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대로 바꾸자 [왜냐면]

한겨레 2026. 5. 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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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의원 187명이 발의한 ‘대한민국헌법 개정안’ 공고안이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된 지난 4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2층 정문의 헌법 1조 2항 글새김 모습. 연합뉴스

한상희 | 시민개헌넷 공동대표·건국대 명예교수

햇수로 39년 만에 드디어 국회가 개헌의 물꼬를 텄다. 개헌이 지난 대선에서의 주된 공약이었고 현 정부의 제1호 국정과제로 자리하였음에도 미적거리며 나 몰라라 하던 국회가 급하게나마 개헌안을 마련하였다는 점은 높이 살 일이다.

하지만, 이 개헌안은 본원적으로 생뚱맞다. 무도한 윤석열 정권의 내란 행위는 현행 헌법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었다.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를 무시하며 패악의 권력을 휘둘러도 주권자인 시민들은 몸으로 저항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검찰공화국에 시행령 통치, 거부권 정치가 횡행하여도 헌법은 그저 무기력하였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제2항)고 했지만, 그렇게 나온 권력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내내 모르는 체하였다. 대의제라는 명분으로 제헌 헌법 이래 국민에게는 아무런 권력도 부여하지 않았던 헌법 체제는 수많은 민주항쟁의 역사에도 지루하게 잔존하면서 우리의 시민권을 훼손해왔다.

그러기에 우리는 헌법을 바꾸자고 외쳤다. 하지만 국회는 이 요청에 충실하지 않았다. 얼마 전 내란사태로부터 헌정 질서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가열찬 저항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번 개헌안은 이런 헌법 충성의 의지들을 담아내지 못했다.

그 증좌가 현행 헌법의 토대인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일언반구도 않는다는 점이며, 노태우 정부가 “민주항쟁”이라는 말을 지우려 내세웠던 ‘5·18민주화운동’ 용어를 재사용한다는 점이다. 길거리에 나섰던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되살려내는 민주적 장치를 만들기는커녕 그 당대적 의미조차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는 개헌안인 셈이다. 심지어 이런 개헌안을 만든 과정조차 민주적 숙의의 절차를 벗어나 있다. 국회의장과 6개 원내정당이 갑자기 들고나온 합의안일 뿐, 이 안들에 대한 시민들의 성찰을 구한 적도 없다.

물론 국민의힘이 반(反)정치의 행로를 유랑하는 현재 정국에서 온전한 개헌을 도모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모두가 쉽사리 합의할 수 있는 최소 합의 수준에서 진행되는 것이 나름 현실적인 정치 경로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다만 이런 정국은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정치적 역량 혹은 그들의 개헌 의지가 최저선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주는 것일 뿐, 그토록 무성의한 개헌안을 정당화하는 변명거리는 되지 못한다. 그들의 호소 대상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헌법 의지로 충만한 시민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개헌은 너무도 절실하다. 울며 겨자 먹기 격이지만, 이런 개헌안이라도 제대로 통과시키는 것이 현재 헌정 체제를 혁파해내는 최선의 경로가 된다.

주지하듯 현행 헌법은 39년간 고정되어 있었다. 좋은 헌법이라면 그 시간이 별문제 아니겠지만, 현행 헌법은 그에 값하지 못한다. 제헌 당시에는 최첨단이던 기본권 조항은 이제 퀴퀴한 유물이 되어 있고, 국민으로부터 유리된 채 군림하기만 하는 권력은 이미 민주화 물결 위에서 표류하고 있을 따름이다. 현행 헌법을 지배하는 국가주의와 권력 집중의 통치 체제는 더 이상 시민들의 민주 의지를 감당하기 어렵다.

이번 개헌은 이렇게 고착된 헌법 현실을 깨쳐내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이런저런 핑계로 개헌 작업을 미루기만 하던 정치 기득권자의 손아귀에서 헌법을 빼앗아 우리를 위한 우리의 개헌으로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그 발의자들은 이 개헌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선언하였다. 이번 개헌은 향후 추가 개헌의 절차와 내용을 중심으로 숙의할 전 단계임을 확인한 것이다. 추가 개헌 추진 작업은 시대적 당위가 되었으며, 그 책무는 국회와 대통령의 것임을 우리가 명토 박아 둘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렇게 열리는 2차 개헌의 동력은 우리로부터 나온다. 현대 국가에서의 헌법은 국민의 삶을 바꾸어내는 집단 지성의 결과로 충만된다. 오는 7일 국회의 개헌안 의결은 이 점에서 새로운 헌법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국면을 이룬다.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지방선거일에 실시되는 것을 확정함으로써 주권자인 우리가 본격적으로 헌법을 말하며 국가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숙의할 장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국민의힘을 비롯한 모든 정파들은 이 과정에 성실히 참여하여야 한다. 아울러 국회는 헌법개정절차법을 제정하고 대통령은 이 법에 따라 모든 국민과 함께 하는 개헌 과정을 충실히 해낼 것을 확약하는 작업 또한 계속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시민들의 헌법적 상상력으로 충만한 새로운 헌법 체제를 구상할 수 있는 시민 정치의 장을 열어내어야 한다.

부연하건대, 개헌은 현시대 가장 절실한 과제이자 시민들의 강력한 요구사항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너무도 좋은 기회다. 허투루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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