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토리] '메타토피아' S와 N의 탐구생활…AI로 '세무 잔다르크' 꿈꾸는 길혜전
[※ 편집자 주 = '메타토피아'는 고대 그리스어로 '가상', '초월'의 의미가 덧입혀진 '메타'와 장소, 땅의 뜻인 '토피아'가 결합해 가상현실, 인공지능, 블록체인, K컬처 등 시대의 화두를 지식셀럽의 융합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교양 정보 콘텐츠입니다. 콘텐츠에 도움을 주는 석수선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영상예술학 박사)의 이니셜 'S'와 노석준(전 고려대 외래교수) RPA 건축연구소 소장의 'N'을 결합해 지식 탐구생활을 떠납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세영 기자 = 광교세무법인 파트너 세무사 길혜전(51)씨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 질문을 던졌다.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은 무엇인가."
그의 답은 분명했다. 20여년간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과 판단, 그리고 세금 앞에서 막막해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는 일이다.
길 세무사는 광교세무법인에서 상속·증여세와 양도소득세, 가업승계 분야에서 활동해 온 재산제세 전문가다. 그가 최근 한신대학교 교내 스타트업 '수지하우스'와 손잡고 청년과 다주택자를 위한 무료 AI 세무 시뮬레이션 서비스 '핀즈'를 내놓았다. 직접 바이브 코딩을 익혀 AI 서비스를 기획했다. 배경에는 청년들과 소상공인, 그리고 세금에 문외한인 뭇 대중을 위하겠다는, 분명한 '공익적 동기'가 있었다.
"저를 '자판기'처럼 생각하시는 고객이 많아요. 뚝 누르면 답이 나오는 것처럼. 하지만 저도 답을 내기까지 인공지능에, 질문에 질문을 거듭해 최적의 답안을 찾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제가 그동안 어렵게 익힌 노하우를, 이제는 AI의 힘을 빌려 더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 5월 9일, 다가오는 '세금 절벽'
길 세무사가 서비스 출시를 서둘렀던 이유가 있다. 5일 앞으로 다가온 '5월 9일'이다.
2022년 5월부터 한시적으로 시행돼 온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조치가 오는 5월 9일 자로 종료된다. 이날 이후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을 양도하는 2주택자에게는 기본세율(6~45%)에 더해 20%포인트, 3주택 이상 보유자에게는 30%포인트의 중과세율이 부과된다. 양도차익의 30%까지 빼주던 장기보유특별공제 혜택도 사라진다.
"제가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1억원 나올 게 2배, 2억원, 심지어 3배도 나오더라고요. 양도차익이 발생한 것 중 30%는 그냥 잃고 가는 셈이죠."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재연장하는 법 개정을 또 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라며 유예 종료를 기정사실로 하면서, 191만 명에 달하는 2주택자가 '팔 것이냐, 증여할 것이냐, 버틸 것이냐'의 갈림길에 섰다. 정부는 2월 12일 보완방안을 통해 5월 9일 이전에 토지거래 허가만 받아도 중과 배제 혜택을 적용하기로 했지만, 의사결정 시한은 여전히 촉박하다.
해외에 거주하는 길 세무사의 의뢰인이 급하게 한국으로 날아온 것도 이 때문이다. 상속주택 한 채를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주택 2채가 어느덧 상속일로부터 5년이 경과하면서, 더 이상 예외를 인정받지 못하고 온전한 다주택자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당장 눈덩이처럼 불어날 세금 폭탄을 막으려면 서둘러 한 채를 매각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같은 집을 팔아도 시점 하나로 세 부담이 수억 원 차이가 납니다. 이런 의사결정을 일반 시민이 혼자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죠."
◇ "AI가 거짓말 잘해요"…20년 내공으로 잡아낸 '할루시네이션'
길 세무사의 AI 여정은 챗GPT가 등장한 직후부터 시작됐다. 금융조세포럼에서 '로봇세'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그는 곧장 AI 대학원에 등록했고, 데이터 사이언스 학과까지 옮겨 다니며 IT 전문가들과 함께 딥러닝 코딩을 배웠다.
