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기본소득이 답이라고?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2026. 5. 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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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력 증대로 발생한 잉여를 기본소득으로 나누면 된다’는
발상에 그치고 그에 따른 문제들과 씨름하지 않는다면,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적 특징을 완전히 간과한 것이며
리카도 이전의 경제학으로 퇴행하는 것이다
이제 산업문명은 다시 정치경제학이 꼭 필요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로봇의 등장으로 일자리와 소득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하나의 대답이 글자 그대로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기본소득이다. 이제 노동시장 자체가 감소할 위험에 처했으니, 증대된 생산력과 경제적 잉여를 국가가 조세로 흡수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동, 소득, 조세, 재분배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하면서 미래 사회의 상상력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개념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실현 가능한 대안으로 생각하는 것에는 너무나 많은 논리적인 맹점이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잠재적인) 물질적 생산력이 폭증한다고 해도, 그것은 소득 그것도 과세 가능한 화폐소득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첫째, ‘유효수요’의 문제이다. 기본소득의 상상력은 노동자들을 인공지능 및 로봇으로 대체해 큰 생산성을 누리는 기업들이 거액의 화폐 수익을 거두게 되니 이를 국가가 그저 가져오면 된다는 생각을 담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폭발적으로 풀어놓는 그 많은 재화와 서비스는 누가 다 사줄 것인가? 정말로 대량해고로 실업이 폭증하게 될 경우 나라 경제의 총수요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사줄 사람이 없다면 그 재화와 서비스가 화폐로 실현되지도 못하며, 기업들이 ‘거액의 화폐 수익’을 누리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기본소득론은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해고된 사람들에게 국가가 나서서 기본소득을 나누어주어 ‘유효수요’를 창출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여기에는 논리적 시간적 순서의 착오가 있다. 국가가 기업들에 더 많은 과세를 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에 먼저 엄청난 화폐 수익이 발생하고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그 기업들의 제품을 구매해줄 수요자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수요자가 있어야만 생겨날 수 있는 조세 수입으로 그러한 수요자를 창출하겠다는 것은 성립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기본소득론자들 중에도 이러한 시간적 논리적 순서의 문제를 인식해 대규모 적자 재정을 통해 또는 화폐 증발을 통해 기본소득을 ‘선금으로’ 지불하는 방법을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막대한 규모의 적자 재정을 필연적으로 초래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현존하는 국가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국가를 전제로 하는 이야기이다.

‘잉여’가 존재할지도 의구심

둘째, 인공지능과 로봇 도입으로 압도적인 이윤을 거두어 가는 곳이 초국적 대기업이라는 문제이다. 물론 한 나라 안에서도 그러한 기술적 도입으로 인력을 감축해 더 많은 이윤을 내는 기업이 속출하겠지만, 그러한 기술의 기본적인 인프라와 플랫폼을 제공하는 글로벌 빅테크가 그야말로 전체 이윤에서 ‘사자의 몫’에 해당하는 뭉텅이를 가져가게 될 것이며, 한 나라 안의 기업들에 주어지는 이윤의 몫은 그에 비하면 왜소한 것일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 논의는 암묵적으로 그 범위와 시행 주체를 일개 국민국가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한 나라 안의 기업들만을 대상으로 조세를 매긴다고 해도 과연 기본소득에 충분한 양이 나올 것인가? 글로벌 빅테크에 대해 일개 국민국가가 조세를 매기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 정도 규모의 과세가 행해진다고 했을 때, 이를 피하기 위해 여러 기업들이 글로벌 빅테크와 함께 공모해 순환출자 등 여러 방법으로 조세를 회피하는 것은 어떻게 막을 것인가?

셋째, 기업의 화폐소득이 실제로 발생하고 여기에 성공적으로 조세를 매긴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기업의 순자산 증가가 과세 가능한 형태로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대규모 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이전 가격의 조작이나 무형자산 회계 등을 이용해 이익은 발생하되 과세 가능한 소득으로는 잡히지 않는 구조를 정교하게 만들어왔다. 모름지기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대에는 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 틀림없다. 기업들이 장부를 이리저리 만져서 그 ‘잉여’ 이윤을 과세할 수 없는 항목으로 숨기는 것을 막으려면, 기업의 구체적 활동과 자산 구매에 있어서 어떤 것이 과세 대상이 되는지에 대해 대단히 정교하고 철저한 정의를 마련하고 그에 근거한 법적 조항들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러면 또 이를 피하기 위한 절세 수법이 나타날 것이고, 절세와 과세를 둘러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톰과 제리’의 싸움이 이어질 것이다. 이는 사실 지금 기본소득과 함께 이야기되고 있는 ‘로봇세’에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로봇’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휴머노이드뿐인가? 노동을 대체하는 일체의 기계 장비인가? 사무 지식 노동을 대체하는 소프트웨어는? 알고리즘은? 여기에 기업이 지출하는 돈에는 세금을 물려야 하는가 아니면 기술 혁신을 장려하기 위한 보조금을 지급해야 하는가?

