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철거맨에서 BTS 뮤비 감독된 ‘이 남자’ [강홍민의 굿잡]

강홍민 2026. 5. 4.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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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 뮤직비디오 감독(보위스튜디오 · 피바아카데미 대표)

보위스튜디오를 이끄는 정주 감독의 언어는 명확하고 단단하다. 스스로를 화려한 ‘아티스트’로 포장하기보다 철저히 대중의 눈높이를 맞추는 ‘기술자’라 정의하는 그는 영상의 본질이 창작자의 개인적인 만족이 아닌 관객에게 전달되는 즐거움에 있다고 믿는다.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공간 디자인을 전공하던 청년이 전시장 철거팀의 ‘망치’로 불리며 현장 바닥부터 구른 이야기는 이미 업계에서 유명하다. 그는 어깨너머로 배운 현장 감각에 BTS, NCT, 스트레이키즈, 검정치마 등 K-팝 아티스트들의 비주얼 공식을 새로 쓰고, 나아가 베트남 음악 시장의 지형도까지 바꿔놓았다. 최근에는 숏드라마와 영화, 예능까지 종횡무진하며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그를 만났다.

정주 뮤직비디오 감독

뮤직비디오 감독은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건 2011~2012년쯤이었고,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데뷔는 2013년인 24살 때였어요.”

전공은 영상 관련이 아닌 공간 디자인이었어요. 뮤직비디오 감독이 되기까지 어떤 이야기가 있었나요.
“뮤직비디오 감독을 꿈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어릴 적 비디오와 음악을 좋아하는 호기심 많은 아이였어요. 순수 미술을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프로젝트를 책임감 있게 끌어가는 사람들, 무언가 사람들에게 좋은 메시지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궁금해졌죠. 잡지사를 차려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다 그냥 무작정 무언가 돼서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군 복무 중 케이블 TV로 뮤직비디오 채널을 보면서 '영상을 찍으면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기쁨을 줄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달은 순간이 있었죠.”

비전공자로서 감독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쉽진 않았을 것 같아요.
“제 별명이 '망치'였어요. 전시 전시장 철거팀 알바를 시작했는데 제가 힘이 세서 철거를 진짜 빨리했거든요. 스튜디오를 빨리 부수고 나와야 스튜디오 비용이 절약되니까 그걸 보시더니 광고 쪽에 가면 잘 맞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가구나 소품 나르는 일도 잘해서 형들이 좋아했고, 그렇게 광고 미술팀, 세트팀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영상 보는 것과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해서 현장에서 어깨너머로 배우며 꿈을 키웠죠.”

현장에서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과 전문적으로 배워야 할 부분은 어떻게 채웠나요.
“유튜브가 발전하면서 외국 튜토리얼 영상을 볼 수 있게 된 덕분이죠. 그전까지 영상은 필름을 다루는 고급 기술이었지만, 점점 대중화되고 카메라도 컴팩트해지면서 외국 튜토리얼들이 넘어올 때였어요. 저희처럼 열정 있는 사람들끼리 영어 자료를 번역해 공부하며 도제 제도의 틀을 깨고 나온 이들을 '2.5세대'라고 부릅니다. 마침 K-팝 역사가 열리고 뮤직비디오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저희 같은 젊은 감독들에게 기회가 왔어요.”

"힘 좋고 센스있어 현장에서 인기, 별명은 '망치'···현장 경험 쌓던 중 우연한 기회에 미술감독으로 데뷔" 

그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처음엔 업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주변에서 도제 시스템이 아닌 인터넷에서 배운 지식으로 데뷔하는 감독님이 늘어나면서 조감독 일을 주로 했죠. 아무래도 알바를 많이 다니다 보니 현장을 꾸리고 예산을 아끼는 데 능숙했으니까요. 그러다 귀인을 만나 미술감독 겸 조감독으로 크루에 소속됐고, 이후 용기가 생겨 직접 연출한 작품이 '이달의 뮤비'에 선정되며 감독으로 두각을 나타내게 됐죠.”

정식 절차를 밟지 않고도 일을 맡을 수 있는 분위기였나 보군요.
“현장 수습을 하다가 기회를 얻은 적도 많아요.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혹독하게 혼나며 배웠지만 끈기와 힘은 좋았거든요. 현장에선 ‘사고 난 것(펑크) 수습 잘하는 애’로 소문났었죠.(웃음) 언젠가 아트 디렉터가 소품만 두고 못 오겠다고 한 상황이 있었는데, 현장 일을 많이 한 제가 고쳐놓으면서 미술 감독 일을 시작했습니다.”

BTS와의 작업 때 비주얼 디렉팅으로도 이슈가 됐다고 들었어요.
"뮤직비디오라기보다 ‘BTS 월드’라는 게임의 숏드라마 장르였어요. 저는 비주얼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대본을 다 없애고 비주얼 중심의 극을 만들었습니다. 그 그림이 잘 나와서 결국 뮤직비디오로 릴리즈 됐죠. 전 당연히 비주얼을 최선으로 하는 감독이라 비주얼 디렉팅을 한 건데 그게 저의 색깔처럼 돼 버렸어요.(웃음)“

연출 철학 또는 작업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서사가 있으면서 담백하고 자연스럽고 예쁜 작품을 좋아합니다. 또 다양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게 친절하게 극을 펼쳐놓는 편이며, 마지막에는 꼭 귀여운 반전을 주는 걸 좋아해요.”

