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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옴므플러스 2026. 5. 4.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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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은 사진가다. 별을 찍는 사진가. 하늘의 별이 아닌 대중매체 속 수많은 스타들을 찍는다. 근 20년 동안 그는 잡지는 물론, 영화와 드라마 포스터, 광고 속 스타의 모습을 담아왔다. 그런 그가 사진전을 연다. 한국과 일본의 스타를 자기만의 뷰파인더로 바라봤다. 그는 뷰파인더 속에서 자신과 교감하는 인물의 모습에 짜릿함을 느낀다고 했다. 이번 전시회는 그 짜릿함을 자신만 느끼기 아까워서 풀어낸 결과다.

전시 축하한다. 이번 전시가 첫 개인전인가?
완전한 개인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다.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와 함께하는 전시니까.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첫 사진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전에는 단체전에만 참여했다.

그러고 보면 단체전은 여러 번 있었겠다.
잡지사에서 진행한 전시에 참여한 적도 있었고, 일본에서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고 5년쯤 지나서 아티스트들의 사진을 전시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참여했다. 전시마다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말 그대로 단체전에 참여했다는 의미다.

이번 사진전은 언제부터 구상한 건가?
구상은 꽤 오래전부터 했다. 30대 후반쯤? 마흔 살이 됐을 때 뭘 좀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막연하게 품고 있던 게 포트레이트 사진전이었다. 함께하게 된 유니와 다른 작업을 같이해보자고 얘기하다가, 내 사진전에 유니의 아트워크가 들어가면 정말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안했더니 유니가 좋다고 해서 함께 전시회를 준비하게 됐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1년 8개월 전쯤이었다.

요시다 유니와 함께한 점이 독특하다.  
요시다 유니는 일본에서 굉장히 유명한 아트 디렉터다. 유니가 내 사진을 좋아하고, 나도 유니의 작업을 알고 있었다. 서로 지인이 겹쳐서 밥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다가 처음에는 가볍게 협업을 해볼까 정도였다. 그러다 어차피 전시회를 열어보고 싶었으니까 아예 같이 전시해보자고 한 거다.

요시다 유니는 이번 전시에서 어떤 역할을 했나?
포트레이트를 찍을 때 꽃을 이용했는데, 그 꽃 작업을 전부 유니가 했다. 꽃으로 나비를 만들고 풀로 갑옷을 만드는 식으로 비주얼 아트워크를 구현했다. 단순히 꽃을 놓는 게 아니라 꽃 자체를 새로운 형태로 만드는 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처음부터 꽃과 자연 소재와 함께하는 식으로 사진 콘셉트를 잡았나?
초반에는 훨씬 더 광범위하게 열어뒀다. 그런데 방향이 너무 넓어지기도 하고, 자연 소재를 이용해 사람과 함께 찍었을 때 훨씬 느낌이 좋더라. 사실 꽃 아이디어는 내가 먼저 제안했다. 우리가 흔히 연예인을 꽃처럼 보잖나. 그래서 꽃을 놓고 그 안에서 사람을 찍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꽃 없이 먼저 찍은 사람들을 다시 촬영했다. 초반에는 시행착오가 있었다. 결국 내가 원한 건 사람과 자연스러운 것이 맞붙는 느낌이었다. 인물 사진에 인공적인 소재를 넣고 싶지 않았고, 자연스럽고 본질적인 부분을 담으려 했다.

일반적인 포트레이트 전시와 차별점을 두고 싶었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맞다. 처음 사진전을 구상할 때는 그냥 인물 자체에 집중해서 찍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솔직히 나도 인물 사진전을 좋아해서 보러 가지만, 볼 만한 요소가 적다고 느낀 경우가 많았다. 인물에게 더 집중하게 해줄 오브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 지점에서 유니와의 협업이 맞아떨어졌다.

일본 아티스트와 협업한 만큼 한국 배우와 일본 배우의 구성에도 의미가 있나?
특별히 숫자에는 상징적 의미가 없다. 처음에는 한국 배우 20명, 일본 배우 10명 정도로 계획했다. 그런데 초반에 찍고 보니 금세 한국 배우가 20명을 넘어갔다. 찍고 싶은 배우들이 계속 생기더라.

