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5년차 히키코모리였다" 충격고백한 대표, 정부에 쓴소리... 과도한 기대 심지말라

이시은 2026. 5. 4.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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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6년 5월 4일 (월)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유승규 대표 / 안무서운 회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 방 안에 머물며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고립·은둔 청년'들. 최근 우리 청년들 사이에 고립·은둔 어려움이 크게 퍼지고 있습니다. 방 안에 갇혀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립·은둔 청년들을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어 가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은둔도 경력이 된다' 이렇게 말을 하면서 은둔 경력을 살려서 취업에 도전하는 '은둔고수 드래프트' 지명식도 성황리에 열었다고 하는데요. 이름부터 눈길이 가는 회사 대표십니다. '안무서운 회사'의 유승규 대표 모셨습니다. 대표님, 어서 오세요.

◇ 유승규 : 네, 안녕하세요. 과거에 저도 5년 동안 은둔 경험이 있었던 당사자이자 지금은 과거의 저 같은 어려움을 갖고 계신 분들을 돕는 안무서운 회사의 대표 유승규입니다.

◆ 박귀빈 : 어서 오십시오. 은둔 경력 5년 있으신. 왜냐하면 '은둔도 경력이 된다' 굉장히 발상의 전환이면서 실제로 은둔 고립 청년들에게 굉장히 이 말 한마디가 큰 힘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저도 이 표현이 '되게 좋은 표현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일단은 회사 이름이 굉장히 궁금합니다. '안무서운 회사'입니다. 그동안 많은 회사들이 좀 무섭긴 하죠. 그런데 이 안무서운 회사 이름을 지으시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 유승규 : '은둔'과 '고립'을 겪는다는 건 단순히 외출을 하지 못하는 상황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굉장히 광위적인 개념이라서, 본질적으로 들어가면 '관계 자본이 결핍된 상태'를 얘기하거든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우리는 누구나 고민을 얘기하잖아요? 무의식적으로 내가 이 시대와 맞지 않는 고민을 한다고 했을 때 '아 저 사람이라면 그래도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까'라는 기대감 같은 것을 가지고 우리는 누군가한테 털어놓는데, 그 사람들은 대부분 무섭지 않은 사람들인 것 같아요. 나를 비난하지 않을 것 같은. 그래서 결국에 이야기를 털어놔야 해결되는 문제고 그러면 일단 무섭지 않은 사람, 무섭지 않은 회사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름을 짓게 됐습니다.

◆ 박귀빈 : 어떤 말씀이신지 알 것 같아요. 만약에 사람으로 친다면 그 사람이 실제 그러지는 않더라도 그냥 느낌적으로 '저 사람은 좀 내 얘기를 안 들어줄 것 같아' 이런 느낌이 있을 수도 있고, 일반적인 회사 이름들도 다 뭐 그런 개념으로 짓진 않으니까. 아예 처음부터 회사 이름을 '안무서운 회사'라고 딱 지어놓으시고 '얼마든지 우리한테 와주세요. 다가와 주세요' 이런 의미가 있는 회사 이름이네요.

◇ 유승규 : 그렇죠. 그래서 실제로 은둔·고립 상태에 완전 만성화되신 분들에게 '방문'을 하기도 하고 '인식 개선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요. 어느 정도 외출이 가능한 분들을 위해서 '외래형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아예 같이 사는 '공동 생활 프로그램'도 운영합니다. 그래서 벌써 7년째 24시간 같이 살고 있어요.

◆ 박귀빈 : 아 그래요? 회사를 설립하신 지 7년이 됐군요. 그런 거예요?

◇ 유승규 : 회사는 7년이 되지 않았지만... 회사는 5년 차인데요. 이전에 이 일을 하던 일본의 회사가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당시의 거기가 거의 유일한 지원 단체였고, 저도 거기에 도움을 받아서 나왔거든요. 그 회사가 코로나 때 폐업을 하게 되면서 '한국에서 우리가 좀 이어가 보자'라는 생각으로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

◆ 박귀빈 : 그럼 실제 고립·은둔 청년들이 용기를 내서 이 안무서운 회사에 다가가게 되면 거기서 말씀하셨듯이 그러면 상담도 해주고, 실질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이라든가 취업에 연결할 수 있는 그런 루트도 다 마련이 돼 있는 거예요?

