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러 최대 석유항구 대규모 공습…‘중동전 반사이익’ 차단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가시권에서 사라진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쪽은 밤마다 수백발의 자폭 드론 공습을 주고받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 ‘전쟁 돈줄’인 석유 수출기지를 폭격하고,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민간 시설을 때려 전쟁 의지를 꺾으려 한다.
키이우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3일(현지시각) 텔레그램 성명에서 이날 러시아 북서부 레닌그라드주의 프리모르스크항을 드론으로 공습해 “석유 적재 인프라에 상당한 피해를 줬다”고 밝혔다. 유조선 1척과 러시아 해군 카라쿠르트급 미사일함 1척, 순찰정 1척도 함께 타격했다고 전했다.
레닌그라드 주지사 알렉산드르 드로즈덴코 역시 전날 밤 우크라이나군 드론 60대 이상을 격추했다고 확인했다. 드론 일부가 항구에 떨어져 불이 난 뒤 진화됐으며, 기름 유출은 없었다고 했다.
프리모르스크항은 하루 100만배럴의 석유 수출입을 처리할 수 있는 러시아 최대의 에너지 무역 관문이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북쪽으로 1000㎞ 넘게 떨어져 있지만, 사거리와 정확도가 오른 우크라이나 드론의 주된 타깃이 되고 있다.
이날 우크라이나군은 흑해 연안 노보로시스크 항구에 정박한 유조선 2척도 타격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텔레그램에 “이들 유조선들은 (국제사회 대러시아 제재를 피한) 석유 운송에 적극 사용돼 왔다. 이제는 더 이상 아니다”라며 “우크라이나의 장거리 (타격) 능력은 해상, 공중, 지상에서 종합적으로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썼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석유 인프라 공습에 힘을 쏟는 건 에너지 수출이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이기 때문이다. 2월28일 시작된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뛰며 산유국인 러시아가 반사이익을 얻게 되자, 우크라이나는 석유 수출기지를 부숴 이를 차단하려 한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전역의 정유소·송유관·해상 에너지 시설을 최소 21번 공격했다고 집계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의 하루 평균 정유량은 469만배럴로 줄었는데, 이는 2009년 1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의 이런 성과는 러시아의 전쟁 잠재력을 제한한다”며 “전쟁 장기화는 우리 방어 작전을 확대하는 일일 뿐”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당국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가 이날 러시아 전역에 가한 드론 공격은 334건에 이른다.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에서 7㎞ 떨어진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드론에 맞아 손상됐고, 남부 보로네시에선 드론 14대가 공장을 집중 공격해 불이 났다. 러시아 당국은 구체적인 사상자 규모 등은 내놓지 않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이 갈수록 대범해지면서, 러시아 연방경호국(FSO)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주변 보안을 강화하고 요리사·경호원 등 주변 직원들의 스마트폰 이용 등을 금지했다고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과 가족들은 러시아 북서부의 발다이 별장 방문도 끊고, 남부 크라스노다르 등의 벙커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있다.
이 매체는 푸틴 대통령의 측근을 인용해 “우크라이나의 ‘스파이더웹’ 드론 작전이 준 충격이 (푸틴에게) 남아있다”며 “1월 미국이 베네수엘라 지도자 니콜라스 마두로를 체포한 일도 (신변) 안전 우려를 더욱 부추겼다”고 전했다. 스파이더웹은 지난해 우크라이나군이 북극권 너머의 러시아 비행장들을 드론으로 타격한 작전이다.
러시아군 역시 이날 우크라이나 전역에 드론 268대와 ‘이스칸데르’ 탄도미사일 1발을 날렸다. 우크라이나군은 이중 드론 249대를 방공망으로 격추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동부 드니프로시 주거 지역에 러시아군 드론이 떨어져 1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고, 남부 오데사에서도 2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오데사주 당국은 텔레그램에 “적(러시아)은 오데사주의 민간 및 항만 인프라를 계속 타격하고 있다”며 “(드론이) 아파트 3채를 타격했고, 항만의 건물·장비가 손상됐다”고 전했다.
남부 헤르손에서는 이날 새벽 통근 차량이 러시아군 드론에 맞아 1명이 숨졌다. 이 지역에서는 전날 오전에도 러시아군 드론이 미니버스를 때려 2명이 숨지고 7명이 다친 바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 후방에 대한 드론 공습과 함께, 육상에서 도네츠크주 코스탼티니우카를 포위해 압박하고 있다. 코스탼티니우카는 크라마토르스크·슬로우얀스크와 함께 도네츠크에서 우크라이나가 방어 중인 대도시 3곳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군 고위 관계자는 2일 로이터에 러시아군이 이곳을 향해 조금씩 전진 중이라고 전했다.

공습과 공방전이 지속되며 푸틴 대통령이 주장한 ‘제2차 세계대전 전승절 휴전’은 없던 일이 되는 분위기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전승절 81주년 행사가 열리는 9일부터 우크라이나와 한시 휴전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쪽에선 러시아 국경일을 전후로 한 한시 휴전이 아닌 종전 논의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해에도 전승절 연휴인 5월8∼10일을 일방적으로 휴전 기간으로 선포했으나 전투는 그대로 이어진 바 있다.
한편 유럽 국가들은 자금 지원과 군사 협력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영국 정부는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할 900억유로 규모 대출 지원에 참여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한다고 이날 밝혔다. 유럽연합이 지난달 승인한 이 대출로 우크라이나는 향후 2년간 필요한 전쟁 자금의 약 3분의 2를 충당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지만 최근 군사·외교 등에서 유럽연합과의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영국은 이번주 중 러시아 기업들을 겨냥한 “강력한 제재”를 새로 발표하겠다고도 밝혔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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