그 많은 배우들 일정 조율하는 게 가장 큰일이었겠다.
배우들 일정을 맞추는 게 워낙 어려우니까 유니가 한국에 들어와 있을 때 몰아서 찍어야 했다. 유니가 4박 5일 한국에 오면 친한 배우나 엔터테인먼트 관계자에게 부탁해 일정을 조절해 찍다 보니 인원이 금세 늘었다. 엔터테인먼트 쪽에서도 이 배우 좋아하잖아, 하면서 제안하기도 하고. 또 1년 10개월 동안 찍다 보니, 다른 매체 작업을 하다가 전시 얘기하며 섭외한 배우도 있었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10명을 생각했지만 일본 쪽에서도 참여하고 싶어 하는 아티스트들이 늘었다. 미야자와 리에 같은 레전드 배우들을 좋아하니까 섭외되면 또 욕심이 생기더라. 그렇게 하다 보니 결국 62명까지 갔다. 아마 2년을 꽉 채워 찍었으면 80명 정도는 찍었을 거다. 하지만 전시장을 먼저 잡아놔서 마무리해야 했다. 안 그러면 끝이 없으니까.

역시 마감 일정이 끝을 정한다.
원래 한국에서 전시를 열려고 알아보던 중에 일본 전시장이 먼저 잡혔다. 일본 전시장 날짜가 나오고, 그전으로 한국 전시를 하려니 일정이 너무 빡빡하더라. 그래서 한국 전시를 뒤로 잡고, 이제 그만 찍자고 멈췄다.

처음에 전시 얘기를 들었을 때 그동안의 작업을 정리하는 의미로 여겼다. 듣다 보니 새로운 프로젝트로 더 나아가는 느낌이 든다.
맞다. 사실 사진전 제의는 여러 번 받았다. 그동안 한류 콘텐츠를 많이 찍었으니까 이미 찍어놓은 사진들로 전시하자는 제안은 꽤 있었다. 그런데 그 사진은 검색하면 다 나오잖나. 물론 내가 열심히 찍은 사진들이니까 정리해서 큰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 자체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의미와 흥미는 다르다. 의미는 있지만 내가 흥미를 느끼진 못했다. 이미 찍어놓은 것보다 새로 찍고 싶다는 생각이 훨씬 컸다. 이 전시를 준비하기 전에 (이)병헌이 형이랑 헤어·메이크업도 거의 안 하고 머리만 적셔서 포트레이트 한 장 찍은 적이 있다. 그때부터 시작해보려고 했는데 너무 바빠서 새로 찍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유니라는 아트 디렉터가 붙으니까 일정을 빼서라도 찍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요시다 유니라는 존재가 비주얼 작업뿐 아니라 프로젝트를 가속화한 동력 역할도 했나 보다.
유니가 없었으면 아마 바쁘다는 이유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못했을 거다.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고, 함께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책임감이 생겼다. 그렇게 촬영한 배우가 20명을 넘어가는 순간, 이제 포기하면 안 되는 프로젝트가 돼버렸다. 원래 10명 정도 찍었을 때는 일본 진출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느라 무척 바빴다. 정신없는 와중에 배우 스케줄까지 잡아야 하니까 압박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일본에서 유니를 만났을 때 다음엔 누구 찍느냐고 계속 물어보더라. 유니가 4박 5일 일정으로 한국에 오면 하루에 서너 명씩 몰아서 촬영했다. 그렇게 20명을 넘기니 돌이킬 수 없는 작업이 됐다.

최종 인원 구성은 어떻게 됐나?
한국 배우 45명, 일본 배우 17명이다. 시간이 더 있으면 일본 쪽 배우도 더 늘었을 거다. 숫자 자체보다 어디서 마무리할 것인가가 중요했다.

