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긴급전화 상담노동자들이 ‘쉴 권리’를 말하다

박주연 2026. 5. 4.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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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1366 상담원들의 투쟁 조명하는 자리 마련

여성긴급전화 1366은 가정폭력, 성폭력, 스토킹, 성매매, 교제폭력 등으로 위기에 처한 여성들을 위해 365일 24시간 운영되는 긴급 상담 및 보호 서비스다. 긴급 피난처 제공, 의료 및 법률 연계, 112나 119 연계 등 초기 지원을 한다. 성평등가족부의 안내에 따르면, 1366은 전국 17개 시·도에 설치에 되어 있고, 서울·경기엔 1개소 추가되어 2곳이 운영 중이다.

사실 이런 개괄적인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1366은 단지 또 하나의 콜센터가 아니라, 1980년대부터 이어져 온 여성운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스토킹 등 위기 상황에 처한 여성들이 24시간 전화로 도움 요청할 수 있는, 피해자의 보루이기도 하다.

바로 그 1366의 상담원들이 투쟁을 하고 있다. 온전히 휴식을 취할 수 없는 고강도 노동과 고용 불안 문제를 해소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상담노동자의 노동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결국 젠더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1366 체계를 지켜내는 것이라고 목소리 높이고 있다.

지난 4월 22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의 월례토론회 “상담 노동자 소진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 여성긴급전화1366서울센터분회의 투쟁”이 온라인 줌으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여성긴급전화1366 서울센터분회 박은영 분회장과 A사무장이 자신들의 투쟁 이유와 상황을 밝혔다.

▲ “살인적인 근무표 개선하라”, “인력공백 문제 해결하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여성긴급전화1366 서울센터분회의 39차 선전전 모습 (출처: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여성운동의 결실이자, 젠더폭력에 대한 국가 책무인 1366

박은영 분회장은 여성긴급전화 1366의 의의와 역사를 설명했다.

“여성운동은 가정폭력과 성폭력 등을 사적인 문제로 치부하던 사회적 인식을 깨고, 이를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할 명백한 인권침해로 규정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97년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되었고, 1998년 보건복지부가 전국 16개 광역시·도에 24시간 위기전화 ‘여성1366’을 개통하면서 제도의 닻을 올렸다.”

설립 초기 1366은 예산부족과 낮은 인지도, 자원봉사자에게 의존해야 하는 등 한계가 컸다. 박 분회장은 “여성단체들이 1366이 단순한 상담에 머물지 않고 긴급구호와 의료·법률·보호시설 연계가 가능한 실질적 체계로 작동해야 한다고 끈질기게 요구”했고, 그 결과 “서울센터의 경우 2001년 여성가족부의 지정으로 전담 직원 9명이 배치되며 3교대 근무와 긴급피난처 운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4년부터는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운영을 위탁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운동의 역사가 새겨진 1366은 오늘날 “젠더폭력 대응의 핵심 거점이자 가장 기민한 감지기”이다. 박은영 분회장은 “2024년 기준, 전국 19개 센터의 총 상담 건수는 약 29만 건에 달하며, 그중 1366 서울센터 한 곳이 전체의 10%가 넘는 3만1천여 건을 감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토킹, 딥페이크, 디지털 성범죄 등 새로운 형태의 폭력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의 정책홍보나 언론기사 하단에는 ‘1366으로 연락하라’는 문구가 들어간다.”는 말도 덧붙였다.

 

살인적인 3교대 스케줄로 수면장애 시달리는 상담원들

이렇게 피해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1366이지만, 정작 그 전화를 받는 상담노동자들의 삶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여성긴급전화1366 서울센터분회 A사무장은 “핵심적인 문제는 ‘주간-오후-야간-휴무(오프)’로 이어지는 살인적인 3교대 스케줄”이라 짚었다.