뮤직비디오 한 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기획, 콘셉트 도출, 프리프로덕션, 촬영, 포스트 프로덕션, 릴리즈 단계를 거칩니다. 기간은 짧으면 1주, 길면 6개월까지도 가지만 평균 한 달 정도 걸립니다. 예산에 맞춰 로케이션과 배우를 캐스팅한 뒤 촬영과 편집, 사운드, 색보정 등 후반 작업을 진행합니다. 특히 외국 활동을 할 때는 일정이 굉장히 빡빡한데, 베트남에 6년 있을 때는 현지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프로젝트를 한데 묶어 한 달에 3개씩 몰아서 작업을 끝내고 오기도 했습니다.”

베트남 활동 당시 누적 조회 수 1억 2,000만 회를 기록했는데, 해외시장에 도전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네요.
“한국에서 아이돌 영상을 찍다 보니 제 색깔을 잃어버릴 것 같은 좌절감을 느꼈어요. 그때 마침 외국에서 제안이 왔고, 제가 하고 싶은 서사를 마음껏 펼치고 싶어 베트남으로 바로 떠났습니다. 베트남으로 바로 가서 제가 원하는 내러티브가 있는 뮤직비디오를 신나게 찍었습니다. 한 나라의 문화적 흐름을 바꾼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그렇다면 아티스트나 음반사와의 첫 미팅에서 가장 중요하게 체크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창작자에 대한 이해와 팀워크입니다. 제작은 갑자기 나오는 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가장 현실적으로 중요한 건 원하는 그림에 맞는 예산입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좋은 뮤직비디오’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무조건 재미있고 보기 예뻐야 합니다. 요즘 창작 욕구만 앞세워 관객을 고려하지 않는 작품들이 많은데, 영상 엔터테인먼트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독은 리더이기 때문에 사회를 읽는 눈을 가져야 하고, 공부가 안된 상태에서 자기 욕구만 뱉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뮤직비디오 감독은 꾸준히 공부하고 책임감 갖춰야···비전공자들도 실무 익혀 빠르게 작품 만들 수 있게 돕고 있어"

뮤직비디오 감독으로서 갖춰야 할 필수 덕목은 무엇이라 보나요.
“공부와 책임감입니다. 감독은 스피커이자 리더이기 때문에 미술, 패션, 인테리어 등 사회 전반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작업한 모든 필모그래피를 하나도 숨기지 않고 다 공개하고 있어요. 철저한 퀄리티 컨트롤해서 대중과 현시대의 테이스트(Taste)를 읽는 안목이 필수적입니다. 감독은 공부를 진짜 많이 해야 하는 직업이에요. 또한 실수를 하더라도 얽매이지 않고 고(Go) 할 수 있는 집념과 책임감이 제일 중요합니다.”

감독 또는 제작사의 수입 구조는 어떤가요.
“편당 계약이며 프로젝트마다 천차만별입니다. 현실은 퀄리티를 위해 인건비까지 제작비에 쏟아붓는 경우가 부지기수예요. 그래서 저는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수익 구조를 다변화했습니다.”

'피바 아카데미(FVA Academy)'를 운영 중이신데, 설립 계기가 궁금합니다.
“보위스튜디오는 프로덕션이고, 피버 아카데미는 학원이에요. 인턴이나 조감독 교육을 할 때 그들의 실력이 말도 안 되게 상승하는 것을 보며 재미를 느꼈어요. 제자들이 독립하면서 ‘감독님이 아카데미를 해보시는 게 어떤가요’라며 시스템을 직접 만들어주고 떠나면서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비전공자들도 실무 지식을 빠르게 습득해 자기 작품을 할 수 있게 돕고 있습니다.”

아카데미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나요.
“단순히 툴을 다루는 법은 인터넷에 널려 있습니다. 저희는 영상을 ‘제대로’ 만드는 법, 즉 프리프로덕션을 배웁니다. 팀과 포지션을 짜는 것부터 예산 수립, 작품 기획, 장비 운용, 전문가 섭외, 그리고 후반 작업과 납품을 거쳐 세상에 나오기까지 전 과정을 교육합니다. 개인적으론 제자들에게 ‘빨리 내 밥그릇을 뺏어라’고 말해요. 저는 일주일에 한 개씩 연출을 하고 오는데, 학생들이 3개월 동안 한 작품도 못 만들면 어떻게 제 자리를 대신하겠어요.(웃음) 학생들이 빨리 성장해서 제 짐을 나눠서 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독으로서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작업이나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요.
“저는 이미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뮤직비디오와 광고가 주특기였지만, 최근에는 숏드라마와 영화까지 진출했고 방송 출연도 병행하고 있어요. 저는 감독에게 장르의 경계는 없다고 봅니다. 미국에서는 뮤직비디오 감독이 오스카를 거머쥐기도 하고,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처럼 뮤직비디오적 감각이 영화의 시작이 되기도 하죠. 요즘은 릴스나 쇼츠 같은 크리에이터의 영역도 커지면서 장르의 개념이 더 모호해졌는데, 저는 그저 ‘잘하는 게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뮤직비디오 감독이 되고 싶은 분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드린다면요.
“진짜 하고 싶다면 지금 현장으로 나가 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웃음)”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 이서영 대학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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