하지만 그가 발견한 AI의 한계는 분명했다.
"챗GPT가 그럴듯하게 할루시네이션(환각)을 내놓는 결과를 가지고 고객들이 저한테 질문을 하세요. '이 주택 팔면 상속주택이라 중과 안 되는 거 아닌가요?'라고요. 그런데 세무 바닥에서 20년 넘게 일한 저는 보면 알 수 있어요. 이건 틀린 답이라고."
세법은 룰 베이스(Rule-Based)로 구현되지만, 개개인의 자산 구조와 가족관계, 미래 계획은 매번 달라진다. AI가 만능이 아닌 이유다. 그가 직접 만든 시뮬레이터만 10가지가 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한신대와의 만남, '따뜻한 AI'를 만들다
길 세무사 혼자 만들어온 도구가 하나의 서비스로 결실을 본 데는 한신대 AI·소프트웨어(SW)대학 홍승필 교수의 역할이 컸다. 두 사람은 매주 경기 오산의 한신대 캠퍼스에서 학생 개발자와 회의를 이어왔다.
홍 교수는 길 세무사의 기획안을 처음 들었을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세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AI와 관련 기술을 통해 쉽게 다가가고, 무엇보다 절세 방안을 찾아줄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이건 어느 특정인이 아닌 우리 국민에게도 굉장히 도움이 될 수 있는 서비스가 되지 않을까. 공익성과 전문성이라는 두 가지가 매력적이어서 흔쾌히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홍 교수는 "우리 학교가 추구하는 AI나 혁신 기술은 결국 따뜻해지는 AI, 어렵게 사는 분에게도 도움 되는 AI를 찾아가는 것"이라며 "수지하우스의 1차 타깃은 세무를 어려워하는 소상공인과 청년"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산학협력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한신대가 2023년부터 진행해 온 '소프트웨어중심대학사업'이 있다. 류승택 한신대 SW중심대학 사업단장은 "3년 전부터 SW중심대학 사업이 선정돼 진행했고, 디지털 라이프 케어를 주제로 창업과 연계된 특화 트랙을 운영해 왔다"고 설명했다.
강민구 한신대 AI·SW대학 교수 겸 교무혁신처장도 "약 1천200명의 학생이 그저 기술 교육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사회를 바꾸는 따뜻한 AI 기술이란 철학을 배우고 있다"며 "수지하우스 사례는 광교세무법인과 학생 중심의 성과 교육으로, 배움이 교실에 머무르지 않고 창업과 공익적 사회문제 해결로 이어진 모범 사례"라고 평가했다.
◇ 학생들이 만든 75분→45초로 단축
수지하우스 대표를 맡고 있는 한신대 소프트웨어학과 재학생 최부영 CEO는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이렇게 짚었다.
"가장 궁극적인 목표는 세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회 초년생인 저희도 세무에 막 접하기 시작한 입장에서, 길 대표님 말씀에 깊이 공감했어요. 대중과 취약계층에게 이런 서비스가 열린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해 동참하게 됐습니다."
모바일 앱과 웹사이트 개발을 맡은 허준영 CTO(한신대 소프트웨어학과 재학)도 "청년 소득세 감면 부분이 매력적이어서 '이건 나도 한번 써볼 수 있겠다' 싶었다"며 "이렇게까지 세금 환급을 제대로 못 받는 청년이 많은 줄 몰랐다"고 말했다.
수지하우스가 구현한 핵심 기술은 두 가지다. 첫째는 '하이브리드 AI 아키텍처'다. 세법 조문에 따른 정확한 계산은 파이썬 기반 룰 베이스 엔진이 담당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비교·분석하는 전략 판단은 구글 제미나이 등 LLM이 맡는다. 길 세무사가 75분 걸리던 상속·증여세 자산평가를 45초로 99% 단축한 것도 이 구조 덕분이다.
