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경색국면을 뚫고 오는 반가운 발걸음, 북한 여자축구단의 수원행

스포츠평론가 김정훈 2026. 5. 4.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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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대회 운영이 곧 도시의 얼굴…수원시·경기도, 준비와 안전에 총력 기울여야


수원FC 남자프로축구단과 수원FC위민 여자축구단이 홈 구장으로 사용하는 수원종합운동장 외부 모습.




수원FC위민 여자축구단이 2026 시즌 홈 개막 경기에서 승리한 후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발리볼코리아닷컴=김정훈 스포츠평론가】얼어붙은 한반도 위로, 공 하나가 조용히 굴러온다.



그리고 그 공은, 단순한 스포츠의 궤적을 넘어선다.



오는 5월 17일, 북한의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수원을 찾는다. 수원FC 위민과의 아시아 무대 맞대결을 위해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장면이다. 남북 관계는 '적대적 두 국가'라는 선언 속에 사실상 단절되었고, 교류의 흔적은 지워진 지 오래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국가대표'가 아닌 '클럽팀'을 한국에 보낸다는 선택은 그 자체로 강한 메시지다.



이 방문은 결코 단순한 원정 경기가 아니다. 정치와 외교, 그리고 체제의 서사가 교차하는 복합적 사건이다.



내고향여자축구단은 2012년 평양에서 창단된 비교적 신생 팀이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북한 여자축구 판도를 뒤흔든 '신흥 강자'다. 군 체육단 중심 구조였던 북한 축구계에서 기업 후원을 기반으로 한 이 팀은, 평양국제축구학교 출신 엘리트들을 흡수하며 급성장했다. 전통의 강호 군팀인 4.25체육단을 제치고 리그 정상에 오른 것은 단순한 성과가 아니라 구조 변화의 신호였다



전력 또한 만만치 않다. U-17, U-20 월드컵 우승 경험을 가진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국가대표급 자원이 다수 포진해 있다. 빠른 템포와 강한 체력을 앞세운 조직력 축구는 이미 아시아 무대에서도 통하고 있다. 실제로 이들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수원FC 위민을 3-0으로 꺾으며 전력을 입증했다.





지난 3월 24일 수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수원방문의해 선포식에서 이재준 수원시장(가운데) 등이 수원 방문의 해 개막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사진제공=수원특례시청)


그렇다면 북한은 왜 지금, 수원을 향했는가.



표면적인 이유는 국제대회 참가다. 아시아 축구 무대라는 틀 안에서 움직였을 뿐이라는 설명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보다 분명한 계산이 깔려 있다.



먼저, '정상국가' 이미지의 구축이다. 북한은 최근 국제 스포츠 무대 복귀를 통해 고립의 이미지를 희석하려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여자축구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몇 안 되는 분야다. 강팀을 내세워 성과를 내는 것은 체제의 우월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다.



여기에 실리도 있다. 거액의 우승 상금이 걸린 이번 대회는 외화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 이미 일정 수준의 성과를 확보한 상황에서,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충분히 계산된 선택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방식'이다. 북한은 이번 방남을 교류가 아닌 경기로 규정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판문점이 아닌 제3국 경유, 최소한의 접촉, 오직 경기 중심의 일정. 이 모든 것은 하나의 메시지로 수렴된다. 남북은 더 이상 특수관계가 아니라는 선언, 그리고 그 선언의 실천이다.



결국 이번 수원행은 모순된 두 얼굴을 동시에 지닌다. 화해의 여지를 남기면서도, 거리를 분명히 긋는 선택. 같은 90분 안에서 상반된 메시지가 공존하게 된다.



그래서 이번 경기는 '역사적'이라는 표현을 피할 수 없다. 남북 여자 클럽팀이 국제대회에서 맞붙는 첫 장면이자, 북한 스포츠팀의 방남이 다시 이루어지는 드문 순간이다.



이처럼 무게가 다른 경기인 만큼, 준비 또한 달라야 한다.





수원FC 남자프로축구단과 수원FC위민 여자축구단이 홈 구장으로 사용하는 수원종합운동장 전경 모습.




수원FC 남자프로축구단과 수원FC위민 여자축구단이 홈 구장으로 사용하는 수원종합운동장 본부석 모습.


경기가 열리는 수원종합운동장은 오랜 시간 시설 노후화 문제가 지적되어 온 곳이다. 이번 대회는 단순한 지역 이벤트가 아니라 아시아, 나아가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무대다. 경기장 시설, 관중 동선, 보안, 미디어 대응까지 어느 하나 허투루 넘길 수 없다.



특히 선수단 안전은 절대적인 과제다. 북한 선수단의 특수한 신분과 정치적 민감성을 고려하면 작은 변수 하나도 큰 외교적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문제 없이 끝났다'는 평가가 이번 대회의 최소 기준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현재 수원FC 위민이 처한 현실이다. 구단주는 지방선거로 인해 권한대행 체제에 있고, 단장 자리 역시 공석이다. 리더십 공백 속에서 국제대회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이번 90분은 한 팀의 승패를 넘어선다. 이는 수원이라는 도시의 역량이자, 경기도의 준비 수준이며, 나아가 한국 스포츠 행정의 얼굴이다. 준비의 완성도는 곧 국가의 품격으로 이어진다.



축구는 흔히 '90분의 외교'라 불린다.



그라운드 위에서는 22명이 공을 쫓지만, 그 이면에서는 체제와 메시지, 그리고 시대의 공기가 충돌한다.



우리는 그동안 스포츠를 통해 얼어붙은 관계의 균열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이번 장면은 그때보다 훨씬 복잡하다. 기대와 경계가 동시에 존재하고, 접촉과 단절이 한 공간에 겹쳐진다.



그래서 더더욱, 실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완벽에 가까운 준비, 흔들림 없는 운영, 그리고 절제된 대응.



그것이 지금 수원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펼쳐질 90분이, 단절의 시대 속에서도 이어질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연결고리로 남기를 기대한다. 



이 칼럼은 스포츠평론가 김정훈이 기고 한 글 입니다. 외부 칼럼의 경우 본지 편집 방향과 맞지 않을 수 도 있는 점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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