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뛰어야 하는데…북한 축구팀, 판문점·직항 아닌 베이징 경유하는 이유

김병관 기자 2026. 5. 4.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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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7 북한 여자 축구대표 선수들이 2024년 11월 3일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열린 U-17 여자 월드컵에서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승리하자 기뻐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북한의 여자축구 리그 구단인 내고향여자축구단(이하 내고향)이 경기 수원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준결승전에 참가하기 위해 오는 17일 방남한다. 북한 선수단의 방남은 2018년 12월 이후 약 7년5개월 만이다.

북한이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 참석해 정상국가 이미지를 부각하고,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남북 모두에 각인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방남이 남북 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대한축구협회와 통일부는 2025-2026 AWCL 준결승전에서 수원FC 위민과 맞붙는 내고향의 방남이 확정됐다고 4일 밝혔다. 이들은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오는 17일 오후 2시 15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방남하는 선수단은 선수 27명과 코치진 등 총 39명으로 이뤄졌다.

북한 선수가 한국에서 열리는 스포츠 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2018년 12월 인천에서 열린 국제탁구연맹(ITTF) 월드투어 그랜드파이널스 이후 약 7년 5개월 만이다. 북한 여자축구팀이 방남하는 것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12년 만이다.

당초 정부 안팎에서는 북한의 이번 대회 불참 가능성이 거론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까지도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선언한 만큼, 일체의 유화적 분위기를 차단하기 위해 선수단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역설적으로 북한의 이번 방남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각인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국제 대회에도 참석해 정상 국가 이미지를 부각하되, 한국을 ‘교전 중인 외국’으로 대하는 방식을 드러내려는 차원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방남을 위한 협의 과정에서 남북 당국뿐 아니라 축구협회 간 접촉은 일절 이뤄지지 않았다. 통일부는 북한 축구협회가 AFC에 밝힌 방남 계획을 대한축구협회를 거쳐 전달받았다. 북한이 통보한 방남단에도 남북 접촉을 할 만한 고위 당국자는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선수단이 판문점을 통하거나 남북 직항편을 협의하지 않고 중국을 경유하는 점 역시 ‘적대적 두 국가’ 기조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석좌교수는 “지원 인원으로 보위부와 남북관계를 관장하는 10국 인원들이 방한할 가능성이 높지만 남북 당국 간 대화 혹은 접촉은 제한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과거에는 남북관계 경색국면에서 스포츠 교류가 물꼬를 텄지만 현재는 북한이 강력한 두 국가 분리 정책을 취하고 있어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이 모든 물리적·제도적 연결을 차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포츠라는 국제 규범 아래 선수단이 오가는 것은 남북 간의 최소한의 연락 체계와 안전 보장 장치가 다시 작동함을 의미한다”며 “수원 대회는 남북 관계의 새로운 표준, 즉 냉정하고 평화적인 공존을 실험하는 중요한 전례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대회 규정상 사유 없이 기권할 경우 벌금과 국제대회 출전 자격 정지 등의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이번 방남에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과도한 의미 부여를 삼가며 차분히 지켜보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이날 내고향의 방남에 대해 “경기 참가를 환영한다”며 “정부는 AFC, 수원FC와 함께 선수단이 경기를 잘 치를 수 있도록 협조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번 대회를 “국제 경기, 클럽대항전 두 가지 측면으로 보고 있다”며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정부 입장에서는 이 행사가 잘 시작돼야 한다는 게 중요한 의미”라며 “최대한 국제대회라는 점을 존중하면서 소통하고 협력하겠다”고 했다.

수원FC 위민과 내고향의 준결승전은 오는 20일 오후 7시 수원 종합운동장에서 치러진다. 결승전은 오는 23일 오후 2시 같은 곳에서 열린다. 준결승전에서 패배하는 팀은 3·4위전 없이 21일 본국으로 복귀한다. 내고향은 방남 기간 수원FC 위민과 같은 숙소인 수원 노보텔 앰배서더 호텔에 머무를 예정이다. 식사 장소나 이동 동선 등은 분리돼 있어 남북 선수단이 마주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기는 관중이 참석한 가운데 열릴 예정이다. 이번 대회는 클럽 대항전이어서 경기 진행에 있어 국기나 국가는 사용되지 않는다.

평양을 연고지로 둔 내고향은 북한 여자축구 리그의 신흥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고 통일부는 설명했다. 2012년 창단해 2021~2022년 시즌 북한 1부 리그에서 명문 축구팀인 4·25선수단을 꺾었다. 내고향은 AWCL 예선전에서 수원FC 위민을 3대0으로 꺾은 바 있다. 북한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17세 이하(U-17), 20세 이하(U-20) 여자 월드컵 등에서 여러 차례 우승한 여자 축구 강국으로 평가된다.

김병관 기자 bg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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