◇ 유승규 : 그렇게 완벽하게 돼 있으면 이 문제가 이미 해결될 수도 있는데, 지금은 어떤 지원 단체든 간에 대기자가 더 길 만큼 이 사회 문제가 굉장히 심각한 상태예요. 그래서 뭐 공공의 모 센터도 한 1800명 정도 담당하고 계시는데, 직원이 저희보다 훨씬 많죠? 한 4천 분이 지원을 하세요. 저희도 셰어하우스 대기자만 40분 되셔서 일단 저희가 뭐 무슨 엄청난... 다 완벽히 해결해 줍니다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단 현재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곳을 소개시켜 드리거나 아니면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저희가 하거나.

◆ 박귀빈 : 어찌 보면 가장 필요한, 완전히 그 초입인 거잖아요? 고립·은둔 청년들이 가장 먼저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에 계시는 것 같기도 하고. 거기서 그 청년들이 찾아오면 그 '청년들의 소통 창구'가 되어 주시는 역할인 것 같아요.

◇ 유승규 : 그렇죠. 그래서 들으시는 분들 중에 혹시 지인분들 중에 있을 수밖에 없어요. 요즘에는 굉장히 많기 때문에. 최소한 방금 제가 말씀드린 대기자에 희망을 좀 걸어보시면 어떨까 생각이 드는 게, 정말 많거든요. 대부분 '나만 이러고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계시지만 나와 보시면 동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 박귀빈 : 그러면 일단은 회사 얘기가 나왔으니까, 고립·은둔 청년들이 안무서운 회사에 좀 손을 내밀고 싶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 돼요?

◇ 유승규 : 일단 저희 '카카오톡 채널'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연락을 주시면 저희가 순차적으로 답장을 드리고 있습니다.

◆ 박귀빈 : 최근에 국내 최초로 '은둔고수 드래프트 지명식'이 열렸다고 합니다. 이게 뭔가요?

◇ 유승규 : 일단 두 개 다 어려워서 하나씩 설명드려야 될 것 같은데요. '은둔고수'는 저희가 양성하고 있는 '인재 양성 과정의 이름'입니다. 은둔을 경험한 분들의 인재 양성 과정인 거예요. 그래서 마치 삼국지의 제갈량 같은 인재를 떠올려보시면 나라가 위기에 있을 때 재야에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누군가가 와서 '좀 도와주십시오'. 되게 역발상적인 거거든요. 그래서 은둔하고 있는 상태가 쓸모없는 게 아니라, 그 경험을 가지고 다른 분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니 한번 좀 나와보시면 어떻겠냐라는 존중의 뉘앙스이기도 하고, 과거에 저도 제 '은둔 경험이 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 5년의 생활을 벗어나고 취업을 다시 시도하고 이럴 때 너무 막막하고 경력 단절이 된 거니까요. 오히려 더 포기하고 싶어졌는데, 그러면 '그것도 쓸모가 있을 순 없을까?'라는 간절함에서 브랜딩이 됐고요. 드래프트는 스포츠 계통에서 신인 선수 지명식이잖아요? 그래서 이걸 두 개 결합하면 '은둔을 경험한 분들이 도전할 수 있는 인력 채용 시장'이라고 해야 될까요? 우리들만의 그런 행사를 저희도 이번에 처음 한 150분 정도를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모시고, 관련된 좀 활로를 열어줄 수 있는 청년 센터나 상담센터, 유관 기관, 단체를 다 모셔서 좀 최대한 연결해 보려고 노력을 했었습니다.

◆ 박귀빈 : 그러면 이 자리에서 발탁된 청년들이 있겠네요?

◇ 유승규 : 있죠. 한 6분 정도 저희가 이번에 했었습니다.

◆ 박귀빈 : 그러면 이분들이 은둔 고수인 거예요?

◇ 유승규 : 일단 그걸 수료한 거죠.

◆ 박귀빈 : 그러면 이분들은 취업으로 연결이 되는 건가요?