사무장의 설명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한 달에 무려 7~8번의 야간 근무(밤샘 근무)를 소화해야 한다. 명목상 ‘오프(휴무)’라고 불리는 날조차 사실 온전한 휴일이 아니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퇴근해 자지 못한 잠을 몰아서 자는 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1366 노동자들의 삶은 ‘매일 출근하고 하루 걸러 잔다’는 참담한 문장으로 요약된다”는 것. (관련 기사: 여성상담 노동자, 3교대 ‘오프’가 쉬는 날인가요? https://ildaro.com/10358)

이러한 노동 패턴은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상담원들은 불면증과 수면장애는 물론, 방광염이나 허리디스크 같은 신체적 질환에 일상적으로 시달리고 있다”. 특히 괴로운 건 야간 시간대에 일할 때라고 A사무장은 설명했다. “야간 시간대에는 자살충동이나 극심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고위험군 내담자의 전화가 쏟아지는데, 수면 부족으로 인해 인지 저하와 몽롱한 상태를 겪는 상담노동자들은 내담자에게 최선의 지원을 하지 못한다는 자책감과 대리외상에 시달린다.”

또한 몸과 마음의 건강이 위협받아도 ‘쉴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1366 서울센터에는 유급 병가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수술이나 입원이 필요한 노동자는 개인 연차를 모두 소진한 뒤 무급 병가를 써야만 하는 실정”이라는 것. 박은영 분회장은 “상담노동자 대다수가 40~50대의 여성이며 교대 근무의 특성상 질병 노출 위험이 매우 높음에도, 최소한의 건강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2025년 12월 10일 성평등가족부 앞에서 〈여성긴급전화1366서울센터 상담노동자 인권침해 및 인력공백 해결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주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떠나는 상담노동자들…1년 계약직 고용으로 불안감 가중돼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직장 내 괴롭힘, CCTV 감시 등의 문제도 계속 제기”되고 있어 인력 이탈도 상시적이다. A사무장은 “1366 서울센터에서는 2020년부터 2024년 사이 연평균 퇴사자가 정원 대비 절반에 이를 정도로 이직률이 높았으며, 2025년 한 해에만 상담사 채용 공고가 20차례 넘게 올라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사측은 인력 공백의 근본적 원인인 처우 개선은 외면한 채, 상담원들을 1년 단위 계약직으로 고용하며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은영 분회장은 “더욱 심각한 부분은 사측이 업무 평가를 노동자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꼽았다. “1366 서울센터는 평가 지표나 개인의 평가 결과를 철저히 비공개로 부치고 있다. 계약 연장 시기가 다가오면 사측은 직무 능력이나 전문성과 무관하게 ‘다른 직원들과 조화롭지 못하다’는 등 자의적이고 추상적인 이유를 들어 낮은 평가 점수를 통보하고 사실상 사직을 종용하는 일이 벌어졌다.” 노동자들은 “부당한 환경에 문제 제기를 하는 직원들을 솎아내기 위한 인사권 남용이자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통제는 노동자들에게 고용불안으로 작동하고, ‘계약직 상담원들은 계약 만료의 두려움 때문에 아파도 병가조차 당당하게 요구하지 못하고 침묵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박 분회장은 설명했다.

그리고 “정부가 젠더폭력 대책의 핵심기구로 1366을 내세우지만, 정작 실무를 위탁받은 기관에 대한 관리·감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방치되어 온 결과”라며 “성평등가족부와 지자체에서 책임을 갖고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폭력 지원체계, 국가가 외주화하고 방임하는가?

상담 현장의 소진과 이직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젠더폭력 피해자를 온전히 지원하는 일이 가능할까. 1366 서울센터 상담노동자 6명은 작년 3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1366 서울센터분회를 결성하며 직접행동에 나섰다. 노조는 12차례의 단체교섭과 2차례의 지방노동위원회 조정을 거쳐 작년 12월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했다. 그리고 올해 4월 23일 제19차 교섭을 이어가는 중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대우가 아니다. 365일 24시간 위기 대응을 지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 조건이다. 4대 핵심 요구안은 다음과 같다.

-투 오프(Two-Off):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이틀 연속으로 쉴 수 있는 제대로 된 휴일 보장.

-대체휴무: 공휴일과 오프(야간 근무 후 수면 시간)가 겹칠 경우 대체 휴무 지급.

-고용안정: 1년 단위 계약을 멈추고, 위탁 기간과 동일하게 근로계약 기간 보장.

-노동조합 인정: 타임오프(근로시간 면제제도) 보장 등 정당한 노조 활동 보장

박은영 분회장은 “노조는 매주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서울여성플라자 내부에서 선전전을 펼치며 단체협약 체결을 위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며 시민들의 관심을 부탁했다.

1366상담 노동자들의 투쟁은 “국가가 외주화하고 방치해 온 여성폭력 지원체계”에 대한 책임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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