어떤 기준으로 배우들을 섭외했나?
결국 흥미로운 사람들이었다. 꽃과 자연 소재 안에 이 배우가 들어가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한 사람들. 다만 사진에 지나치게 멋을 부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주 정직하게, 인물이 딱 보이게 찍었다.

예전에 살짝 보여준 전시 사진은 검은 배경에 인물과 오브제가 선명하게 보이는, 굉장히 간결한 사진이었다. 쭉 그렇게 촬영했나?
굉장히 심플하다. 누군가는 심심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반대로 심심해서 강렬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거다. 처음에는 꽃이라는 오브제가 들어가니까 평소에 안 하던 센 톤이나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넣어볼까 고민하기도 했다. 찍어보니까 결국 인물이 잘 보이는 게 가장 좋더라. 이번 전시의 주제가 'Face to Face', 즉 대면이다. 사람들이 내가 좋아해서 촬영한 배우들의 얼굴을 천천히, 오래 보도록 하는 게 첫 번째 목표였다. 그래서 분위기보다 딱 보자마자 이 사람이 눈에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말 이 배우를 대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했다.  

결국 포트레이트의 본질은 인물이니까.
나중에는 조금 더 통일감을 줄 걸 그랬나, 하고 잠깐 고민했지만 지금도 후회는 없다. 다시 찍으라고 해도 결국 내가 잘하는, 인물이 잘 보이는 포트레이트를 찍을 거다.

아트 디렉터의 아트워크와 인물의 균형을 맞추는 작업도 쉽지 않았겠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유니도 전시용 포트레이트 작업은 처음이었고, 나도 욕심이 있었으니까 아트워크가 인물을 덮치는 순간이 있었다. 우린 결국 인물을 보려고 찍는 거니까 아트워크가 인물과 조화를 이뤄 더 오래 보게 하는 사진을 만들자고 얘기했다. 유니도 바로 이해해줘서 이후에는 아트워크도 점점 간결해졌다. 꽃으로 새를, 나비를, 거미를, 반지를 만들어보자며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으면서 호흡을 맞춰나갔다.

이렇게 대규모로 배우들을 새로 촬영해 보여주는 작업은 흔치 않다.
영화제가 주체가 돼 포트레이트 전시를 한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아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촬영하고 전시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더라. 그런 면에서 의미가 크다.

이 프로젝트는 무엇보다 오랫동안 배우를 촬영해온 사진가 김영준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듯하다. 경력도, 관계도 있어야 가능하니까.
그래도 내가 그동안 관계를 잘 쌓아온 편이다. 이 전시를 한다고 했을 때 엔터테인먼트 관계자와 배우분들이 많이 응원해줬다. 다들 쉬는 날 하루를 내서 촬영하러 온 거다. 드라마 촬영 중인데도 와줬고, 일정을 억지로 빼서 와준 친구들도 있었다. 특히 전시 도록 때문에 촬영을 마감해야 했는데, 송혜교 배우를 꼭 찍고 싶었다. 혜교 씨가 그때 서울에 없었고 드라마 촬영 때문에 너무 바빴는데, 결국 일정을 빼서 와줬다. 컨디션도 안 좋았는데 웃으면서 잘해줬다. 그런 순간들을 겪으면서 내가 18년 동안 열심히 살았구나 싶었다.

이전에 해보지 않은 작업이라 촬영하면서 새로 느낀 점도 있겠다.
멋을 덜 내고 찍으니까 촬영할 때 사람 대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이 사람에게 뭔가 억지로 만들고 싶지 않더라. 그래서 촬영도 빨리 끝났다. 원래도 빠르게 찍는 편이지만, 이번에는 더 그랬다. 이 사람에게 뭔가 요구하지 않았을 때 나오는 느낌을 담고 싶었다. 보통 패션잡지 촬영에선 지금 이런 공간, 이런 무드, 이런 포즈로 이렇게 표현해주세요, 하고 설명하잖나. 이번에는 아트워크에 대해 설명만 했다. 대중은 당신을 꽃처럼 보지만 난 그 안에 진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꽃과 함께 촬영해 그 안의 당신을 보여주려 한다, 이렇게. 의미를 설명해주고 그냥 서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상대가 촬영 포인트에 딱 섰을 때, 아트워크가 자신에게 왔을 때 느끼는 감정 있잖나. 그 느낌을 담으려 했다. 그래서인지 촬영 시작하고 처음 15~20컷이 좋았다. 각자 그 의미를 자기 방식대로 받아들였다.

