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의 핫스팟] 어린이날 장난감은 중고거래, 어버이날 마사지건은 미개봉

김현우 기자 2026. 5. 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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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스팟(HotSpot)'
고물가 뚫은 중고거래
콩알 골드바 인기 정점
고물가가 낳은 실속 효도
"중간만 가자."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이런 처세술을 조기 이수한 우리는 영혼 없는 끄덕임과 '모르는 척'으로 무장한 생존의 고수들이다. 퇴근길 소주 한 잔에 "오늘도 버텼다"며 스스로를 마취하고, "받은 만큼만 일한다"며 핏대 세우는 걸 훈장처럼 여긴다. 그런데 이상하다. 성공했다는 이들의 삶은 왜 우리와 이토록 딴판일까. 어쩌면 우린 그저 거대한 '펜듈럼(Pendulum)'의 진동판 위에서 시키는 대로 춤추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중요하지 않은 일에 공력을 낭비하며 '잉여 포텐셜'을 공급하는 건전지 신세로 말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도덕 교과서 대신, 왜 이 지겨운 장면이 무한 반복되는지 그 메커니즘이 궁금했다. 내게 그 프리즘을 빌려준 바딤 젤란드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의 '트랜서핑' 이론을 메스 삼아 한국 사회를 날카롭게 해부하는 [김현우의 핫스팟]을 시작한다.
고물가 여파로 '가정의 달' 풍경이 변하고 있다. 체면보다 실속을 택한 소비자들이 중고 플랫폼에서 '미개봉' 선물이나 '콩알 골드바'를 찾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과도한 지출 압박이라는 '에너지 펜듈럼'에서 벗어나 비용은 낮추고 정성은 지키려는 한국형 리기프팅 문화의 진화로 풀이된다. /챗GPT 제작 이미지

미국 명절 문화 중에 얄미우면서도 내심 부러운 게 하나 있다. 리기프팅(Regifting) 문화다. 남에게 받은 선물을 포장지만 싹 바꿔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이른바 선물 돌려막기다. 크리스마스 직전 목요일을 국가 리기프팅의 날(National Regifting Day)로 정해놓고 당당하게 재활용을 즐긴다. 예전 같으면 "어디 감히 먹다 남은 마음을 주냐"며 펄쩍 뛰었을 한국인들이다. 우리는 선물에 담긴 성의를 새 포장지 뜯는 짜릿함과 동의어로 여겨왔으니까.

그런데 4일 대한민국 가정의 달 풍경을 들여다보면 콧대 높던 한국인의 자존심도 지갑 압박 앞에서는 꽤 유연해진 모양이다. 노골적인 리기프팅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에 버금가는 새로운 타협점을 찾아냈다. 중고거래 플랫폼을 휩쓸고 있는 '사용감 없음'의 대약진이다.

중고거래로 눈 돌린 가정의 달

러시아 물리학자 바딤 젤란드의 모델을 빌려오자면 가정의 달은 5000만명 국민 어깨를 짓누르는 거대한 펜듈럼이다. 어린이날엔 지갑이 두둑한 능력 있는 부모여야 하고 어버이날엔 번듯하게 효도하는 자식이어야 한다는 집단적 압박이 작동한다. 펜듈럼은 "얼마를 썼느냐가 곧 네 마음의 크기야"라고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여기서 엄청난 잉여 포텐셜(긴장감)이 발생한다. 아이 장난감 하나 쥐여주는 데 드는 평균 지출액이 2016년 4만9000원에서 올해 9만5000원으로 수직 상승했다. 10만원짜리 최신 유행 로봇을 사줘 봤자 딱 2주일이면 거실 구석에서 레고 조각과 함께 뒹구는 흉물로 전락한다는 걸 부모들은 뼈아픈 빅데이터로 알고 있다. "아이가 얼마나 좋아할까"라는 낭만적 기대는 "이게 과연 돈값을 할까"라는 손실 회피 본능으로 바뀐 지 오래다.

해서 사람들은 펜듈럼의 멱살을 잡고 싸우는 대신 영리하게 힘을 빼는 길을 택했다. 현실적 출구가 바로 중고거래다. 여기서 압권은 '사용감 없음'과 '미개봉'이라는 마법의 단어다. 절약은 하고 싶지만 궁상맞아 보이고 싶진 않은 거다. 중고 장난감을 사주더라도 "아빠가 널 위해 발품 팔아 새것 같은 놈으로 구했다"는 체면 보존 장치가 필요하다. 소비 심리학적으로 포장하자면 합리적 소비라는 이름의 눈물겨운 방어기제다.

가성비와 체면 지키는 퓨전 효도

어버이날이라고 다를까. "아유 돈 아깝게 뭘 이런 걸 사 왔어"라는 부모님 단골 멘트는 세계 8대 미스터리 중 하나다. 자식의 얄팍한 형편을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그래도 빈손은 아니겠지'라는 고난도 은유다.

해독하기 어려운 미션 앞에서 젊은 세대는 비싼 생화 대신 시들지 않는 조화를, 덩치 큰 300만원짜리 안마의자 대신 당근마켓에서 '미개봉 마사지건'을 검색한다. 최근엔 0.1~0.3g짜리 콩알만 한 미니 골드바가 불티나게 팔린다. 꽃은 쓰레기통으로 가고 화장품은 취향을 타지만 금은 티끌만 해도 황금이다. "큰돈은 아니지만 절대 헛돈은 아니다"라는 메시지는 고물가 시대가 낳은 효도 문법이다. 감정 표현에도 잔존 가치를 따지기 시작한 셈이다.

사회적으로 보면 가족 의례의 시장화가 한 단계 더 진화한 장면이다. 평균 9만5000원이라는 숫자는 누군가에겐 가벼운 일시불이지만 누군가에겐 며칠 치 땀방울이다. 하지만 부모 자식 앞에서는 그 계층 차이조차 지워내야 한다는 압박만 남는다. 이때 중고거래는 중산층 모두의 얇아진 지갑과 체면을 동시에 지켜주는 훌륭한 생활 기술로 격상된다.

비싼 선물을 못 사서 미안해하고 중고를 사면 초라해 보일까 전전긍긍하는 순간 펜듈럼은 우리의 죄책감을 먹고 덩치를 키운다. 하지만 올해 소비자는 이 시험지 앞에서 오답 노트를 적는 대신 아예 출제 경향을 바꿔버렸다.

사랑을 표현하는 입장료가 너무 비싸지니 우리 나름대로 의례를 저비용으로 재설계하고 있을 뿐이다. 돈의 압박에 대처하는 맷집과 관계를 지켜내는 감각이 한층 진화했다. 미국의 실용적인 리기프팅 마인드가 한국식 정(情)과 만나 탄생한, 거품은 빼고 실속은 챙긴 기막힌 퓨전의 현장이다.

☞펜듈럼= 러시아 물리학자 바딤 젤란드의 저서 <트랜서핑>에 나오는 개념이다. 사람들의 사념이 모여 만들어진 보이지 않는 에너지 덩어리로, 특정한 규범이나 유행으로 사람들을 압박해 에너지를 빼앗는 '에너지 뱀파이어' 역할을 한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hyunoo9372@seoulmedia.co.kr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