◇ 유승규 : 그렇게 딱 단정지어서 말할 수는 없어요. 그런 시스템을 만들어 주기는 쉽지가 않고요. 다만 그들이 공백이 있다 보니까 기회가 필요하잖아요? 그 기회를 만들어주는 역할까지 좀 하고 있어서. 은둔을 경험한 걸 가지고 강의안도 만들고, 부모님을 코칭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훈련들을 합니다. 그럼 그걸 기반으로 청년센터나 복지인재원, 복지부 이런 곳들에는 당사자 인력들이 굉장히 필요한 상황이에요. 연구하기가 좀 어려운 분야고. 그들의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없고, 기성의 전문가들도 오지 않는 청년으로 수련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한 번 특강을 해주고 부모님을 코칭해서 보조 강사를 해주고 이런 것들이 굉장히 중요해요. 굉장히 상부상조거든요. 그래서 그러한 기회들을... 한 50개 단체를 불렀거든요? 거기서 한 번씩만 기회를 주셔도 수십 번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그걸 기반으로 다시 도약해 볼 수 있게 좀 하는 거라서 별도로 다른 자격증도 취득하고 계세요. 사회복지라던가. 그런데 사회복지가 있어도 원래는 취업이 어렵거든요. 그 실무 경험들을 만들어 주는 거죠.

◆ 박귀빈 : 사실 고립·은둔 청년의 경우에 계속 은둔을 하다가 사회로 나오는 과정 자체가 쉽지가 않은 거고, 제가 취업을 계속 여쭤봤는데 실질적으로 취업은 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완전히 활발하게 경제 활동도 하면서 자기 생활을 하는 거고 그 과정이잖아요. 은둔부터 취업까지 그 사이의 과정들이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한 거잖아요? 그 '과정에서의 역할'을 하고 계신 거예요.

◇ 유승규 : 맞아요. 그 과정이 일종의 '양육'과 같아요.

◆ 박귀빈 : 맞아요.

◇ 유승규 : 어떤 분은 몇 개월 동안 안 씻었던 분도 계시고, 몇 년 동안 누구랑 대화 안 해 본 분도 계시고. 그러면 어른들의 유치원이 필요한 거랑 똑같아요. 우리 사회에서는 '야 이 나이에 이것도 못해?'라는 게 훨씬 더 보편적이기 때문에.

◆ 박귀빈 : 그럴 만한 공간이 없죠.

◇ 유승규 : 위축이 되죠. 그래서 '모종의 이유로 성인기 발달 과업을 이행하지 못했다면 그걸 다시 배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 박귀빈 : 맞습니다. 이렇게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나오면 그 청년들이 가장 빛나는 나이대고, 가장 빛날 수밖에 없는 그 시기인데 왜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되는 걸까 많은 사람들이 좀 안타까워 할 겁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다고 해요. 왜냐하면 아예 정말 고립되어 은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통계 자체에 안 잡히니까. '2023년에 보건복지부 통계'가 있기는 합니다. '54만 명 청년이 고립·은둔 청년으로 추정이 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우리 청년들이 고립·은둔에 빠지게 되는 이유, 그 원인은 어디 있을까요?

◇ 유승규 : 굉장히 복합적이죠. 일단은 갑자기 생겼냐?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고도 성장을 했고 우리나라에 참 빛나는 성장의 역사들이 있잖아요? 당연히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는 빠른 성장'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성장 안에서 IMF 같은 국가적 위기를 겪기도 했고, 그때 가족이 해체되는 경험들도 굉장히 많았고요. 그리고 기러기 아빠 이런 식으로 '가정의 소통 문제'들이 굉장히 켜켜이 쌓여 왔어요. 그 상태에서 '경쟁 사회'까지 좀 영향을 미치다 보니까 굉장히 나라가 생존하기 위해서 효율 중시로 모든 것들이 세팅이 됐잖아요. 그게 너무 극단적으로 되어 있는 환경에서 청년들이 계속 제한된 도전들, 제한된 목표를 향해서 도전하다가 '다양성을 잃어버린 게 현재 상황'인 것 같아요. 그래서 가족과도 소통이 단절되고, 효율 중심 사회에서 누가 뒤처졌을 때 끌어주는 게 아니라 '이 정도는 해야 되지 않아?'라고 좀 밀어붙이는 분위기들도 있고. 그 상태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상상력을 잃어버린 세대가 돼 버린 것 같아요. 그들의 부모님도 도움을 별로 받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자녀에게도 이런 상황에서 좀 도움을 요청해도 돼, 세상이 좀 바뀌어서 여러 가지 복지 영역에서 청년 정책이라든가 신청할 수 있는 게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들도 '야 이거는 기본이야. 이건 해야 돼' 이렇게 밀어붙이다 보니까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그 상태에서 기본을 맞추지 못한다고 느끼는 청년들이 포기를 하게 되는 거 같아요.

◆ 박귀빈 : 그리고 점점 더 좀 이렇게 용기를 내보려다가도 위축되는 이런 상황이 되겠죠.

◇ 유승규 : 그렇죠.