둘째는 다주택자를 위한 '6-Way 시나리오 매트릭스'다. A주택과 B주택 각각에 대해 양도·증여·부담부증여 6가지 경우의 수를 동시에 계산해 가족 단위 총 세후 이익을 비교해준다.
청년을 위한 서비스는 더 단순하지만 효과적이다. 만 35세 미만 청년이 중소기업에 다닐 경우 소득세 70∼90%를 감면받을 수 있는 조세특례제한법 제30조 혜택을, 군 복무 기간을 차감한 '세법상 나이' 자동 산정을 통해 만 40세까지 적용 대상으로 진단해준다. 5년 치 경정청구를 통한 환급액은 누적 최대 1천만원을 넘는다.
"청년 부분은 작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걸 확대하려는 게 소상공인이에요. 세무 수수료가 부담일 수 있는 분들에게 이런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게 두 번째 목표입니다."
◇ "징수하는 AI vs 납세하는 AI, 균형이 필요하다"
세금의 역사는 곧 인류 혁명의 역사이기도 하다.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보스턴 차 사건, 프랑스 혁명, 영국 마그나카르타까지 모두 세금에서 비롯됐다.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장은 "세금이라는 것은 결국 부과하는 쪽과 내야 하는 쪽 양 계급에서 지속적으로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는 부분"이라며 "팔란티어 같은 거대 기업이 징수 측 AI를 만든다면, 납세자를 방어하는 공익적 AI 서비스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석수선 박사(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도 "사실 홈택스 서비스만 활용해도 세금을 다 낼 수는 있지만, 일반인 입장에서는 그 단어와 칸칸이 공포 그 자체"라며 "행여 잘못 신고해 과세가 더 되거나 누락돼 벌금을 내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서, 길 세무사의 서비스는 '미리 대응하라'는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한다"고 평가했다.
길 세무사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덧붙였다.
"AI가 세금을 징수하는 쪽에 있다면, 우리는 납세자를 방어하는 입장에서도 충분히 활용해야 합니다. 절세할 부분은 절세해야 우리 권리를 찾는 것이니까요. 균형이 맞아야 사회적 합의가 이뤄집니다."
석 박사가 마지막으로 그에게 붙여준 별명은 '세무계의 잔 다르크'였다. 어렵게 배운 지식을 무료로 나누려는 한 세무사의 결단, 그리고 그 결단을 기술로 실현해낸 대학과 학생들의 협업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AI 시대에 우리가 진정 주목해야 할 풍경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구성 : 민지애, 진행 : 노석준·석수선, 영상 : 박소라·김정민, 취재 협조 : 한신대학교·광교세무법인, 연출 : 김현주>
seva@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파리 잡으려고'…마을주민들 먹을 음식에 농약 넣은 60대 | 연합뉴스
- 포천서 동원예비군 훈련받던 20대 남성 쓰러져 숨져 | 연합뉴스
- 부부싸움 뒤 집 나간 남편 차량 찾아가 불 질러 | 연합뉴스
- "해외순방 중 부인에 얼굴 맞은 마크롱…이란 출신 여배우 때문" | 연합뉴스
- 인도 20대 초과수당 요구했다가 욕먹고 퇴사한 사연 SNS 화제 | 연합뉴스
- 광주 흉기피습 피해 남학생에 '도망자' 조롱…경찰, 누리꾼 검거 | 연합뉴스
- '분풀이'로 여고생 살해…당초 표적은 구애 거절 여성(종합) | 연합뉴스
- BTS, 북중미 월드컵 결승전 하프타임쇼 선다…마돈나도 출연 | 연합뉴스
- '위증 때문에'…채권자가 수억대 채무자로 뒤바뀐 억울한 사연 | 연합뉴스
- [샷!] "손가락으로 아무말이나 하지 마라"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