어떤 표정을 많이 담았나?
신기하게 웃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난 그게 자연스럽다고 느꼈다. 웃음은 진짜 웃을 일이 있어야 나오잖나. 사진 찍을 때 제일 민망한 말이 웃어주세요 아닐까. 상업 사진은 필요한 장면이 있고, 그걸 아니까 해준다. 이번에는 상업적인 사진이 아니니 자유롭게 뒀다. 처음 시작할 땐 대체로 무표정으로 있다. 그 무표정에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난 그 사람의 본질적인 시작점을 보고 싶었다.  

촬영하면서 배우의 아주 미세한 감정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겠다.
오브제와 함께 있을 때 배우마다 조금씩 다른 감정과 표정을 내놓는데, 그 미묘한 차이가 너무 재밌었다. 내가 이래서 배우를 좋아하지, 하고 다시 생각했다. 예전부터 피처 인터뷰 촬영을 좋아한 이유다. 배우들이 내 카메라 뷰파인더 안에서 나한테만 보여주는 미세한 변화, 그 작은 순간들에 엄청 매료됐다. 어떻게 보면 나만 보는 무성영화 같은 느낌이거든. 이번 작업을 하면서 그 감각을 다시 확인했다.

결국 이번 전시는 사진 찍는 본질적인 즐거움을 다시 자극한 작업이었겠다.
그 즐거움을 느낀 점은 정말 좋았다. 엄청 힘들었지만. 일정 조율이 너무 어려웠고, 전시 준비하면서도 힘들었다. 처음이라 모르는 게 많았다. 지금은 전시를 앞둔 설렘보다 걱정이 더 많다. 전시가 잘되면 좋겠고, 사람들이 내가 의도한 방향을 어느 정도 읽어주면 좋겠다. 물론 모두가 좋아할 수는 없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래도 반 이상은 좋아해주면 좋겠다. 그래야 함께한 분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차릴 수 있다.

처음 구상 때보다 규모가 꽤 커진 느낌이다.
엄청 달라졌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캐주얼하게, 사진도 러프하게 걸어놓고, 음악 틀어놓고 2주 정도 가볍게 전시하면 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 유명 갤러리에서 한 달, 한국 DDP에서 한 달씩 전시하게 됐으니까 규모가 너무 커졌다. 부담이 커져서 오히려 즐기지 못한다. 62명의 배우가 함께해 만든 결과물이니까. 캐스팅은 좋은데 감독이 잘못 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되잖나.

