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내놓자마자 '순삭'…집주인은 "전문직만 받겠다" 배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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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전세 품귀' 현상으로 집주인과 세입자 간 균형이 깨지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전세 시장에서 집주인 우위 현상이 심해지며 세입자에게 각종 조건을 내거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집주인은 세입자 조건으로 '딩크(DINK·맞벌이 무자녀)족 전문직'을 내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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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유무 등 가족관계 확인
수리비 떠넘기는 특약도 등장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전세 품귀’ 현상으로 집주인과 세입자 간 균형이 깨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전셋값이 오르고 월세로 돌리는 아파트 물건이 늘어나고 있다. 집주인이 예비 세입자의 직장과 통장 사본은 물론 어린 자녀 유무 등 가족 관계까지 확인하는 일도 다반사다.
현장에선 집주인의 과도한 요구에 공인중개사가 만류하는 촌극까지 벌어진다. 세입자가 갱신계약권을 포기하고 전세금을 올려주며 더 머물겠다고 제안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계약갱신권을 아껴두면 최장 4년 더 거주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업계에서는 전세난으로 임대차 시장에서 과거에는 없던 새로운 계약 관행이 확산할 수 있다고 본다.
◇ 집주인 ‘황당 요구’ 급증
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전세 시장에서 집주인 우위 현상이 심해지며 세입자에게 각종 조건을 내거는 사례가 늘고 있다. 과거 논란이 된 깐깐한 생활 통제는 이제 기본 요건이 됐다.

대표적으로 시스템 에어컨이 없는 방에 세입자가 사비로 벽걸이 에어컨을 설치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이다. 에어컨 배관 설치를 위해 벽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 등 집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수억원의 보증금을 내고 들어가는 세입자는 집주인 심기를 거스를까 봐 냉방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처지가 됐다는 반응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집주인은 세입자 조건으로 ‘딩크(DINK·맞벌이 무자녀)족 전문직’을 내걸었다. 까다로운 조건에 지친 공인중개사가 “결혼정보회사와 착각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을 정도다.
세입자에게 수리비를 떠넘기는 ‘노예 계약’도 등장했다. 같은 지역의 한 아파트를 보러 온 신혼부부에게 집주인은 세입자 자비로 집수리를 할 것을 요구하며 “퇴거 때 수리 비용을 청구하거나 유익비(세입자가 집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쓴 비용)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특약까지 강요했다.
수억원이 오가는 보증금 잔금 일정도 철저히 임대인 입맛대로 돌아간다. “내 자금 사정이 이러니 잔금을 미리 당겨서 내라”는 식의 일방 통보가 빈번하다. 단기간에 목돈을 마련해야 하는 세입자가 일정을 맞추지 못하면 가차 없이 계약 기회를 박탈한다. 전세 물건을 등록한 지 하루도 안 돼 세입자를 구하는 이른바 ‘전세 순삭(순식간에 사라짐)’ 현상도 벌어진다.
송파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예전에는 세입자 직장을 물어보는 일은 없었다”며 “이젠 어떤 조건을 내걸어도 세입자가 맞춰주니 집주인 요구가 도를 넘기도 한다”고 말했다.
◇ 계약갱신권 아끼는 사례도 늘어
전세난이 심해지면서 법으로 보장된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을 미루는 세입자도 늘고 있다. 갱신권을 쓰지 않고 신규 계약을 맺어 전세금을 올려주는 대신 2년 더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권리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 중 갱신계약 비율은 46.85%에 달했다. 이사할 집을 찾지 못한 세입자가 기존 주택에 계속 거주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갱신계약 중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비중은 43.3%에 그쳤다.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갱신권을 써버렸다가 2년 뒤 새로운 전세를 찾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갱신권을 행사하지 않은 세입자는 집주인 요구대로 보증금을 올려줘야 한다. 갱신권을 사용하면 임차료 인상률이 5% 이내로 제한된다. 지난달 체결된 전세 갱신계약 중 갱신청구권을 쓰지 않은 계약의 보증금은 평균 7.54% 올랐다.
공인중개사가 갱신계약을 고려 중인 세입자에게 먼저 갱신권 포기를 제안하기도 한다. 업계 관계자는 “제도 도입 초기엔 갱신권을 무조건 사용해 임차료 인상 폭을 줄이려는 경우가 많았다”며 “지금은 2년 뒤를 생각해 보증금을 올려주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하는 세입자가 더 많다”고 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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