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가곡 선구자 무대 ‘일송정’ 독립군 대신 중국 ‘동북항련 ’유적지로 공사중
독립군 대신 중국 지휘 하 연합 유격대 ‘동북항일연군’유적지화
상하이 임정청사, 하얼빈 안중근기념관 달리 연변 '하나의 중국' 추진
1910~1930년대 초반 한·중 항일운동 소외와 홀대 "우려 표명"

가곡 '선구자'의 무대인 '일송정' 등 1910~30년대 중국 북간도 한인 항일유적지들이 중국 중심의 유적지로 급속하게 재편되고 있다.

◇항일성지 일송정 내력
일송정은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 자치주 용정시에서 서쪽 방향으로 3km 지점인 비암산 정상에 솟은 정자 모양의 소나무를 지칭한다.
1920년대 은진중학교 등 용정지역의 각급 민족학교 학생들은 일송정에서 일제를 규탄하는 시 낭송을 하거나, 반일가를 제창했다. 연변인민출판사가 펴낸 '세월 속의 용정' 책자에는 "용정사람들은 일송정을 일제의 통치 밑에서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애국 지사들의 성스런 형상으로 찬미했다"고 기술돼 있다.
1909년 간도협약 이후 용정 지역에 진출한 일제는 일송정 일대가 항일 성지로 부상하자 일송정을 사격훈련 과녁으로 삼는가 하면, 쇠못을 박거나, 후춧가루 물을 나무에 뿌려 고사시켰다. 일송정의 소나무는 끝내 1938년 완전히 말라 죽었으며, 이후 50여 년 동안 방치됐다.
중국 용정, 연길시 일대 재중동포(조선족)들은 1991년 3월 13일 일송정 복원을 위해 소나무 한 그루를 식재한 것을 시작으로 수차례 소나무를 심었으나 모두 고사하고 말았다. 2002년 이후에는 연변 뿐 아니라 국내 인사들까지 참여하는 모금 활동을 벌여 40년생 적송을 심었지만 이 또한 말라죽고 말았다. 연변자치주 재중동포들은 2003년 3월 15일 또다시 온 민족의 염원을 담아 소나무를 심었는데, 다행히도 이 나무는 현재까지 푸르게 자라고 있다.

◇가곡 '선구자' 국민 애창곡
우리나라에서는 1933년 또는 1944년 작곡 발표된 것으로 알려진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의 가곡 선구자가 1963년 라디오 전파를 타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져 국민가곡, 항일가곡으로 애창됐다.
1963년 12월 30일, 서울 시민회관에서 열린 송년 음악회에서 바리톤 김학근이 독창으로 부른 것을 기독교방송국에서 녹음하여 '정든 우리 가곡'이라는 프로그램의 시그널 뮤직으로 7년 동안 사용, 널리 알려졌다. 그 후 오랫동안 '애국 가곡' 또는 '민족 가곡'으로 애창되었고, 또 음악 교과서에 수록되어 '국민 가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일송정은 중국 항일유적"
중국 북간도지역 한인 항일운동의 정신적 고향이자 독립운동의 성지로 추앙받던 일송정이 최근 동북항일연군의 유적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일송정 소나무와 정자가 위치한 정상 바로 밑에 위치한 표지석에는 '동북항련 유지 일송정'이라고 붉은색으로 새겨져 있다. 이는 동북항일연군의 유적지라는 의미다.
일송정 오르는 길 옆에는 '동북항일연군 곤고견지시기'라는 비문이 서 있다. 이 글은 '동북항일연군이 곤란하고 고통스러움을 버텨내던 시기'라는 의미로 동북항일연군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보인다.
1992년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일송정 한글탑 뒷편에는 중국 공산당의 상징물인 낫과 망치가 새겨져 있으며, 각종 역사구호가 새로 들어섰다.

◇1935년 창설 동북항일연군

동북항일연군은 세계 사회주의운동의 새로운 기운에 따라 식민지 반식민지에서의 반제국주의 민족통일전선이 강조되는 흐름을 반영, 1935년 중국공산당의 지도 아래 남만주에서 제1군부터 조직되었다.
동북항일연군은 동북항일연합군, 특히 중국인과 한인의 연합부대임을 의미한다. 동북항일연군에는 허형식을 비롯해 김일성, 김책, 최용건 등도 지휘자로 참여했다. 이들중 대부분은 1940년 일제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 우수리스크, 하바로프스크 등지로 이동, 동북항일연군교도려(옛 소련군 88국제연단)으로 편성됐다. 1945년 8월 9일소련군이 대일 선전포고를 함에 따라 만주와 북한으로 들어갔다.

◇연변 일대 중화 민족 강조
중국 전역에 산재한 한인 또는 한·중 항일 유적지는 지역마다 독특한 경향성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존재한 상하이나 진강, 항저우 등은 임정 중심의 각종 기념관을 통해 독립운동사를 가감없이 기술하거나 전시하고 있다.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가 대표적이다. 상하이 뿐 아니라 마지막 임정 청사가 있던 충칭에도 한인 중심, 임정에 무게를 둔 항일사를 보존하고 있다.
조선의용군(조선독립동맹)과 팔로군이 연합 작전을 펼쳤던 태항산 일대는 중·한 연대 투쟁에 중점을 두고 현장을 보존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적지가 조선의용대 화북지대가 머물던 태항산맥 연화산 일대로 이곳에서 산화한 윤세주, 진광화 열사의 초장지를 원형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 중국의 항일 혁명음악가로 명성을 날린 정율성이 활동하던 섭현 일대에도 정율성 옛집과 기념관을 조성해 기억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 의거지인 하얼빈도 의거 현장인 하얼빈 역 1번 플랫폼 바닥에 거사 표시를 해두었으며, 1번 플랫폼과 맞닿은 공간에 안중근의사기념관을 조성했다.
하지만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내의 한인 항일현장은 최근들어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관리 정책 하에서 항일사도 '하나의 중국'으로 재편되고 있다. 윤동주 시인 생가의 경우 '중국 조선족 유명시인'으로 바뀌었으며, 상가 앞 돌 안내판도 중문이 한글보다 앞에 새겨져 있다. 연변박물관의 전시물도 주덕해 동상 등이 사라지고 동북항일연군의 자료들로 가득차 있다.
김영주 역사저술가는 "중국 내 한인의 항일사에 대해 중국 정부의 방침이 지역과 공간에 따라 다르게 대응하고 있음을 중국 전역에서 엿볼 수 있다"면서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경우 소수민족 보다는 중국, 하나의 중국 우선주의가 앞서면서 다른 역사적 현장이 소홀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고 아쉬워했다.
중국 용정·하얼빈 / 이건상 기자 lgs@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