넷째,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남아 있다. 정말 ‘잉여’가 존재할지도 의심스럽다. ‘잉여’란 총수입에서 총비용을 뺀 나머지 부분이지만, 이때의 ‘비용’이란 보통 일개 기업이 지출하는 비용을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노동시장 자체를 잡아먹을 정도의 엄청난 규모로 인공지능과 로봇의 도입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이 기업이 지출하는 비용뿐일까? 그렇지 않다.

정치경제학 중요성 너무 폄하

기업이 아닌 사회 전체가 치러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할 것임은 분명한 일이다. 우선 인공지능과 로봇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사회 전체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 에너지 인프라를 확충해야 하며, 데이터센터를 구축해야 하며, 거기에 쌓아놓은 데이터를 수집 정리해야 하는바, 이 비용의 상당 부분은 기업이 아닌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으로 고스란히 전가된다. 사회적 비용의 발생은 1차로 끝나지 않으며 전방위적으로 2차, 3차의 비용을 파생시킨다. 에너지 인프라와 데이터센터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 부족과 탄소 배출 등 생태적 비용들도 당연히 계산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대규모 기술 전환에는 실업률 폭증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사회적 마찰이 생기는 것이 필연이므로 이를 감당하기 위한 비용들도 파상적으로 발생하게 될 것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모든 비용들을 다 감당한 뒤에도 그렇게 사람들의 삶을 지킬 수 있는 기본소득을 지급할 만큼의 ‘잉여’가 발생한다고 당연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앞서 말한 대로 기본소득이라는 개념 자체는 미래 사회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자극하는 소중한 문제 제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더 많은 질문을 열기 위한 단초일 뿐 그 자체가 답이 될 수는 없다. 앞에서 말한 네 가지 문제에서 제기되는 질문들부터 우선 생각해보자. 첫째, (잠재적인) 기술적 생산력의 증대를 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각종 비용을 어떻게 화폐 단위로 측정할 것인가. 둘째, 그렇게 해서 측량된 ‘잉여’에서 개별 기업이 자기 몫으로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이며 자연과 사회가 청구권을 주장할 수 있는 몫은 어디까지인가. 셋째, 그 ‘잉여’를 모두의 기본소득으로 재분배할 수 있는 사회적 권력의 주체는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는가. 이는 아주 근본적이고 때로는 철학적 차원으로까지 이어지는 질문들이라서 외면당하는 것들이지만, 방금 따져보았듯이 이러한 문제들에 아주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한다면 위에 우선 열거한 네 가지 문제들을 풀기가 난망하며, 그렇게 된다면 기본소득이라는 제안은 남가일몽에 불과한 것이 될 뿐이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근본적인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정치경제학은 그 중요성이 너무나 폄하되어 있는 상태이다. 정치학과에서도 경제학과에서도 사회학과에서도 이를 본격적으로 가르치는 곳은 찾기 힘들다. 자본주의 이전의 전통 사회에서는 생산이 먼저 벌어지고 그것을 나누는 분배는 사후적인 별개의 문제로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00년 전 데이비드 리카도가 이미 갈파한 바 있듯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분배와 생산은 서로가 서로의 원인과 결과로 긴밀하게 얽혀 있다. ‘생산력 증대로 발생한 잉여를 기본소득으로 나누면 된다’는 단순한 발상에 그치고 위에 제기된 문제들과 씨름하지 않는다면, 이는 자본주의 사회의 역사적 특징을 완전히 간과한 것이며 리카도 이전의 경제학으로 퇴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제 산업문명은 다시 정치경제학이 꼭 필요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홍기빈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대안적 사회의 정치경제 질서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와 활동을 병행해 왔다. 저서로는 <위기 이후의 경제학> <비그포르스, 잠정적 유토피아와 복지국가>가 있으며, 역서로는 <도넛 경제학> <21세기 기본소득> <균형재정은 틀렸다: 현대화폐이론 입문> 등이 있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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