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본질은 사유”…구독혁명으로 ‘독서 패러다임’ 바꾸다[Herald Deep - 밀리의 서재]
10년만에 882억 중견기업으로 도약
‘챗봇·페어링’ AI시대 독서실험 도전
‘원 소스 멀티유즈’ 콘텐츠 기업으로
이익 30% 주주환원 ‘나눔’ 초심 지켜
![23만권의 독서 콘텐츠로 900만 독자를 사로잡은 kt 밀리의서재 본사는 입구부터 많은 책들이 내방객을 맞이하고 있다. [kt 밀리의서재 제공]](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5/04/ned/20260504112642574kfpc.png)
서울 마포구 ‘kt 밀리의서재’ 사무실 내부로 들어서면 ‘독서와 무제한 친해지리’라는 노란 간판 속 슬로건이 내방객을 맞이한다. 이 슬로건을 형상화한 듯 우드톤과 그린 컬러가 조화를 이루는 ‘숲속 인테리어’와 ‘꿀’을 상징하는 따뜻한 안내 문구들은 마치 도심 속 정원에 들어선 것 같은 환경을 조성한다.
사무실 한쪽에는 밀리의 서재가 발굴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린 도서들이 원목 독서대 위에 정갈하게 진열돼 있다. 유리창으로 보이는 회의실에는 캐쥬얼한 복장의 직원들이 격식 없이 토론하며 지식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2016년 설립 이후 척박했던 국내 전자책 시장에 ‘구독’이라는 혁신을 최초로 이식하며 성장을 일궈낸 밀리의서재는, 이제 단순한 독서 앱을 넘어 인공지능(AI)과 미디어 밸류 체인을 결합한 ‘콘텐츠 솔루션 허브’로 진화 중이다.

“꿀이 흐르는 마을로 오세요” 이장이 만든 달콤한 반란
밀리의서재라는 이름에는 창업자의 낭만적인 철학이 담겨 있다. 웅진씽크빅 CEO를 역임했던 서영택 창업주가 퇴사 후 여행지에서 읽은 동화책 주인공 ‘밀리’의 이름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이를 차용해 한자로 ‘꿀 밀(蜜)’에 ‘마을 리(里)’를 붙여 ‘꿀이 흐르는 마을’이라는 뜻의 이름을 완성했다. 독서를 통해 마음의 양식을 채우는 달콤한 공간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창업 초기 서 전 대표는 명함에 대표이사 대신 ‘마을 이장’이라는 직함을 새기고 다닐 만큼 이 철학에 진심이었다. 밀리의서재는 2017년 국내 최초로 월정액 전자책 구독 서비스를 선보이며 시장의 판도를 흔들었다. 이어 2018년에는 ‘무제한’ 서비스를 시작하며 소유에서 경험으로 독서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다.
텍스트 소외 시대를 정면으로 돌파한 이 아이디어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책을 더 쉽고 재미있게 읽게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서 시작됐다. 집안에서 사라진 서재를 모바일 안으로 옮겨와 누구나 자신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공간을 갖게 하겠다는 밀리의 초심은 800만명의 구독자를 끌어모으는 동력이 됐다 .

전단지 돌린 ‘서바이벌’ 정신…스타트업서 중견기업으로
현재의 화려한 지표 뒤에는 처절한 스타트업 생존기가 있었다. 2018년 첫 벤처캐피털(VC) 투자를 받기 전까지 회사는 존폐의 기로에 서 있었다. 당시 출판 산업은 ‘레드오션’이라는 편견 때문에 투자를 받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창업 멤버인 이성호 독서당 본부장은 “상암동의 한 중국집에서 대표님이 ‘잔고가 3개월 치 급여밖에 남지 않았다. 월급이 밀리기 전에 깔끔하게 접자’고 말했을 때 우리 모두가 오히려 더 해보자고 합심했다”고 회상했다 .
초기 멤버들은 직접 발로 뛰며 구독자를 모았다. 강남역과 대학로에서 전단지를 돌렸다. 창업 멤버인 김태형 신사업본부장은 “한여름 땡볕 아래 대학생들에게 전단지를 주면 ‘저 책 안 읽어요’라는 당당한 대답이 돌아올 때 가장 가슴이 아팠다”고 회상했다. 이 본부장은 “출판사 관계자들을 만나면 ‘월급은 제대로 받고 일하느냐’는 걱정을 들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2018년 첫 VC 투자가 성사된 순간, 멤버들은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절대 안주하지 않겠다는 ‘서바이벌 정신’을 뼈에 새겼다. 이러한 도전 정신과 생존 본능은 10년이 흘러 매출액 882억원 규모의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밀리의서재를 지탱하는 핵심 DNA가 됐다.
‘불편한 편의점’이 증명한 전자책-종이책의 상생 공식
밀리의서재는 전자책이 종이책 시장을 갉아먹는다는 우려를 실적으로 불식시켰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설 ‘불편한 편의점’이다. 이 작품은 무명에 가까웠던 작가와 소규모 출판사의 작품이었으나, 밀리의서재에서 먼저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며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김 본부장은 “전자책에서 유독 반응이 좋은 것을 확인한 출판사의 제안으로 전략적 노출을 진행했고, 이것이 바이럴로 이어져 종이책 100만부 판매라는 대기록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이후 이 작품은 영화화와 뮤지컬 제작까지 이어지며 도서 지식재산(IP)의 위력을 증명했다.
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역시 기존 출판 시장의 공식을 뒤집은 ‘역발상’의 성공 모델이다. 본래 다른 출판사가 보유했던 이 IP를 밀리의서재가 발굴해 ‘오리지널 콘텐츠’로 먼저 공개했다. 전자책으로 독자의 반응을 확인한 뒤 종이책 출간을 끌어냈고, kt 지니뮤직과 공동 제작한 오디오 드라마는 큰 화제를 모았다.
전자책이 대체재가 아니라 종이책의 보완재라는 것이 수치로 확인됐다. 지난해 기준 밀리의서재 누적 가입자수는 910만명, 보유한 독서 콘텐츠만 23만권이다. 이 본부장은 “상황에 따라 편하게 읽는 전자책과 소장용 종이책의 독자층은 자기잠식(카니발)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강조했다.

