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야구 취재 40년’ 통해본 한국 프로야구 어제-오늘-내일

김수인 칼럼니스트 2026. 5. 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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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리그'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의 경기. 만원 관중이 응원하고 있다./마이데일리

[마이데일리 = 김수인 칼럼니스트] 이번 5월로서 필자가 야구 취재를 시작한지 40년이 된다. 필자는 1986년 5월 6일 대구 삼성-해태전을 스타트로 야구기자(스포츠서울, 스포츠조선)와 야구 칼럼니스트로 숱한 프로야구 경기를 취재했다. ‘야구취재 40년’을 통해 프로야구의 어제, 오늘을 조명하고 내일을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야구 기술은 초창기에 비해 엄청 발전했다. 투수 부문을 보면, 초창기 A급 투수들이 최고 시속 140km를 넘기지 못했으나 요즘은 155km 안팎을 기록하는 투수가 팀당 한두명이나 된다. 포크볼, 체인지업 등 변화구 구사는 메이저리그(MLB)급이다. 유연한 키스톤 플레이와 외야수의 총알같은 홈 송구는 원년 멤버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타력은 힘이 붙고 변화구 대처 능력도 뛰어나다. 경기 수준이 높아진 것은 MLB 경력의 외국인 선수 유입, 1999년부터 도입된 FA(자유계약선수)의 동기 유발이 촉진제가 됐다.

2026년 4월 29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 경기. 두산 팬들이 응원하고 있다./마이데일리

다만 아직은 MLB의 더블A 수준으로 평가된다. 더블A에서 너클볼을 익혀온 OB베어스(두산 전신) 박철순이 1982년 24승4패 7세이브(22연승 포함)를 거두며 갓 탄생한 한국 프로야구 타자들을 농락한데서 보듯이 당시는 한국 프로야구가 싱글A 정도였다. 지난 3월 WBC에서 힘겹게 8강에 오른걸 보면, 아직은 트리플 A 수준엔 모자라고 더블 A에 머무른다고 보면 된다.

다음으로 눈에 띄는 게 관중 숫자다. 출범 44시즌인 지난해 연 관중 1,200만명(1,231만명)을 돌파했다. 6팀 체제였던 1982년 원년엔 144만명에 불과했다. 총 관중수로는 8.6배, 경기당 인원으로는 2.9배(5,995명 vs 17,101명)가 늘어났다.

관중 폭등은, KBO(한국야구위원회)와 각 구단의 눈부신 노력이 뒷받침한다. 새롭게 단장한 라이온즈파크, 문학경기장,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 등 쾌적한 관람 문화는 한번 온 발걸음을 또 오게 했다. 먹거리도 풍부해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부르는 ‘세계 최대의 노래방’은 해외 방문객들의 관광 코스가 됐다.

올해는 1,300만명 육박이 유력시된다. 어린이날인 5일, 역대 최소 경기 300만명 돌파가 확실하듯이 야구장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관중 러시는 언제까지 이뤄질까. 여성팬들이 남성팬들을 앞지르고(55vs45%), 가족단위도 늘어나는 등 야구 관람이 이제 ‘일상(日常)’이 됐다. 또다른 전쟁으로 인한 경제대란, 갑작스런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위축이 아니면 향후 10년까지는 1,200만명대 유지는 탄탄대로로 보인다.

올림픽, WBC(월드베이스볼 클래식)등 국제대회에서의 부진은 관중 동원에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게 최근 관중 추세에서 입증됐다. 다만 어이없는 수비실책과 투수들의 무지막지한 컨트롤 난조는 야구 재미를 반감시킬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 이는 프로야구의 젖줄인 중고교 선수들 훈련과 대회를 관장하는 대한야구협회의 역할이 중요한데, KBO와 대한야구협회가 ‘공존과 상생’을 위한 구체적인 협의를 도외시하고 있어 뜻있는 야구인들의 걱정을 사고 있다.

다음은 40년간 취재(어린 시절 경험 포함)를 통한, 필자만 아는 비하인드 스토리 및 특종 기사를 공개한다.

