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기록한 ‘공순이 엄마’, 아들이 짊어진 ‘아빠의 고난’···가족의 삶으로 사회를 관통하다

제27회 전주국제영화제에는 눈에 띄는 다큐멘터리 작품이 많았다. ‘12·3 불법계엄’ 등 정치적 이야기는 물론 개인의 삶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작품들이 다수 선정되면서다. 국내 감독들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경쟁’ 부문에서는 감독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공순이>와 <회생>이 나란히 화제를 모았다.
<공순이>는 ‘공순이’로 살아온 어머니의 삶을 딸의 시선으로, <회생>은 아버지와 가족의 기구한 삶을 아들의 눈으로 담아냈다. 똑 닮은 인물들의 얼굴로 시작하는 두 영화는 가족의 삶에서 출발해 한국 사회의 일면을 그린다.
어딘가의 공사 현장, 구슬땀을 흘리는 인부들 사이 유쾌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영화 <공순이>의 주인공이자 유소영 감독의 어머니 김공순씨다. 그는 일평생 ‘공순이’로 살며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 어릴 적엔 신발공장에서 일했고, 자식들이 장성한 지금도 도배장판 일을 한다. 고된 일에도 늘 밝은 얼굴을 하는 공순씨는 어디서나 인기가 좋다.
공순씨는 농인 부모 아래서 자란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다. 일곱 살까지 제대로 된 이름 하나 없었던 그에게 마을 이장이 ‘공순’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고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공순이’는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유 감독은 엄마의 ‘공순’이라는 이름이 자신의 유일한 단점이었다고 말한다. 못하는 게 없었고, 반장까지 맡았던 어린 그는 막일하는 엄마가 창피했다. 엄마의 이름을 숨기려 거짓말까지 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님의 이혼이 엄마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엄마와의 심리적 거리는 더 멀어져만 갔다. 그러던 그가, 서른 살이 넘은 나이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어 3년여간 엄마의 노동과 삶을 진득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공순이>는 엄마와 딸이라는 특수한 관계를 바탕으로 주인공 김공순씨의 삶을 담아냈다. 김공순씨가 보여주는 중년 여성의 삶은 단순한 개인사를 넘어 한국 사회를 떠받쳐온 ‘공순이’들과 놀림거리가 되어야 했던 ‘코다’들의 삶을 관객들에게 호명해낸다.
굽이진 삶에 대한 증언이 이어짐에도 시종일관 밝은 공순씨의 태도와 딸을 향한 사랑이 묻어나는 영상에, 보는 이들도 공순씨를 따라 웃음 짓게 되는 작품이다.
지난달 29일 전북 전주시 메가박스 전주객사에서 열린 관객과의 대화에서 유 감독은 “미나리 농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꽝>(2022) 작업 당시 다음 작품이 있다면 엄마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제 그의 삶에 존경심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김공순씨는 “딸과 함께하는 촬영이 하루하루 좋았다. 정이 깊어질 수 있었다”며 웃었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수원지법 성남지원, 법원 앞에는 의뢰인을 대신해 법정 서류를 준비해주는 법무사들의 사무실이 늘어서 있다. 그중 ‘김충관 법무사 사무실’에서는 법무사 김충관씨와 그의 아들인 김현우(김면우 감독의 본명) 법무원이 함께 일하고 있다.
시인을 꿈꾸던 김 감독이 법무사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건 순전히 아버지의 빚 때문이었다. 8년 전, 아버지는 법무사 사무실의 오랜 적자를 메꾸려 주식과 가상통화에 손을 댔다. 그리고 일평생 일해야 겨우 갚을 빚이 생겼다. 아버지는 감옥에 가는 대신 일을 해 빚을 갚는 길을 택했고 그 길에 김 감독이 함께하기로 했다. 부자는 타인의 개인회생을 도우며 번 돈으로 자신들의 빚을 탕감하며 근근이 삶을 버텨내고 있다.
영화는 법무사 사무실을 중심으로 김 감독의 가족사를 엮어냈다. 사법시험을 준비했던 아버지가 법무사가 된 계기, 비구니인 어머니가 그의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절로 돌아가게 된 이야기 등 기구하다 느껴질 만한 가족사도 내밀하게 담겼다. 김 감독은 불교의 관점을 차용해 자본주의 속 빚을 ‘카르마’(업보)로, 빚 청산을 ‘방생’(타인을 살리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영화는 이들의 고난을 일면 유쾌하게 담아냈지만, 누구에게나 다가올 수 있는 불행과 삶의 무게에 짓눌리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지난 1일 전북 전주시 메가박스 전주객사에서 열린 <회생> 관객과의 대화에서 김 감독은 “시인을 꿈꾼 적도 있었지만 재능이 없었고, 언젠가 인생을 바꿀 만한 다큐를 본 경험을 바탕으로 다큐라는 포맷을 선택했다”며 “우리가 의뢰인분들의 회생을 돕지만, 그들을 돕는 일이 나를 살리고 있는, 일종의 역설을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족의 얼굴을 통해 오늘의 한국 사회를 비춘 두 작품은 5일까지 전주 일대에서 상영된다. 한국경쟁 부문을 포함한 영화제 시상식은 5일 오후 4시 전북대 삼성문화회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서현희 기자 h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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