◆ 박귀빈 : 아직 우리 사회에서 고립·은둔 청년을 바라보는 복합적인 사회 구조적인 문제부터 해서 다 짚어주신 거거든요. 굉장히 오랜 동안의 사회 발전과 더불어서 쭉 굉장히 깊이 있는 지점을 말씀해 주신 건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우리의 시선은 어떠냐 하면 '이건 개인의 의지 탓 아니야?', '그냥 그 집에서의 가족 간의 문제 아니야?' 이렇게 바라보는 시선도 분명히 있단 말이죠. 이 부분에 굉장히 아쉬움이 있으실 것 같아요.

◇ 유승규 : 그것도 우리가 굉장히 효율 중시 사회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아요. 다 같이 절뚝거리면서 뛰고 있는데 누가 넘어지면 '야 나도 절뚝거리면서 뛰고 있는데 왜 넌 안 뛰어?' 이렇게 되는 거죠. 부모님들이 흔히 하시는 말씀이 그런 거잖아요. '야 나는 IMF 때 더 적은 돈으로 서울에 상경해서 어쩌고저쩌고...' 이런 얘기하시잖아요. 굉장히 생존자 편향적인 증언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때도 돌아가신 분들 많거든요. 그때도 어음을 지급하지 못해서 목숨을 끊었던 대표님들도 굉장히 많이 계세요. 살아남은 사람들이 대단한 거지 그게 기본이 돼서는 안 된다. 그런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걸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다 같이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우승하지 못했다고 '이거 너 탓이야' 라고 하는 거랑 다를 바가 없는 것 같고요. 개인의 탓이라고 하기엔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 박귀빈 : 맞습니다. 그런 부분이 있고, 또 오징어 게임 자체는 우리가 드라마를 보면서도 그 게임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누구나 의문을 갖잖아요. 그 부분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말씀이신 것 같고. 대표님이 5년 은둔 경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대표님의 이야기를 조금 들려주시는 것만으로도 혹시라도 이 방송 듣고 있는 고립·은둔 청년이 있다면 힘이 될 것 같아요. 어떻게 은둔을 하게 되셨고 그렇지만 어떻게 이렇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셨는지 살짝 이야기 좀 해 주세요.

◇ 유승규 : 제가 좀 소위 말하는 '장손 문화'에 굉장히 좀 절여진 그런 집이었어요. 그래서 저희 어머니가 장손 며느리라는 호칭으로 불리셨고, 제가 장손이었고. 아버지는 해외에서 공부를 하고 계셨어요. 가정을 부흥시키려고 기러기 아빠 상태였고 그 상태에서 저랑 제 동생을 키우시면서 할아버지는 새벽 3시에도 '술상 좀 내와라'라고 하시는 조금 그런 굉장히 전통적인 느낌이었고 그 상황에서 어머님이 고조 할아버지 때까지 제사를 지내시다가 급기야 좀 자살 시도를 하시는 지경까지 갔어요. 그때 아버지도 안 계시고... 나중에 상담 선생님이 평가하시기로는 제가 남편의 역할까지 중복됐다라고 얘기를 많이 하셨고, 실제로 어머님도 뱃속에 저를 가지셨을 때부터 뱃속에 있는 저한테 늘 '살려달라'고 얘기를 했었대요. 그 정도로 어머니의 생활이 좀 괴로웠고 그 당시에는 '버티는 게 미덕이다'라고 생각하셨던 어머님들이 참 많으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을 이야기하기가 어렵고 계속 제가 들어주는 역할로서 학습이 됐었고요. 심지어 아버지에게 얘기를 해 봤었어요. 물론 청소년이었기 때문에 아주 나이스하게 말하지 못했을 겁니다. 돌아온 답변이 '너네 엄마가 약해서 그래', '제사를 지내고 조상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건 당연한 거야'. 결국 뭐냐 하면 저에게는 '무서운 사람'이었던 거예요. 결국 은둔을 청년들이 하게 되는 건 고민을 반복적으로 얘기해 봤는데도 도저히 의미가 없구나, 무기력하게 하게 되는 거예요. 왕따를 당한다고 해서 모두가 은둔을 하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왕따를 당해서 선생님한테 얘기해도 안 되고 집에다 얘기해도 안 되고 아무도 이 얘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학교에 책상과 의자만 있다고 제 자리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누가 날 찾아줘야 제 자리가 있는 거죠. '세상에 내 자리가 없다'고 느끼는 청년들이 고민을 얘기하는 것이 무기력해지고 ,나아가서 이제는 고민을 얘기한다는 상상력 자체를 잃어버린 거죠. 그래서 '나 혼자 해결해야 돼'라고 계속 노력하다가 들어가는 거라 저도 그런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 박귀빈 : 그렇게 5년을 지내셨는데 어떻게 세상으로 나오셨습니까?