1.야신(野神)을 만들다=1987년 OB 김성근감독은 모종의 개인문제로 계약 연장이 힘들게 됐다. 동대문야구장에서 우연히 필자를 만난 김감독은 타팀 계약을 부탁했고, 필자는 당시 담당 팀이던 신생 태평양 돌핀스의 신동관 구단 사장을 만나 두사람을 연결해줬다. 하지만 계약 직전 김감독이 실내 연습장 신축 등 ‘21가지 요구조건’이라는 다소 무리한 계약 조건을 내걸어 계약이 힘들게 됐다. 필자는 신사장을 적극 설득해 김감독 계약이 성사됐고, 김감독은 돌핀스를 창단 첫해 일약 3위로 이끄는 등 지도력을 발휘, 명장 반열에 오르며 ‘야신’이라는 극찬을 받기에 이르렀다.

2.양상문 감독 탄생=현 한화 이글스 양상문 투수코치는 1993년, 중앙대의 정식 코치도 아닌 인스트럭터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겨 필자를 엄청 신뢰하던 롯데 자이언츠 A사장에게 부탁, 이듬해 롯데 코치가 됐다. 그는 이후 롯데 감독, LG의 감독과 단장을 지내며 ‘지도자겸 구단행정가’로 이름을 날렸다.

3.YS의 전격 시구=1994년 스포츠조선 야구부 차장 시절, 경남고 동기생인 청와대 민정수석실 모 행정관에게 지나가는 말로 “경남중(6년제) 출신의 YS(김영삼 대통령)는 야구 좋아하시잖아. 10월 한국시리즈 시구 한번 하시라고 건의해봐~”라고 툭 던졌다. 열흘후 행정관이 필자에게 전화해 “회의때 건의한게 채택이 돼 시구하시게 됐어~”라는게 아닌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YS는 1994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필자의 특종 보도대로 시구를 했다. 이는 큰 뉴스는 아니었지만 건국후 대통령 동정으로 특종 기사를 작성한 최초의 사례로 기록됐다(스포츠조선 특종 1급 수상). 대통령 동정을 사전에 보도하는 것은 대통령 경호법에 어긋나지만, 스포츠 관련인데다 필자가 YS의 고교 후배란 점이 청와대내에서 좋게 받아들여져 ‘없던 일’로 조용히 넘어갔다.

4.조폭 벌(罰)을 선 이해창과 장명부=원년 MBC 청룡 멤버인 이해창은 필자와 같은 1953년생이어서 친구처럼 지냈다. 1994년 가을 어느날 오후, 서로 만나기로 했는데 이해창이 대뜸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르네상스호텔 커피숍으로 오라고 한다. 가보니 1983년 시즌 30승의 ‘너구리’ 장명부(1950~2005)와 함께 있질 않는가. 사연을 들어보니, 당시 두사람은 강남의 조폭 두목에게 돈을 빌렸는데 갚을 능력이 안됐다고 한다. 애초부터 이 두사람에게서 원금받을 생각이 없었던 조폭은 장난끼가 발동해 돈 대신 벌을 세웠는데, 그게 르네상스 호텔 커피숍에 한달간 매일 오후 3~4시에 나가 ‘출석부’를 찍으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당시 두사람의 민망한 표정에 배를 잡고 웃은바 있다^^

5.실업야구 감독의 투타 대결=1973년, 실업야구 홈런왕 출신의 한전 박영길(프로 원년 롯데 감독)과 한일은행 에이스 김호중은 감독겸 선수로 활동했다. 그해 추계리그에서 두팀이 붙었는데, 한일은 선발투수는 김감독이었다. 한전이 4회인가 득점 찬스를 맞이하자 박감독이 작전 타임을 부르며 스스로 대타로 나섰다. 하지만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나 매우 보기드문 감독의 투타 대결은 싱겁게 끝났다(필자 직접 관전).

6.완봉에 결승홈런친 황규봉=1970년대 초반 경북고 전성기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황규봉(1953~2016)은 필자와 나이가 같고 같은 대학 출신이라 친구처럼 지냈다. 1973년 가을 대학야구 추계리그, 상대팀은 알수 없는데 고려대 신입생 황규봉이 선발로 나서 눈부신 피칭을 이어갔다. 그리고 7회인가 솔로 홈런을 날려 ‘1대0 완봉승에 결승포’까지 날린, 아마추어 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바 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아직 한번도 달성되지 않은 대기록이며 ‘2도류’인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도 일본 프로-아마야구 포함, 현재까지 이 기록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필자 직관).