한국과 일본에서 전시 방식은 비슷한가.
다르게 구성했다. 일본은 클래식한 액자 전시, 프린트 전시에 가깝다. 한국은 좀 더 다르게 하려고 한다. 한 층에는 62명의 사진을 디귿 자 구조로 쫙 보여주고, 내려가면 미디어 전시를 보여주려 한다. 디스플레이 12개에 사진이 계속 돌고, 라이트 박스도 만들고, 다크룸에서는 AI로 사진이 살짝 움직이게 하는 방식도 구상 중이다. 일본에서 정적인 전시를 하니까 한국은 좀 더 젊고 동시대적인 방식으로 풀어보자고 유니와 이야기했다. 사진 크기도 한국은 110cm 정도로 통일했는데, 공간이 허락하면 140cm까지 키우고 싶다. 62명 사진이 쫙 붙어 있으면 압도감이 있으니까. 일본은 그보다 조금 더 작은 사진과 큰 사진이 섞이는 형태다. 사진이 같더라도 한국과 일본의 전시가 달라 보이게 하려고 했다. 일본 전시를 관람한 사람이 한국에 와서 봐도 다르게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이번 전시를 잘 마치고 나면 다음 전시 프로젝트로 이어가도 좋겠다.
이번 배우 특집이 1차고, 2차는 뮤지션 특집으로 구성하려고 한다. 사실 처음엔 배우와 뮤지션을 같이 찍으려고 했다. 그런데 배우 숫자가 너무 늘어서 뮤지션은 다음 프로젝트로 미뤘다. 뮤지션 전시도 한국과 일본 비율은 반반으로 갈 생각이다. 오브제로 자연 소재를 계속 쓸지, 아니면 버려진 것들을 다시 가져오는 방식으로 갈지 아직 유니와 이야기하는 중이다. 뮤지션은 너무 많은 인원으로 구성하고 싶진 않다. 10팀, 많으면 15팀 정도. 숫자보다 정말 찍고 싶은 팀을 찍는 게 더 중요하다. 이적 형, 혁오, 조용필 선생님 같은 분들에 대한 궁금증이 있다. 그런 분들을 섭외할 수 있다면 정말 흥미로운 작업이 될 거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시스템을 알게 돼서 다음에는 더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한국, 일본을 넘어 해외 순회 전시로 확장할 수 있겠다.  
처음부터 한국과 일본 전시가 끝나면 다른 나라에서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한일 전시가 확정되니까 그다음 단계를 고민하게 되더라. 지금 홍콩이나 태국을 알아보고 있다. K-콘텐츠에 대한 관심이 해외에서 워낙 많다 보니 반응이 있다. 전시가 성공해야 기부를 많이 할 수 있다.

아, 기부!
잘돼야 하는 이유다. 많이 벌어야 많이 기부할 수 있거든. 이 프로젝트가 흥행하면 나와 유니 그리고 62명의 배우 이름으로 기부할 계획이다. 기부금이 많을수록 더 뿌듯할 거다. 사진을 판매하는 전시가 아니고, 굿즈도 많지 않다. 가방 몇 개랑 유니가 만든 일부 굿즈 정도라 결국 입장 수익이 중요하다.

이번 전시가 사진가로서 방향성에도 중요한 지점이 될 수 있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AI로는 보여줄 수 없는 매력이 있음을 알리고 싶다. 핵심은 결국 사람이다. 요즘은 AI로도 아트워크를 만들 수 있겠지만 유니의 작업은 다 손으로 하는 거고, 한 사람의 미묘한 순간을 기록하는 건 여전히 인간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AI를 부정적으로 보진 않는다. 창작을 도와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앞서 사진 작업을 계속하는 동력이 흥미라고 했다. 그 흥미를 느낀 시간이기도 했겠다.
맞다. 난 흥미가 없으면 못할 거 같다. 사진 작업은 돈도 중요하지만, 흥미가 훨씬 크게 작용한다. 코로나 팬데믹 때 사진 작업이 전부 일처럼 느껴져서 힘들었다. 매일 같은 스튜디오에서 큰 변주 없이 찍어야 했다. 패션계도 힘들었고, 사회 분위기도 완전히 달랐다. 그러다 보니 원래 내게 동력이 되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촬영들'이 사라져 힘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시기에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일본 진출도 결정한 거다.

일본 진출 얘기를 들었을 때 놀랐다. 성공한 사진가가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도전해야 하니까. 그것도 결국 흥미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나?
전부터 일본 에이전시와 계약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팬데믹 이후에 더 강하게 마음먹고 무조건 해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원래 일본이라는 나라를 좋아해 쉬러 자주 갔다. 일본에 진출하며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많이 봤다. 일본에서 촬영하는 기간에는 한국 일정을 못 잡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돈을 쓰기만 했으니까. 내가 원해서 가는 거니 항공부터 호텔 비용까지 다 내가 내야 했다. 그 대신 얻은 게 많았다. 4년 동안 꾸준히 오가니까 일본에서도 조금씩 반응이 왔다. 처음엔 K-콘텐츠에 대한 호기심으로 날 불렀다면, 3년 차부터는 그래도 일본에서 활동하는 사진가로 조금씩 인식해주더라. 날 모르는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촬영하는 기분이 정말 묘했다.