◇ 유승규 : 저도 개인적 차원의 노력을 너무 많이 했었어요. 혼자 습관을 바꾸는 책도 막 필사를 해서 노트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나름대로 온라인 상담도 받아보고, 하라는 대로 착실히 했거든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주지 못했던 것 같아요. 사실 영국 같은 곳들에는 이런 문제들이 조금 먼저 포착되면서 사회적 서비스들이 생겼어요. 그래서 고독부 장관 이런 것도 출범이 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저도 결국엔 어떻게 됐냐면 저희 회사가 하는 일과 똑같은 일을 하는 일본의 회사에 연결되면서부터.

◆ 박귀빈 : 아, 아까 말씀하셨던.

◇ 유승규 : 네. 그전까지 개인적 노력만 하다가 그때부터는 저랑 비슷한 친구들 만나보고 그렇게 극복한 선배들의 얘기도 들어보고, '아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바다 건너에도 이런 문제가 이렇게 심각하고 그 나라들에서는 몇십 년을 하면서 개인의 탓이 아니라는 걸 인정해 주고 있구나' 이런 걸 알면서 좀 자신에 대한 부채감도 좀 내려놓게 된 것 같습니다.

◆ 박귀빈 : 그렇다면 정부 차원에서도, 지자체 차원에서도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될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 유승규 : 물론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빨라요. 빨리빨리라서 빨라요. 다만 '디테일의 문제'가 늘 조금 아쉬울 수 있는데, 보건복지부에서 '청년미래센터'라고 하는 전담센터를 '올해까지 한 17군데를 더 신설하겠다' 이런 얘기들이 있어요. 그리고 다섯 군데가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서울시는 '기지개센터'라고 하는 전담 센터가 있고요. 경기도도 '경기도 미래세대재단'이라는 곳에서 경기도권 사업을 해요. 북부 한 곳, 남부 두 곳 굉장히 빠르게 지원의 태동이 굉장히 빠르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출구 전략이 없어요. 일본도 최근에 NHK에서 보도를 했었는데요. 30년 동안 지원 단체를 통해 자립한 인원이 얼마였는지를 산출해 보니 2%에 그쳤다고 합니다. 정말 슬픈 일이거든요. 왜 그런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해져 있습니다. 누구나 취업하기가 힘든 시대예요. 은둔을 막 5년, 10년 한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사실 더 적어요.

◆ 박귀빈 : 그렇겠죠.

◇ 유승규 : 애초에 출구 전략이 없는 싸움이거든요. 지원 단체에서만 따뜻하게 해 주면 오히려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거기서만 따뜻하게 해주거든요. 세상이 별로 따뜻하지 않기 때문에 나갈 때 되면 다시 깨닫는 거예요. '나 쓸모없었지'. 지원단체에서 프로그램을 종료할 때쯤 깨닫는 거죠. 그래서 재고립이 한 58% 정도 된다는 조사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내 상태 그대로도 할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해요. 일본에서는 '곰손 카페'라든가 치매 노인 분들을 위해서 주문이 틀리는 콘셉트의 식당, 그리고 시각장애인분들을 위해서 어둠 속의 대화 이런 식으로 마이너리티한 상태. 내가 위축된 상태, 그 상태에서도 일할 수 있는 모델이 있어요.

◆ 박귀빈 : 무슨 말씀이신지 충분히 알겠습니다. 한 20초 있는데요. 혹시라도 이 방송 듣고 있을 은둔 청년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 유승규 : 다른 것보다 정부에서 너무 과도한 기대를 심어주는 말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걸 조심하려고 노력합니다. 최선을 다하고 빨리빨리 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 사업이고요. 오히려 나오셔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다만 긴급적으로 도움을 요청할 곳은 많이 있으니까 일단 조금 이용해 보시기를 권장을 좀 드리고 싶어요.

◆ 박귀빈 : 네, 청취자님이 '대표님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일 하고 계십니다. 건승을 기원합니다'. 이렇게 문자 왔습니다. 지금까지 유승규 안무서운 회사 대표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유승규 : 고맙습니다.

YTN 이시은 (sieun080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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