7.명심판 김동엽감독=새빨간 장갑을 끼고 독특한 제스처와 쇼맨십으로 관중을 사로잡았던 초대 해태 타이거즈 감독인 김동엽(1938~1997). 그는 12번 잘리고 13번이나 다시 지휘봉을 잡은, 아마추어-프로 감독을 두루 지낸 풍운아였다. 첫 사령탑인 건국대 감독 이전에는 아마추어 심판을 맡았었는데, 1968년 여름 부산 구덕구장에서 열린 화랑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어느 경기인가는 모르지만 1루심을 봤다. 보통 심판들은 내야 땅볼로 타자, 주자가 아웃되면 그냥 “아웃~!”하고 말았는데 김동엽씨는 “유~얼~아웃!”이라고 유창한 영어 발음을 우렁찬 목소리로 구사해 관중들의 웃음과 환호를 이끌어냈다(필자 직관).

8.야간 훈련으로 성장한 허구연 총재=필자의 경남중고 2년 선배인 KBO 허구연 총재는 1968년 경남고 2년 시절 대형 2루수로 촉망을 받았다. 그해 가을, 필자는 경남고 근처에 있던 대신중학교의 수학 선생님으로부터 과외를 받았다. 그런 어느날 선생님이 야간당직이어서 대신중 교장실에서 과외를 받았다. 초저녁 무렵 공부를 마치고 교정을 나오는데 누가 어둑어둑한 교정에서 스윙 연습을 하고 있질 않은가. ‘야구광’이었던 필자는 당시 경남고 선수들 신상을 꿰뚫고 있어, 대번에 그가 ‘허구연’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1972년 고려대 입학해서는 대학야구 홈런왕을 지낼 정도로 거포였는데, 1978년 서울에서 열린 한일 실업팀 올스타전에서 무릎부상을 당해 아쉽게 은퇴한바 있다.

9. 야구감독, 선수의 부부싸움=1985년 겨울, 필자는 인천 연안부두 근처의 아파트에 살았는데 윗층에 고교후배인 청보 핀토스 외야수 B가 살고 있었다. 당시 12월에는 지금처럼 비활동기간이 아니어서 선수들이 마무리 훈련을 했었다. 훈련 마치고는 끼리끼리 늦게까지 한잔씩을 하곤 했다. 그런데 B는 허구한 날, 술을 마시고 자정을 넘겨 귀가하니 드디어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싸움 끝에 화가난 부인이 냄비를 창밖으로 던져, 아래층의 필자가 알게 되었다. B뿐 아니라 야구 선수와 감독, 코치들은 비시즌때 밤엔 한잔을 하더라도 낮엔 집에 있기 일쑤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해태 전성기 우승 신화를 남긴 ‘코끼리’ 김응용감독이다. 등산말고는 별다른 취미가 없던 김감독은 아침 등산후 하루종일 집에서 지내는 날이 많았다. 덩치가 남산만한 사람이 집에 우두커니 있으니 자연스레 부부싸움이 잦았다고 한다. 서로 화를 내며 주고받는 시끄러운 소리가 옆집의 필자 대학후배 귀에까지 들려, 결국 나에게까지 전해지고 말았다.

2026년 4월 18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 만원 관중이 응원하고 있다./마이데일리

10. ‘태양을 던진 투수’ 장태영=장태영씨(1929~1999)는 경남중(6년제) 시절인 1946~1948년 청룡기 2연패, 황금사자기 3연패를 이끈 해방후 최초의 슈퍼 에이스(좌완)였다. 통산 32승1패는 지금까지도 ‘무적 신화’로 남아 있다. 투수 이전, 한국야구 사상 최초의 ‘왼손잡이’ 유격수로 빼어난 야구 감각을 자랑하기도 했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공부하는 운동선수’의 표본으로 후배 선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실업팀 상업은행 감독으로 지도자로서도 명성을 남겼다. 장감독님은 나중 필자의 사돈어른이 돼 ‘야구인 집안’이 된게 늘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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