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황후 조제핀과 장미
이제 곧 장미 축제가 시작된다. 보통 장미의 기원을 아시아와 중동에서 찾지만, 근대 장미 정원 문화는 프랑스에서 화려하게 꽃피었다. 특히 19세기 초 장미가 원예 문화로 자리 잡는 데에는 나폴레옹의 황후 조제핀 드 보아르네를 빼놓을 수 없다.
빼어난 미모와 우아한 취향으로 이름 높았던 그는 나폴레옹과 결혼한 뒤 황후에 올라 호화로운 삶을 보냈다. 그러나 10년이 넘도록 후계자가 태어나지 않자, 나폴레옹은 조제핀과의 이혼을 선택했다. 충격에 휩싸였던 그는 파리 근교의 말메종성에 정착해 식물에 온 정성을 쏟으며 정원사로 거듭났다.
조제핀은 성에 딸린 넓은 부지에 영국식 풍경 정원을 꾸미고, 세계 각지에서 들여온 온갖 희귀 식물을 재배하기 위한 대형 온실도 조성했다. 유리 온실에는 석탄 난로까지 설치해 큰 나무도 겨울을 날 수 있었다. 특히 장미를 사랑했던 그는 당시 알려진 거의 모든 종류의 장미를 수집했다. 그 결과 약 250종에 달하는 장미 품종을 모아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장미 컬렉션을 보유하게 되었다. 말메종의 장미 컬렉션은 프랑스 정원 문화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으며, 19세기 원예 산업과 장미 육종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는 나폴레옹의 적극적인 후원도 있었다. 나폴레옹은 원정지에서 장미와 여러 꽃을 모아 황후가 사는 말메종으로 보내도록 지시했다. 심지어 전쟁으로 봉쇄된 유럽의 바닷길도 조제핀의 식물을 운반하는 선박만은 예외적으로 통과했다고 하니, 조제핀에 대한 나폴레옹의 사랑을 짐작할 만하다.
말메종의 식물을 더욱 빛나게 한 인물은 식물화가 르두테였다. 조제핀은 그에게 말메종의 식물을 그리게 했고, 그 덕분에 오늘날에도 조제핀의 정원과 식물을 상상해볼 수 있다. 이국 식물 중에는 중국에서 온 모란도 있었다. 아름다움과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장미와 모란은 모두 끝내 붙잡고 싶은 인간의 꿈이다.
그러나 황제의 영광도, 황후의 사랑도 영원하지 않았다. 1814년 5월, 정원과 식물을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조제핀은 51번째 생일을 앞두고 갑자기 세상을 떴다. 그는 화려한 취향만큼이나 큰 부채를 남겼다. 엘바섬에서 유배 중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나폴레옹은 며칠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세상의 영광은 이처럼 사라진다(Sic transit gloria mundi).’ 한때 교황의 대관식에 낭독되던 문구다.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에도 울려 퍼졌을까.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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