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독미군 감축보다 더 큰 폭풍…유럽 뒤흔드는 ‘트럼프 리스크’
車관세 15→25% 인상…경제·안보 동시보복
관세·軍공백·대서양 동맹 붕괴가 ‘최대 위협’
유럽, 장거리미사일 등 美의존…재무장 시험대
트럼프 때린 독일 총리 후폭풍 수습 나서
“미군 감축 놀랄일 아냐…美, 최우선 동맹”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가 지난 3월 백악관 집무실에서 양자 회담을 하고 있다. [EPA]](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4/ned/20260504114740217cjsj.jpg)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주독미군 5000명 감축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국과 유럽, 이른바 ‘대서양 동맹’ 붕괴가 현실화하고 있다. 주독미군 감축은 ‘상징적 조치’일뿐 미국의 대(對)유럽 ▷관세 인상 ▷미사일 배치 철회 ▷이란 전쟁발(發) 경제·군사적 후폭풍 등 복합적인 ‘트럼프 리스크’가 유럽의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흔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대서양 동맹 균열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유럽의 재무장 속도와 경제 기반이 이를 따라가지 못할 경우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전반의 전략적 취약성이 빠르게 부각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 “트럼프 대통령의 유럽산 자동차 관세 인상, 장거리 미사일 독일 배치 철회, 그리고 이란 전쟁에 따른 경제·군사적 여파가 병력 감축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했다.
베를린 소재 안보 싱크탱크 글로벌공공정책연구소의 토르스텐 베너 소장은 “이 모든 요소가 5000명 병력 감축이라는 상징적 조치보다 훨씬 더 큰 문제”라며 “특히 이란 전쟁으로 미국의 무기 비축량이 급격히 감소한 것도 (유럽에 대한 군사 지원 여력을 약화시켰다는 점에서) 마찬가지 문제”라고 말했다.
▶독일, 유럽 주둔미군 절반 차지…“동맹 붕괴 최대 위협”=트럼프 대통령은 주독 미군 약 5000명을 6∼12개월 안에 철수하도록 지시하는 한편, 유럽연합(EU)에서 생산된 승용차와 트럭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25%로 10%포인트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자동차 산업이 독일 경제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인상 조치는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와의 갈등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메르츠 총리는 지난달 27일 “미국이 이란과의 종전 협상에 명확한 전략 없이 임하고 있으며, 미국이 이란에 의해 굴욕을 당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자신의 발언으로 미국과의 갈등이 EU 전체로 확산하자 메르츠 총리는 뒤늦게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는 3일 공영방송 ARD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대통령이 우리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는 점은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파트너라는 내 확신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란 전쟁에 대한 견해 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과 계속 협력할 것이라며 “대서양 관계에 대해 노력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과 일하는 것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르츠 총리는 미국의 독일 주둔 병력 감축 계획이 두 정상 간 갈등과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최근 며칠 동안 들은 내용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며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긴 해도 놀랄 만한 일은 아니며, 보복으로 볼 필요도 없다”고 주장했다.
독일은 유럽 내 미군 약 8만5000명 규모의 45.5%인 3만6000명이 주둔한 핵심 거점이다. 이번에 감축되는 5000명은 주독 미군의 약 14%에 해당한다. 독일 기지 네트워크를 통해 미국은 전 세계에 군사력을 투사하고 있으며, 람슈타인 공군기지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그리고 올해 이란 작전의 핵심 물류 허브 역할을 해왔다.
메르츠 총리의 “미군 감축 놀랄 것 없다”는 발언은 이번 철수 규모가 통상적인 변동 수준에 가깝고 트럼프 1기 때 추진했던 1만2000명 감축보다도 규모가 훨씬 적다는 이유에 근거한다. 이들 병력의 상당수는 독일 방어보다는 전 세계 작전에 투입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미국이 유럽, 특히 독일에서 병력을 철수할 가능성은 예견된 일이었다”며 “유럽은 이미 공백을 메우기 위한 투자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역시 미국과 협의 중이라며, 이번 조치가 “유럽이 방위비를 더 늘리고 공동 안보 책임을 확대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나토는 여전히 억지력과 방어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더 큰 우려는 미국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과 다크이글 극초음속 미사일 운용 부대를 독일에 배치하지 않기로 결정한 점이라고 WSJ는 짚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나토 억지를 강화하기 위해 2024년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했던 계획이다.