일본에서 활동한 시간은 다시 신인처럼 일하며 감각을 키우는 기간이었겠다.
그게 재밌었다. 한국에서는 김영준은 이럴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잖나. 그런데 일본에선 아무 정보 없이 내 포트폴리오만 보고 판단하니까. 사진 그 자체만으로 좋아해주는 반응을 오랜만에 느꼈다. 신인 때 듣던 사진 좋다는 칭찬을 40대 중반에 다시 들으니 너무 좋더라. 그런 면에서 일본 진출은 정말 잘한 선택이다.

언젠가 사진 찍는 게 좋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오히려 사진을 더 좋아하게 됐나?
맞다. 오히려 더 좋아졌다. 젊을 때는 사진 찍는다는 허세도 있었다. 또 빨리 잘된 편이니까. 한때는 내가 원래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어느 시기에 일이 너무 많아지면서 내 사진이 무너지는 게 보이더라. 빨리 찍고, 관성으로 찍고, 다음 장이 궁금하지 않은 사진으로 변해 있었다. 그때 한 매체 편집장님이 날 불러서 내 사진이 요즘 별로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 말이 무척 고마웠다. 내 사진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충격받아서 3일 동안 밤새워 외국 사진 서적을 뜯어보다시피 했다. 그렇게 다시 공부하고 생각하면서 각성했다. 물론 그 후에도 바로 좋아지진 않았다. 그 시기에 사진 때문에 처음으로 괴로웠다. 그때까진 일이 바빠서 괴로웠지 내 사진 때문에 괴로운 적은 없었거든. 잘 찍고 싶은데 안 되니까 너무 괴로웠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결국 전시를 열기까지 꾸준히 활동하게 됐다.
  그 시간이 필요했다. 솔직히 그 3년 동안 수면제 없이 잠도 못 자고, 사람 대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때 일본 삿포로를 1년에 열다섯 번씩 다녔다. 일본 여행이 정신적 치유가 된 셈이다. 그 시간을 거치면서 내가 패션 사진가라기보다 인물을 좋아하는 사진가라고 생각했다. 물론 여전히 패션 사진을 찍고 흥미도 있다. 일본에선 다시 패션 사진 찍으며 활동한다. 그럼에도 사람을 찍는 방향으로 계속 확장하지 않을까 싶다.

오랫동안 활동하며 전시까지 열게 한 사진 찍는 즐거움은 뭔가?
사진 찍을 때 뷰파인더 속 인물의 모습은 나만 본 거잖나. 나와 교감해서 내가 기록한 사진이다. 그건 나밖에 없는 거다. 이 사람과 다시 못 만날 수도 있지만, 내가 그 사람과 만난 흔적을 내 프레임으로 남긴 거다. 그 쾌감이 제일 크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다시 느꼈다. 내가 이래서 사진을 좋아하지, 내가 이래서 인물을 찍는 사람이었지, 하면서.

유니도 전시용 포트레이트 작업은 처음이었고,
나도 욕심이 있었으니까 아트워크가 인물을 덮치는 순간이 있었다.
우린 결국 인물을 보려고 찍는 거니까  아트워크가 인물과 조화를 이뤄
더 오래 보게 하는 사진을 만들자고 얘기했다.

 포토그래퍼 김영준 ×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 
'Face to Face'

한국 사진가 김영준과 일본 아트 디텍터 요시다 유니가 함께해 사진전을 연다. 이병헌, 고현정, 오다기리 조, 미야자와 리에 등 한국과 일본의 쟁쟁한 배우 62명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요시다 유니는 꽃과 자연을 소재로 아트워크를 만들고, 김영준은 그 아트워크 속 배우의 순간을 포착했다. 사진전은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에 열린다. 일본 전시는 4월 29일부터 5월 28일까지 아자부다이 힐스 갤러리에서, 한국 전시는 5월 7일부터 6월 7일까지 동대문 DDP 이간수문전시장에서. 이번 전시회의 수익금은 참여한 작가와 배우들 이름으로 기부한다.

CREDIT INFO

Editor 김종훈
Photographer 조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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