몸집은 ‘중견’, 정신은 ‘스타트업’…광속 DNA의 비결
창업 10년 만에 밀리의서재는 2025년 기준 매출액 882억원, 영업이익 144억원을 기록하며 중견기업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내부 구성원들은 여전히 밀리의서재를 스타트업이라 부른다. 약 220명의 직원 중 평균 연령은 33세이며, 팀원과 본부장 사이의 결제 라인이 단 한 단계에 불과할 정도로 의사결정이 빠르다.
조직 문화의 핵심인 ‘밀리다움’의 원칙은 ‘도전’이다. 누구나 도전을 할 수 있고, 도전하는 사람을 응원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도전을 안 할 거라면, 도전하는 사람의 의견에 따라주거나 도전에 방해되지 않게 비켜주자는 것이 핵심이다.
6월과 12월 전사 셧다운 제도와 일 년에 한 번 타 부서원들이 섞여 여행을 떠나는 ‘밀리 투어’는 젊은 인재들을 록인(Lock-in)하는 강력한 문화적 도구다. 김 본부장은 “스타트업 마인드를 버리는 순간 도태된다는 절박함이 23만권의 콘텐츠를 확보한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종합 콘텐츠 플랫폼’을 향한 AX와 IP 전략
밀리의 서재는 이제 단순한 독서 앱을 넘어 ‘종합 콘텐츠 플랫폼’으로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성장의 핵심 동력은 IP 사업의 대대적인 확장이다. 2021년 kt 지니뮤직에 인수된 이후 도서 IP를 기반으로 오디오 드라마, 챗북 등 원 소스 멀티 유즈(OSMU) 전략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신인 작가 발굴 플랫폼 ‘밀리로드’는 오리지널 IP 확보의 전초기지로서, 전자책과 종이책을 넘어 영상화까지 가능한 강력한 원천 소스를 생산하고 있다
기술적으로는 ‘AI 전환(AX)’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독서 플랫폼 최초로 선보인 ‘페르소나 챗봇’은 작가와 독자가 대화하는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며 독서 장벽을 낮췄다. 또한 ‘AI 스마트 키워드’ 등을 통해 독자가 책 한 권을 소비하는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특히 혁신적인 서비스인 ‘밀리페어링’은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등 다양한 독서 형태를 끊임없이 연결한다. 독서 환경이나 디바이스가 바뀌어도 읽던 위치가 자동으로 동기화되어 ‘언제 어디서나 이어지는 독서 생활’을 실현했다.
이러한 기술력은 전체 구독자의 약 60% 이상을 차지하는 MZ세대에게 플랫폼의 매력을 각인시키는 핵심 무기가 됐다. 단순히 책을 읽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독서 경험’ 자체를 혁신하고 있는 것이다.
밀리의 향후 10년, “AI 시대일수록 인간은 사유해야”
밀리의서재는 이제 새로운 10년을 바라보고 있다. 김 본부장은 “10년을 돌이켜보며 앞으로의 10년도 고민하고 있다”며 “사람들이 일상에서 습관처럼 자기 취향을 찾아 독서하며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계획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AI 시대에 밀리가 내놓은 해답은 역설적으로 ‘인간적 사유’다. 이 본부장은 “AI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요구되는 건 사유”라며 “AI와 비견되는 인간의 특별한 구별점은 사유함에 있고, 그 사유를 가장 깊게 만들어주는 최적의 도구는 바로 텍스트”라고 강조했다.
그는 똑같은 텍스트도 독자마다 다르게 해석하며 발생하는 사유의 힘이 AI와 비견되는 인간의 유일한 구별점이라고 덧붙였다. AI 기술로 편리함을 제공하되 텍스트 본연의 가치를 보존함으로써, 2030세대가 열광하는 ‘텍스트 힙(Text Hip)’ 문화를 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상장사로서 순이익의 약 30%를 주주에게 환원하는 파격적인 배당 정책 역시 성장의 결실을 사회와 나누겠다는 초심을 잇는 행보다. 설립 당시 무모해 보였던 ‘꿀 마을’의 기록은 이제 대한민국 미디어 산업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 더 많은 독자들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다.
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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