독일 위험분석·국제안보연구소의 니코 랑게 소장은 “현재처럼 러시아나 미국 역할 축소 등 유럽에 대한 위협 수준이 높은 상황에서 이러한 재래식 억지력 공백이 해소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유럽에는 장거리 정밀 타격과 극초음속 무기 등 미국 수준의 억지력을 대체할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미 의회에서도 이번 결정이 나토 억지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 나토 고위 인사인 고든 데이비스 예비역 소장은 “유럽이나 인접 지역에서의 신속 대응 능력도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대서양 공동체의 가장 큰 위협은 외부 적이 아니라 동맹 내부의 분열”이라고 경고하며, 이를 되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미군 감축 결정, 푸틴과 관계완화 신호탄?=이번 결정이 트럼프 행정부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 관계 완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WSJ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러시아 제재가 완화된 점이 이러한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메르츠 정부는 2029년까지 유럽 최대 재래식 군사력을 구축하기 위해 국방비를 늘리고 조달 속도를 높이고 있다. 프랑스와는 미국의 핵우산을 보완하는 협정도 체결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독일이 점차 미국 의존도를 줄이고 있지만, 최근 갈등이 이러한 전환의 시급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란 공격으로 인한 미국 무기 비축 감소는 유럽에 또 다른 딜레마를 안기고 있다. 유럽은 재무장을 추진 중이지만 속도가 느리고, 특히 방공 시스템과 장거리 미사일 등 핵심 분야에서 미국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美, 대유럽 경제·안보 동시다발 보복…유럽 맏형 獨경제 직격탄=경제적 충격도 가중되고 있다. 트럼프의 정책은 독일이 국방 투자 확대를 뒷받침할 경제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 대중국 시장 점유율 감소를 보완해온 대미 수출은 지난해 무역전쟁 이후 급감했다. 지난해 체결된 EU-미국 무역 합의도 철강·알루미늄 관세로 인해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이란 공격 이후 에너지 가격 급등은 독일의 성장 전망을 무너뜨렸고, 정부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했다. 기업 신뢰지수도 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산 자동차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힌 것도 독일 핵심 산업에 추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과 유럽 간 동맹 균열과 이란 전쟁 장기화 전망 속에 4일 유럽 정상들은 아르메니아 예레반에 모여 지정학적 현안을 논의한다.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에 따르면 유럽정치공동체(EPC)는 이날 제8차 정상회의를 열어 유럽 안보와 전략적 협력 강화를 논의할 예정이다.
회의에서는 주독미군 감축 문제와 미·이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경제적 영향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EU 27개국 포함 유럽정치공동체 회의…주독미군 감축·이란전쟁 장기화 대응 주목=EPC는 2022년 출범한 범유럽 협의체로, EU 27개국을 포함해 영국·튀르키예·노르웨이 등 약 40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번 회의에 참석했다.
이번 회의에는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비유럽 국가 정상으로는 처음 참여한다. 캐나다는 트럼프 집권 이후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유럽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카네기 유럽의 토머스 드 발 선임 연구원은 “유럽 지도자들은 미묘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며 “보다 안정적이고 분열이 적은 지역 질서를 구축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PC 정상회의 다음 날인 5일에는 EU와 아르메니아 간 첫 양자 정상회담도 열린다. 아르메니아는 민주주의 강화와 비자 면제 확대를 위해 EU의 추가 지원을 기대하고 있다.
인구 약 300만명의 아르메니아는 2017년 EU와 포괄적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으며, 지난해에는 EU 가입 추진 법안을 채택했다.
정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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