투표에서는 기존 좌파 정부 입장을 뒤집고 이스라엘 쪽에 투표했다.
다른 블루타이드 국가들도 편승했다. 과테말라·파라과이·온두라스는 이스라엘 주재 대사관을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서 분쟁 지역 지위 때문에 대부분 국가가 개설을 꺼리는 수도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에콰도르와 코스타리카도 예루살렘에 별도의 외교 사무소를 내기로 했다.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아랍과 밀착해오며 이스라엘을 적대시해 온 쿠바, 브라질도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가 아브라함과 이삭의 ‘부자(父子) 협정’을 활용해 중동과 중남미에서 동시에 미국 중심 국제질서 확립에 팔을 걷어붙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최근 UAE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던 석유수출국기구에서 전격 탈퇴하면서, 아브라함 협정을 통한 중동 질서 재편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까지 아브라함 협정에 따라 미국 중재로 이스라엘과 수교한 아랍국가를 현 4국(UAE·바레인·모로코·수단)에서 더 늘리고 궁극적 목표인 ‘사우디·이스라엘 수교와 이란의 완전 고립’을 성사시키려는 치열한 물밑 외교전이 진행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아브라함과 이삭
영어 발음 ‘아이작’으로도 잘 알려진 이삭은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직계 조상으로 소개되는 인물이다. 신약성경의 첫 경전인 마태복음은 도입부에 아브라함에서 예수에 이르기까지의 계보를 소개한다. 아브라함은 86세에 여종인 하갈과의 사이에서 아들 이스마엘을 봤고, 14년 뒤 본처 사라를 통해 적자(嫡子)를 봤으니 그가 이삭이다. 이삭의 이복형인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이슬람교의 근간을 이뤘고, 이삭의 후예들이 훗날 유대교·기독교의 뿌리가 됐다고 전해진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빅터 차 “北, 대화 단절 속 축구단 남한 방문 허용… 대화 여지 있다”
- [더 한장] “한국에 정착해 일하고 싶어요”
- “빨리빨리” K스타일이 글로벌에서도 통한다... ‘온라인 강자’ K게임, 글로벌 흥행 공식
- 트럼프, 3선 논란 속 뼈 있는 농담… “내가 8~9년 뒤 물러나면”
- [함영준의 마음PT] 잘 살고 있는데 왜 마음은 허전하기만 할까
- 하루 5000보 걸으면 한 달 5000원, 부모님 휴대폰에 설치하면 좋은 앱
- 12만대 대박, 연기 냄새 걱정 없이 혼자 삼겹살 굽는 냄비 9만원대 단독 특가
- 무릎보호대 값인데 온열에 두드림 마사지까지, 2만원 대 초특가 무릎마사지기
- 이란전 휴전 붕괴 위기 직격탄…국제 유가 5.8% 급등
- “늙어서 편안하다… 버릴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 ‘토지’ 소설가 박경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